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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Jan 17. 2021

선생님,  우울증은 상담과 병행해야 할까요?

예란씨, 중요한 건 말이죠,



“선생님, 우울증은 상담과 병원치료를 병행해야 할까요?”     


현재 다니고 있는 정신과 의사선생님께 물었다. 처음에는 우울증으로 상담을 병행하고 있었으나(거기에서 지금의 병원을 추천해주셨다), 비대면으로 상담형태가 바뀌며 상황이 흐지부지 되었다. 언제부턴가 그쪽에서도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고, 나도 굳이 나서서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적절한 약물치료와 선생님과의 대화만으로 증세가 많이 호전되어 상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눈동자를 오른쪽 측면으로 살짝 굴리며 생각하듯 말했다.

“음, 상담··· 상담이 굳이 필요할까요?”


일반적인 상담센터는 아마 예란씨한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거예요. 왜냐하면 거기선 가족이나 친구관계를 계속해서 물으며 프로이드식 상담을 하거든요. 과거를 되짚으며 원인을 찾는 거죠. 

그런데, 예란씨. 과연 원망할 대상을 만드는 게 좋은 일일까? 있잖아요,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는 어렸을 때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성격의 사람이 되었고, 나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세상에 어쩔 수 없는 게 어디 있어. 중요한 건, 과거를 되짚으며 누군가를 탓하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그 상처를 안고서도 우리는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다시 자신의 일상을 회복시키는 것. 물론 상담이 필요한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 예란씨한테 중요한 건, 상처가 낫는데 집중해서 다시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왜 상처가 났는지 따지기 보다는.

예란씨,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가야 해요.


선생님의 말을 듣자 언젠가 피부과 의사선생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몇 달 전 피부과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당시 진료를 보던 중 나는 선생님께 약간의 울분을 담아 물었다. 선생님! 도대체 왜 이런 게 생기는 거예요 갑자기? 네?! 원인을 알아야 제가 뭔가를 조심하든, 조치를 취하든 제대로 된 치료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선생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답해주셨다. 이게 생기는 원인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많아요. 그래서 정확한 원인은 알 수가 없어요. 대신, 치료하는 방법은 확실히 알아요. 그리고 그게 중요한 겁니다.




그렇다. 어떤 상황에서 나아지고자 할 때, 과거나 원인은 그리 중요한 요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과거에 상당한 통찰을 기울이며 그 아린 기억들을 하나하나 되짚는다. 이 사람 때문에, 이 사건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된 거라며.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후회하며 누군가를 저주하고 원망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과 눈앞의 현실을 갉아 먹는다. 부정의 감정들이 피부 표피층을 뚫고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닿도록 내버려둔다.

마치 예전의 나처럼 자신을 좀먹어 가도록.


물론, 세세하게 과거를 복기하는 과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것은 필수조건이 아니라고. 앞서 말했듯, 중요한 건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매일 아침 눈을 떠서 일터로 향하고, 그날 주어진 내 몫의 할 일을 하고, 퇴근 후 씻고 밥을 먹고. 다시 나의 일상이 원활히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      


과거에 얽매여 누군가를 원망하고 상황을 탓해봤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자신만 괴로울 뿐이지. 왜 가해자들은 기억도 못하고 잘 살고 있을 텐데, 나는 이 모든 걸 떠안고서 살아야하나. 환멸과 좌절감과 분노와 슬픔이 똘똘 뭉쳐,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나에게로 돌아온다.     


그러니 우리는 평소 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현재의 고난을 헤쳐 나가기 위해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찾고 행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아도 좋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어려운 일을 우리는 애를 쓰고 기를 쓰며 해내야 한다. 한쪽으로 비정상적으로 기울어진 일상을, 황폐해진 자신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야한다고.      


왜냐하면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

다시 걸어가야 하니까.

그게 산다는 거니까, 산다는 건 그런 거니까.




상담의 과정은 필요하지 않다거나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실제로 내 친구는 상담을 통해 공황장애가 많이 호전 되었다). 다만, 이미 원인을 충분히 잘 알고 있거나 과거를 마주하는 게 힘겨운 이들에게, 또는 과거에 갇혀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고. 과거는 현재의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고. 중요한 건 지금의 상태에서 나아지는 것이라고. 어떻게 나아질 수 있을지, 힘들겠지만 방안을 찾고 행동해야한다고. 그리고 그 끝에서 다시 삶을 이어가라고. 나도 그러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쓴다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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