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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Nov 09. 2019

나이 들수록 좋은 게 뭐냐고?

그건 바로 납득할 수 있는 얼굴이 많아진다는 것.


말하기 싫어, 그러니까 더 이상 묻지 마.


때는 바야흐로 내가 21살 적. 하숙집에서 함께 살던 24살의 언니는 드리이기로 머리를 말리다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지. 사건의 전말을 모르는 이라면 내가 전 남친과의 구질구질했던 역사를 들쑤셨다거나, 민감한 가정사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기대(?)와는 달리 상대를 한순간에 정색상태로 만든 건 다름 아닌,   

  

언니, 요즘 도서관에서 무슨 공부해?    


라는 질문이었으니.


언니와는 일 년 정도 함께 살았다. 같은 대학을 다니면서 곧잘 어울려 지냈고, 한 학기가 지났을 무렵엔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친해졌다. 그런데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났을 때쯤이었나. 언니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나가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집에 코빼기를 비쳤고,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워 편의점에서 매 끼니를 때우고 도서관으로 직행했다.      


그런 언니를 보며, ‘시험도 끝났는데 왜 저렇게 바쁜 거지?’ ‘도대체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무슨 공부를 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나는 참을 수가 없었고. 그렇게 마음속의 의문을 육성으로 발화했을 땐 “어..그냥 뭐.....”라는 미적지근한 3음절과 어물어물 넘어가려는 몸짓만이 대답의 형태로 돌아왔다. 그 후로는뭐,  예상하는 바와 같이 비슷한 상황이 몇 번 되풀이 됐고 그 결과가 바로 위의 사태인 것.




기분 나쁘니까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 표정이 어땠던가.


사실 너무 당황해서 표정은 기억나지도 않고 기분 나빴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나는 그냥 언니가 걱정되기도 하고 궁금해서 그랬다며, 마음 상하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고··· 정말 미안하다고.

정돈되지 않은 단어들을 띄엄띄엄 내뱉으며 횡설수설 사과의 말을 거듭 전했었지.


그도 그럴 것이 21살의 내게는 요즘 도서관에서 무슨 공부를 하며 왜 그렇게 바쁘냐는 질문은 “점심에 뭐 먹었어?” “일 교시는 무슨 수업이야?”와 일절 다를 바 없는 아주 일상적이고 무해한 말이었으니까. 애초에 그런 질문에 마음이 상할 이유도, 대답을 못할 연유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상대가 대답을 꺼려한다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      


결국 그 일 이후로 나는 언니에게 어떤 말이든 아끼기 시작했다. 마음에 앙금이 남아서가 아니라, 혹여 스스로 ‘실례’라고 납득할 수 없는 말을 또 할까봐서. 상대가 기분이 나빴다니 사과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언니의 심기를 건드린 지점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원인불명의 미제로 남아있던 사건은 내가 졸업을 한 학기 앞두었을 무렵에야 겨우 이해의 실마리를 드러냈다.




요즘 뭐해?
졸업 하고 나서 뭐할 거야?
그래서 뭐 준비하고 있는데?

그 무렵 졸업예비생이라면 응당 통과해야할 의례마냥 쏟아졌던 일련의 질문들이 마냥 무겁게만 느껴졌다. 어떤 목표와 비전을 품고 이런 계획을 세워 실행하고 있노라, 자신하며 말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어. 하지만 당시 난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내가 딛고 서 있는 게 땅인지 하늘인지 모를 만큼” 자욱한 안개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내 앞에 펼쳐진 것들 중 어떤 것도 확실치 않았고, 그 무엇도 보장할 수 없었다.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조차 확신이 없어 하루에 몇 번이나 길을 가다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런 속내를 취업이라는 원 내부에 함께 발 딛고 선 ‘동지’들에겐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었으나, 원 밖의 사람들, 어디까지나 ‘관망자’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입을 떼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루 온종일 도서관에 박혀 붙을지 떨어질지도 모를 자기소개서를 쓰고,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붙들고 있으며, 요즘은 없는 게 더 창의적이라는 컴퓨터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는····그런 보잘 것 없는 일상과 별 볼일 없는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들 중 대부분은 지난날의 나처럼 아무런 악의 없이 그저 궁금해 묻는 말일 테지만, 그 말로 인해 부쩍 무거워진 공기를 버텨내는 일도 대답하는 동안 외면하고 싶었던 상황을 상기하는 것도, 그들의 호기심과 기대 뒤에 남겨진 비루한 나 자신을 감내해야 하는 것도 온전히 나의 몫이었으므로.

     

그래서 난 "도서관에서 무슨 공부하냐"는 어느 20살의 물음에 “인생공부~ 아주 끝나지가 않아~”라며 능청을 떨었고,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빠졌다. 서류에 합격해 서울까지 면접을 보러 갔을 때도 부모님께는 입 뻥긋하지 않았다.      




그제야 몇 년 전 언니의 얼굴이 보였다. 


시선을 피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그녀의 눈이 보였고, 힘없이 말꼬리를 늘리던 목소리가 들렸다. 그와 더불어, 기말고사를 하루 앞두고 “나는 학교 시험보다 지금 다른 게 더 절박해서····.”라고 말하던 학과선배의 걱정 어린 미간이 떠올랐고, 채용공고 사이트의 ‘서류제출하기’ 버튼을 누른 후 “나 괜찮은 걸까····.”막연히 중얼거리던 친구의 표정이 아른거렸다.



시간이 지나도 마음속에 걸려 있던 얼굴들을 되짚어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건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얼굴이 많아진다는 것 아닐까, 하고. 20살의 떨림과 어설픔만 알던 21살의 내가, 시간이 흘러 24살의 불안과 초조를 볼 수 있게 된 것처럼. 이제는 그런 얼굴들을 머리로 이해하려고 애쓰기에 앞서, 마음으로 먼저 느낄 수 있게 된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면 고생이 고생으로만 끝나는 것도, 한 살 한 살 나이가 든다는 것도 마냥 서러울 일은 아닌 거 같다. 그만큼 누군가의 얼굴에서 읽어낼 수 있는 감정과 공감할 수 있는 애환의 종류가 많아진다는 것일 테니까. 그 말은 곧 함께 마음을 나누고 위로를 더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거고.


그러므로 나는 결국엔 이 모든 게 나를 조금 더 사려 깊은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훗날 되돌아봤을 땐 내 삶을 조금 더 긍정할 수 있게 되리라 믿으며,

오늘도 씩씩하게 걸어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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