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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Jan 07. 2021

그런 게 ‘관례’라면,  차라리 계속 백수로 지낼래요.

툴을 쥔 인간은 툴의 방식대로 말하고 생각한다


2020년 12월의 끝자락, 교수님으로부터 학과 조교 자리를 제안 받았다. 계약기간은 최대 3년, 1년마다 계약은 갱신된다. 할렐루야, 이게 무슨 일이야. 교수님 감사합니다. 덥석 제안을 받아들였다. 보수도 꽤 된다고 알고 있고, 집에서 가까우며 깔끔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니! 게다가 9 to 6로 워라밸도 보장된다. 퇴근하고 나서 내가 쓰고 싶은 글도 쓸 수 있다고. 아, 완벽하다 완벽해.      


부랴부랴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까지 그대로 통과. 학과장 교수님은 “앞으로 잘해보자”며 웃으며 말씀하셨고, 나를 학과사무실로 데려가 전 조교와 함께 인수인계 일정에 대해 논의해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제출해야 할 서류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데······ 그런데······ 도중에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나는 마주하게 되었고. 바로 1월, 2월 두 달간은 무보수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 그것도 나인 투 식스로······.     


그 말을 들은 내가 무척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조교님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대신 계약기간에서 마지막 남은 두 달은 출근하지 않고 월급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설명을 마저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혼란한 머리를 진정시킨 후 교수님께 문자를 보냈다. 두 달간 무보수로 아홉시부터 여섯시까지 일을 하는 것이 진정 사실이냐고(물론 이렇게 문자를 보내지는 않았다). 교수님으로부터 그렇다는 답이 왔다. 정식 발령은 3월에 나며 그렇기에 1월, 2월은 업무를 배우며 무보수로 일을 한다고. 하지만 계약기간의 남은 두 달은 일을 하지 않고 월급을 받는 셈이니 샘샘이지 않느냐고. 우리는 ‘관례적’으로 그렇게 일을 해왔고.   


고민을 했다. 대갈빡이 터지도록. 일단 금전적인 문제. 나는 현재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며 이제껏 모아 놓은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자취를 하고 있으므로 월세와 관리비, 교통비, 생활비 등 고정 지출이 있는 상태고, 지금은 감당할 수 있지만 취업 준비기간이 길어진다면 몹시 부담으로 다가올 터다. 더군다나 이 시국에 언제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따지고 보면 조교 자리는 일종의 내게 ‘굴러온 기회’였다. 그리고 앞서 말했다시피 근로환경과 보수, 모두 만족할만한 조건이라···.     


하지만 나는 이내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거절하기로 결심했다. 어쩐지 교수님이 말한 그 ‘관례’ 라는 단어가 마음속에 찝찝하게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 단어가 왜 이리도 퍽 불편하게 느껴지던지. 그런데 거절을 하고서도 스스로의 선택에 확신이 없었다. 내게 굴러온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게 아닐까. 조삼모사처럼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만 현혹되어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게 아닐까.      


결국 정처 없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던 이 상념들은 그대로 입 밖으로 나와 정신과 의사선생님께 전달되었다(나는 지금 우울증으로 정신의학과를 다니고 있다). 선생님은 내 얘기를 가만 듣더니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예란씨, 나는 사실 예란씨 얘기를 들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게,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었어요. 보수와 근무환경을 떠나서 그건 도덕적이지 못한 거예요. 하루를 일하든 단 몇 시간을 일하든, 일을 한 것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줘야 하는 거예요, 교수의 월급을 떼어서라도. 그렇지 않다는 건 그 사람의 노동력을 무시한다는 거야. 예란씨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거라고. 나의 가치를, 내 노동력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곳에선 단 몇 시간이라도 일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 곳에서는 일하지 말아요 예란씨.      


선생님의 진심 어린 조언에 이제껏 체한 것처럼 명치를 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쑥ㅡ 내려갔다. 동시에 흐려졌던 이성이 번쩍, 하고 선명해졌다. 그러니까 전에 내가 조삼모사라고 생각했던 것에는 오류가 있었으며, 관례, 라는 단어에서 오는 그 찝찝함의 정체를 깨달았다.     



앞의 두 달 동안 무보수로 일을 하다 뒤에 두 달은 놀면서 돈을 받는 것.


그것은 ‘보수’면에서는 결과적으로 똑같으며 ‘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자유’ 면에서는 전혀 공정하지 못한 조건이다. 무보수로 일할 때는 아홉시부터 여섯시까지 내 시간과 자유를 온전히 투자해야하지만, 뒤에 남은 두 달 동안에는 나는 마음대로 구직활동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계약기간 동안은 공무원 신분이 유지되어 투잡이 불가능하거든. 그 말은 즉, 그 사이에 좋은 데로 취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거나 꼭 가고 싶었던 기업의 공채가 올라와도 나는 두 눈 뜨고 속수무책 그것을 놓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나머지 두 달은 온전히 나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그리고 만약 도중에 그만두게 된다면?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중간에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 ‘관례’라는 게 적용될까? 두 달 동안 출근을 안 하면서 돈을 받을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후임자’가 무보수로 그 기간 동안 일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거니까. 그런 식으로 ‘관례’라는 건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작동하게 되어있으니까. 왜냐하면 애초에 그것은 권력을 가진 이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유지되어 온 것이라.      


언젠가 책에서 ‘툴을 쥔 인간은 툴의 방식대로 말하고 생각한다.’는 문장을 본 적 있다. 그러니까 자본을 가진 이는 자본의 방식대로 말하고 생각하며, 권위를 가진 이는 권위의 방식대로 말하고 사고한다. 그러니까 ‘교수’라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교수의 방식대로 말하고 생각하고, 그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행한다고.     

 

모든 게 명확하게 보이고 사리가 분별되기 시작하자 웅크리고 있던 미련과 찝찝함이 저 멀리 훌훌 날아갔다. 대신 그 자리에는 얼마간의 씁쓸함이 덩그러니 남았다. 관례, 그 ‘관례’라고 불리며 행해지던 것들을 바로잡으려 이제껏 수많은 이들이 희생됐으며, 그것을 방지하려 법이라는 것이 세워졌는데도.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이렇게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야금야금 존재하고 있었구나 또 다시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조교 일에 대한 거절의 의사를 전화상으로 조교님께 전할 때, 수화기 너머로 “네, 그럼 다른 학생을 찾아볼게요.” 들려오던 차분한 목소리와, 영화 <1987>에서 하정우가 비리검찰 김윤석에게 뱉은 대사가 겹쳐졌다. 서울대학생 고문치사 사건을 ‘관례’대로 처리하자는 김윤석에게 하정우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이번엔 법대로 하시죠.”      


관례라는 외피를 두른 채 사회를, 누군가의 삶을 좀먹어가는 것들에게.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여 우리는 원래 ‘그런 식’으로 일 해왔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다.      


우리, 이번엔 법대로 하자고.

이제는, 법대로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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