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란 Nov 06. 2020

동생에게 사과를 했다

이제 눈을 감더라고 조금 덜 부끄러울 것 같다


꿈을 꿨다.      


8살 터울 남동생의 하얗고 오동통한 팔다리가 보였다. 하얀색 아가 내복을 입고 있는 너는 다섯, 또는 여섯 살쯤 되어보였다. 그러니까 13년 전이겠구나. 내 기억 속 13년 전 모습 그대로 너는 내 꿈에 나타났다. 나는 지금과 같은 스물일곱의 형상을 하고서 다가가 네 입에 청포도 한 알을 넣어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지 네가. 내가 영문을 몰라 당황하며 왜 그러느냐고, 왜 우느냐고 묻자 네가 답했다. 작은 누나가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건 처음이라고. 

그 말을 듣고 엉엉 울었다. 너를 안고서 미안하다고, 어린 너에게 한 번도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울었어.     

 

꿈에서 깼다. 

곧장 핸드폰을 켜 문자를 썼다.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더는 모른 척 할 수가.     




죽을 때, 나는 그 아이에게 어떤 말을 남길까, 생각하니 사과는 쉬웠다. 눈을 감을 때 나는 언니에게는 고맙다고, 동생에게는 미안하다고 할 것이다. 어렸을 적 못되게 굴어 미안하다고. 죽음의 순간을 떠올릴 때면 나는 항상 너에게 사과를 한다. 그 말은 그 말을 하지 못하면 후회할 거라는 뜻이겠지.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죽어서도 후회할 것이라고.     


너를 미워한 적 없다고 했다.

실은, 너를 미워한 적이 없다고. 너를 미워한 게 아니라 부모를 미워한 것이라고. 내 모든 분노와 원망과 슬픔과 서글픔의 대상은 모두 너와 나의 엄마, 그리고 아빠였노라고. 

그들이 나를 너무 밀어붙였으므로. 

절벽인데.

조금만 더 가면 낭떠러지인데 나를 그쪽으로 계속하여 밀어붙였으므로 너를 싫어했다. 

하지만 실은 너를 미워한 적이 없다. 너는 내게 잘못한 것이 없으므로······.    


미워한 적 없다. 

나는 너를 미워한 적이,

없다.     



엄마는 항상 우리 아들, 우리 아들, 하고 너를 불렀지.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받아쓰기 100점을 맞아오지 않아도 학교에서 받아온 간식을 먹지 않고 꾹, 참았다가 건네지 않아도 그랬어. 대신 엄마는 너를 존재 자체만으로도 기쁨을 주는 대상이라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너는 내게 기쁨을 주는 존재라고. 

“우리 아들, 너무 예뻐. 너무 잘생겼어.”      


그런데 내겐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다. 우리 딸, 우리 예란이. 그리 불러 준 적이 없어. 아무 이유 없이 대가 없이 칭찬해준 적이. 그래서 일곱 살 때부터 설거지를 했다. 작은 손가락에 맞는 고무장갑은 없었으므로 그냥 맨손으로. 키가 모자라 눈높이가 맞지 않았으니까 디딤대에 올라서서. 그렇게 마구간 같은 집안을 쓸고 닦고 치웠다. 그 모든 수고 뒤에 오는 “잘했어, 수고했어.” 당신의 두 마디가 나를 그렇게 기쁘게 만들 수가 없었고.  

   

그런데 그마저도, 당신을 기쁘게 하기 위한 나의 모든 행동들 그마저도 언제부턴가 당신에게 당연한 것들이 되어 있었다. 설거지를 해놓으면 밥통을 열어보며 왜 밥은 하지 않았느냐고 내게 물었다. 만화영화를 보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이면 귀가한 당신의 첫 마디는 항상 “오늘은 왜 아무것도 치우지 않았어?”였어.      


그리고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지금 이렇게 기억한다. 

설거지는 집안일은, 저가 좋아서 한 것이라고. 

그건 걔의 취미생활이었다고.      




그런데 엄마

어느 일곱 살짜리 아이의 취미가 설거지겠어?     




엄마와 아빠는 한 번도 널 때린 적도 없었다.

아이가 그럴 수도 있지, 이 어린 것이 무얼 안다고, 이제 잘못인 줄 알았으니 되었다고. 항상 그렇게 말하며 너를 도닥였다. 그런데 나에게는, 언니에게는, 우리에게는 그러지를 않았어.     


뺨을, 때렸지.

