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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은 의미 있는
인생의 필수조건이 아니라고

영화 <소울>로 본 생의 의미

by 김예란


며칠 전 디즈니-픽사 영화 <소울>을 봤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스크를 끼고 있어야 했기에 조금 답답했지만, 그런 수고가 하찮게 느껴질 만큼 커다란 울림이 있는 영화였다. 애니메이션으로 이런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다니, 역시 픽사! 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주인공은 초등부 재즈교사로, 어느 날 꿈에 그리던 재즈밴드에 합류할 기회를 얻는다. 오디션을 단번에 통과한 그는 온몸으로 기쁨을 내뿜으며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길로 맨홀에 빠져 죽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죽은 건 아니고 의식 불명 상태가 된다. 어휴, 불쌍한 영혼 같으니.


이 불쌍한 영혼은 이대로 죽을 수 없다며 저세상에서 몸부림치다, 실수로 ‘태어나기 전 영혼’들이 사는 세계로 떨어진다. 그곳에서 어린 영혼들은 자신의 고유한 성격을 형성한 뒤 지구로 떠날 준비를 한다.

단, 지구로 향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에서 반드시 자신만의 ‘불꽃’을 찾아야 한다. 어떤 영혼의 불꽃은 축구고, 또 다른 이의 것은 요리 같은 식이다. 아기 영혼들은 그것을 찾기 위해 지구를 떠나기 전 스포츠, 음악, 미술, 독서 등 지구의 이런저런 활동들을 멘토들과 함께 해본다.


나는 처음에 그 불꽃이 재능 또는 인생의 목적인 줄 알았다. 저마다의 고유한 어떤 것이며 그것을 찾은 후에야 비로소 지구로 향할 자격이 주어지니까. 그리고 주인공이 ‘내 불꽃은 음악이었던 게 틀림없어, 음악은 내 전부이자 삶의 목적이야.’라고 말했으니까.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나서야 깨달았다. 불꽃은 한 사람의 타고난 재능도, 인생의 목적도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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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선 오랜 시간동안 불꽃을 찾지 못해 좌절하는 영혼이 나온다. 자신은 지구에서 이루고 싶은 목적이 없으니 불꽃을 찾을 수 없는 거라며. 자신은 쓸모없고 구제불능이며, 영원히 불꽃을 찾지 못할 거라며.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불꽃의 정체를 깨달은 주인공은 어린 영혼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불꽃은 인생의 목적 같은 게 아니야. 그저 세상을 살아갈 준비가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불꽃이 생기는 거야.


세상을 살아갈 준비. 그것은 지구라는 행성을 궁금해 하고 세상을 긍정할 수 있게 만드는 무언가다. 인생에서 이루어 내야할 최종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생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무언가. 어떤 이들은 음악으로 삶을 풍요롭게 변주하고, 또 다른 이들은 스포츠를 통해 세상을 긍정한다. 요리를 통해 세상을 더 궁금해 하고, 하루를 더 즐거이 보낸다. 그러니 어린 영혼들이 찾아내야 했던 것은, 자신의 인생을 더 깊고 진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하나의 요소였던 것이다.


나에게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되고 싶은 것도, 책을 내고 싶은 것도 인생에서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최종적인 목표가 아닐 것이다. 그런 게 목표나 인생의 의미 자체가 되어버린다면 그걸 손에 쥐지 못했을 때 내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어져버리니까.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실패자가 되어버리니까. 그러니 글쓰기도, 그저 내가 삶을 더 궁금해 할 수 있게, 내게 다가오는 것들을 더 세심하게 감각하고 하루를 더 즐거이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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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화는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목적이나 재능 같은 게 아니라고 말한다. 인생의 의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계절이 바뀌는 자연의 순간을,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 속의 작은 요소들을, 순간순간을 소중히 감각하며 살아내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주인공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떠올렸던 것이 음악이 아니라,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했던 즐거운 시간들, 맨발을 쓸고 가는 해변의 파도, 마른하늘을 보며 그저 걷던 순간, 손바닥에 떨어진 꽃잎의 감촉, 따듯한 커피와 파이로 하루를 마무리했던 장면 같은 것들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하루하루 속에 숨어 있는 이런 작고 아름다운 순간들이라고.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미소 짓게 된다고.작고도 거대한 영화 <소울>은, 2021년의 첫 자락에서 내게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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