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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Nov 28. 2020

반려동물이 가족보다 애틋한 이유

그들은 때로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것들을 우리에게 건네곤 한다



“아, 프리 보고 싶다.” 


대학 진학을 위해 타지로 떠나왔을 적, 우리 집 강아지 ‘프리’를 향한 하염없는 그리움의 표현은 어느새 내 입버릇이 되어있었다. 실은 이틀이상 집을 떠나있을 때면 언제고 그 작고 올망졸망한 것이 1순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따금씩 내게 묘한 껄끄러움을 안겨주었다. ‘이럴 수가, 어떻게 평생을 함께한 가족보다 강아지가 더 그리울 수 있을까!’ 말하자면 이런 종류의 무언가를.      


먹여주고 입혀준 부모보다 반려견이 더 가슴에 사무친다니(나는 정녕 패륜아인가···). 그 아이의 존재가 마냥 귀엽고 무해해서일까. 아니면 타인의 세계에서 항상 작디작은 일부에 불과했던 내가, 그 아이의 세상에선 ‘전체’와 맞먹는 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까. 애틋함의 원천을 찾아 이리저리 상념 속을 떠돌아다니던 나는 이윽고 조금 뜬금없는 질문에 다다랐다. 

아니 그런데 애초에,     


‘애초에 프리만큼 나를 반겨주는 이가 있었던가?’     

그러니까 강아지만큼 내 존재를 환영해주는 이가 있었는가, 하고.




프리가 우리 집에 온지 3일쯤 지났을 무렵.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나는 현관문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여느 때와 같이. 그런데 문이 열리고 내가 목격한 장면은 여느 때와는 전혀 같지 않은 것이었다. 그 생소한 광경인즉슨 손바닥만 한 갈색 아기 강아지가 끼융끼융 앓는 소리를 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뛰었다, 빙빙 돌았다 하며 나를 졸졸 따라오던 것. 


강아지를 처음 키워본 나는 흥에 겨워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복슬한 생물체를 보며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얘 왜이래?” “어디 아픈 거 아냐?” “나한테서 무슨 냄새나?!”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뒤에 서 있던 엄마는 “네가 보고 싶었나보지” 하고,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누군가 나를 이토록 반기는 일. 그건 내게 무척 낯선 경험이었다. 그래서 당시에 감동스러웠다기보다는 조금 당황스러웠고, 많이 신기했다. ‘우리가 만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나를 이렇게 반겨? 아니, 그 전에 내가 너한테 뭘 해주었다고···?’ 

그냥 나는 문을 열고 들어왔을 뿐인데. 

그냥 저 문을 슥ㅡ 열고, 평소와 같이 안으로.

      


꼽슬꼽슬 귀여운 프리찡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 

그날 나는 그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네가 무엇을 하지 않아도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밖에서 무슨 말을 했든 어떤 일을 겪었든 그런 거와 상관없이 나는 네가 좋다고. 네가 너라서 좋고, 네가 그냥 저 문을 슥, 열고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 주어 좋다. 너의 형상이, 존재 자체가 나는 기쁘다.      


그와 같은 온전한 긍정의 신호를 어린 강아지로부터 감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프리를 만나기 전 나의 기억 속에는 결코 없던 아주 새롭고 이질적인 경험이었다.        




본래, 우리는 모두 그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세상으로 발을 내딛기 전, 각자의 가정에서 각자의 부모로부터,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의 경험을. 모든 아이는 부모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고, 부모는 아이에게 그것을 감각시켜줄 의무가 있으므로.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너는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 너의 존재 자체가 나를 기쁘게 한다. 그런 온전하고 완전한 사랑의 감각을. 말하자면 훗날 세상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을.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론과 현실을 언제나 다르다고.     


현실은 한 생명체를 키울 만큼 인성적으로 환경적으로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어른들(사실은 ‘헛어른’)이 부모가 된다. 자신의 감정에 따라 아이를 키우고, 기분이 좋을 때면 원하는 만큼 원하는 방식으로 애정을 쥐어주다가 수틀리면 언제든 짜증을 내고 질책하고 등을 돌려버린다. 당연하다는 듯 아이의 장점보다 단점을 먼저 인식하고, 후에 ‘몰랐다’는 말로 자신의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정당화한다.      


그런 부모들 아래에서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거부와 거절’을 경험한다. 긍정적인 자아상 대신 ‘부정의 감각’을 가정에서 먼저 체화하고, 다시 학교라는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 소외와 고립에 대한 공포를 학습한다. 어떻게든 무리에 녹아들기 위해 자신을 숨기고 쪼갠다. 반듯하고 좋은 것들만 예쁘게 포장해 내비친다. 그렇게 회피와 자기방어를 쌓으며······ 거부와 거절의 경험으로부터 도망한다.    

         

그런데 우리의 반려동물들은 그런 해묵은 불안과 내면의 공포들을 순식간에 허물어버린다. 아무것도 덧대지 않고 어떤 수식어도 없는 ‘그냥 나’, ‘그냥 너’의 존재를 전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언제든 마주치면 기쁨의 트위스트를 선보임으로써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있던 거부의 경험을 차츰차츰 덮어간다.

      

“너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 당장 내 집에서 나가” 

“널 낳은 건 내 인생에서 오점이야” 

“너는 왜 그 모양 그 꼴이야” 

“너는 무슨 자식으로서 태어난 게 아니라 나 속 썩이려고 태어난 뭐 같다.” 


그런 말들을, 


“어서와, 보고 싶었어.”

“네가 그냥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 

“너랑 있는 시간이 제일 평화롭고 마음이 놓여”

“이리 와서 나 좀 쓰다듬고 안아줄래?”

“네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이와 같은 사랑과 긍정의 언어로 치환한다. 




실은, 프리를 만나기 전 열일곱의 겨울. 나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하루 온종일 침대에 누워 주륵주륵 눈물을 쏟다가 잠들었다가 다시 일어나선 위장이 터질 때까지 폭식했다. 그런 나날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프리가 나의 일상으로 쑥 들어온 것이다. 그 후로 내 우울증은 정말로 이렇다, 할 과정 없이 마치 물에 물감이 번지듯 스르륵- 하고 신기하고 자연스럽게 호전되었다.       


하루에 한번이상 강아지를 보며 웃고, 산책을 위해서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였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을 테지만, 아마도 결정적인 건 그로부터 왔을 것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마주했던, 나를 온몸으로 긍정하던 그 다정의 형상으로부터. ‘저렇게 좋을까’ 싶을 정도로 매번 나의 존재를 기뻐해주던 몸짓으로부터.      


덕분에 힘에 겨웠던 고등학교 3년을 나는 제법 씩씩하게 버텨냈다. 닭장 안의 병든 닭처럼 불안과 우울과 수능이라는 거대한 짐을 등에 지고 걷던 시절, 작지만 옹골찬 기쁨을 프리가 매일같이 꼭꼭 심어두었기 때문이다. 훗날, 아프고 힘들기만 했던 시절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프리가 곁에 있던 나날’로 추억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우리 강아지, 아니 우리 강아지‘였’던 프리가 몹시 보고 싶다. 이제는 만질 수도 품에 안을 수도 없지만, 나는 그 아이가 내게 처음으로 선물해준 그 생소하고도 따뜻한 감각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추억할 나의 애틋하고 어여쁜 이름, ‘프리’와 함께.       




덕분에 다음포털 메인에 글이 실려 조회수 6000을 돌파하게 됐습니다. 

읽어주시고 좋음의 흔적을 남겨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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