언제 어디서든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 뺨을 후려갈겼어. 할머니 집에서 떼를 쓰는 나를 방으로 데려가 때렸고, 마트 서점코너에서 당신이 여름이면 항상 매던 소형 핸드백으로 내 뺨을 후려쳤어. 그 가방은 하얀색 인조가죽에 끈은 연둣빛이었고 양 옆에 작은 리본장식이 달려있었다. 나는 그 가방의 생김새를, 뺨에 닿았던 감촉을, 그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고. 1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온갖 것.

파리채, 옷걸이, 주방도구, 대나무 줄기······ 실은 손에 잡히는 온갖 것으로 맞았다. 말대꾸를 한다는 이유로 방구석에 몰아넣고 팔이며 다리며 얼굴이며 분이 풀릴 때까지 때렸고 한날은 당신이 화가나 집어던진 책의 모서리에 맞아 왼쪽 광대 부분에 피가 맺힌 적도 있다. 아, 아버지, 그리고 나의 아버지는 그 두툼하고 큰 손바닥으로, 항상 tv리모컨을 쥐고 있던 그 손으로 내 뺨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내려쳤지. “너 엄마한테 말대꾸하지마라” 그렇게 말하며 성인 남성의 전력으로 내 오른뺨 왼뺨을 번갈아 쳤어. 하나 둘 셋. 딱 세대 째 맞았을 때 나는 맥없이 침대에 고꾸라졌다. 그때 내 나이가 여덟. 고작 여덟이었고.   

  

내가 너에게 화를 내고 있을 때, 소리를 지르고 있을 때면 엄마는 네게 와서 속삭였다. 누나 말은 무시하라고, 다 무시해버리라고. 한 날은 아빠가 tv를 보다가 자리를 박차고 나와 “누나 아가리를 차버려”라고, 두 눈은 내게 향한 채로 네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그들은 매번 어디선가 나타나 늘 네 어깨를 감싸며 너만, 너만 그 자리에서 빼내어 갔어.     


“누나 말은 무시해라” 

“누나 아가리를 차버려”     


나는 그 자리 그곳에 못 박힌 채 서 있었다. 눈가에 열이 몰리는 것을 느끼며 떨리는 손을 꾹 말아 쥐고는 거기 서 있었어. 한참을 

거기에

혼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아니 실은 수치심을, 수치와 모멸을. 

그것들을 견뎌내며 혼자서 서 있었다.

거기에서.     





그랬으므로 나는 네가 싫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랑 받는 너를, 중학생이 될 때까지 손에 물 한 방울 묻힐 필요 없었던 너를, 부모로부터 질책과 비난을 결코 받아본 적 없던 너를, 그들을 등에 업고 어떤 상황에서든 가뿐히 나를 찍어 누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너를, 그런 너를.      


나는, 도저히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었고. 

사실은 끔찍했다고.

네가 자는 것도 먹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못 견디게 끔찍하고 싫었다고.      


그래서 너를 몰아붙였다. 내 물건에, 내 몸에 네 손이 닿기만 해도 역정을 냈고 너한테는 무엇도 양보하지 않았다. 더 이상 가지고 놀 리가 없는, 어디에 처박혔는지도 몰랐던 유년 시절 나의 솜 인형이 네게 안겨 있을 때 나는 그걸 빼앗았고 매몰차게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네가 문 앞에서 아무리 울어도 울어도 나는 결코 문을 열어주지 않았어. 14살의 내가 그랬다. 14살이었던 내가······.     


너에게 칭찬 한마디를 해준 적 없다. 이것 밖에 못하느냐고, 너는 왜 이런 것도 못하느냐 말꼬리를 잡아 쏘아붙이며 비난했다. 항상 잘한 것보다는 못한 것에···· 내 부모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마음이 여리고 순했던 네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악을 쓸 때까지 나는 너를 몰아붙이고······ 몰아붙였고······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랬으면 안 됐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데도.    




지난날의 나의 행동을 나는 25살에 깨우쳤다. 그 전까지는 항상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나와 함께 있을 때면 항상 긴장했던 네 얼굴을, 눈치를 보던 눈동자를, 멈칫거리던 손을, 나는 스물다섯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그제야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그 부끄러움이 쌓이고 쌓여 며칠 전 꿈으로 나타났고 나는 그것을 더는 외면할 낯이 없어 너에게 문자를 보냈다. 


미안하다고 내가 잘못했다고. 

너무 늦게 사과함에 사과를 건넨다.


지금 와서 바라는 건. 지난날 나의 증오가 너의 어른 됨에 너무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네가 나처럼 어딘가 썩어있는, 그런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염치없음에도, 그럼에도, 지금에서라도 이렇게 빌어 본다.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눈을 감을 때 조금 덜 부끄러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조금 덜 부끄러운 어른이 되어 눈을 감을 수가 있을 것 같아 .         

작가의 이전글 에디터님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