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수능을 치지 마오.”
10년 전, 19살 때의 나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 수능을 치지 말라고. 대학에 가지 말라고. 왜냐하면 나는 대학에 간 것을 후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엔 꼭 대학에 가야만 하는 줄 알았다. 초등학교 졸업하면 중학교, 중학교 다음엔 고등학교, 고등학교 다음엔 자동적으로 대학에 가야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전문대라도 가야한다는 것이 그때의 생각이었으니까. 그래서 공부했다. 공부해서 4년제 번듯한 대학에 갔다.
하지만 거기엔 내가 19살적 꿈꿨던 파라다이스도 없었고, 대학에서 배운 지식은 얄팍하고 탁상공론식이라 사회에서 별 쓸모가 없었다. 졸업을 한 후 내 손에 남은 건 차갑고 납작한 자격증 몇 개와 별 쓰잘데없는 구겨진 지식 같은 것들뿐이었다. 높은 학점으로 졸업했지만 취업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그 어떤 지혜도, 경험도 대학에선 별로 얻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4년 동안 대학에 투자한 나의 시간과 비용, 최선들이 아까웠다. 그러므로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애초에 대학에 들어가지 않았으리라.
그랬다면 나는 뭘 했을까, 대학에 가지 않는다면, 그 4년 동안 나는 뭘 했을까. 나는 읽고 쓰고 여행을 다녔을 것이다. 돈을 벌어 유럽 이곳저곳을 다니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을 했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용한 대부분의 중요한 지혜는 책과 성경 속에 있었고, 나의 가치관과 사고는 사람을 만나고, 부대끼고, 이야기하고 다투는 과정에서 넓어졌다. 글을 쓰면서 내면은 풍요로워졌고, 나는 좀 더 의젓해졌으며, 괜찮은 사람이 되어갔다. 나의 커리어 또한 글을 쓰면서 발전됐다. 딱딱하고 차가운 강의실에 앉아 지루한 수업을 듣는데 투자한 나의 4년간의 시간과 에너지와 자본을 그렇게 쓸 것이다.
너무 꿈같은 소리 아니냐고, 아니, 꿈같지 않았다. 모아둔 돈으로 네덜란드에서 가서 2달 동안 살아보니 알겠더라. 이건 꿈이나 환상에 젖은 소리가 아니고 현실이 될 수도 있었을 이야기라라는 것을. 네덜란드에서 집을 구해 2달 동안 살면서 나는 지역 구석구석을 여행했고, 많은 책들과 문화를 접했으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 가치관과 지식세계를 넓혀갔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좋은 순간은 이제껏 없었다고 단언할 정도로 아름답고 결코 잊지 못할, 그리고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경험이었다. 그런 경험들을 4년간 두루 쌓아두었다면 나는 단언하건대, 지금의 나보다 훨씬 넓고, 밝고, 씩씩한 인간이 되어 있었으리라. 그리고 책을 몇 권 더 낼 수도 있었겠지. 적어도 내 세계가 지금처럼 작고, 편협하고, 이다지도 옹졸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러므로 나는 자신 있게 후회한다고 말하겠다. 내 청춘의 귀중한 4년을 대학에 바친 게, 20대 인생 중에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그리고 말해주고 싶다. 오늘 막 수능을 친 학생들에게. 너무 좌절하지 말라고. 그리고 너무 들뜨지도 말라고. 다만 읽고 쓰고 여행하고 마음껏 먹으라고. 그게 당신의 인생을 진정 풍요롭게 해줄 것이며, 덜 후회하는 인생을 살게 해줄 것이라고. 수능을 친 아이들에게, 또는 치지 않은 이들에게 스물아홉의 나는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