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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Nov 29. 2022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한 당신에게

당신은 온 정성과 기력을 다하여 어떤 일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최선. 온 정성과 기력.

당신은 온 정성과 기력을 다하여 어떤 일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온 사력을 다해 공부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급하게 특목고 준비를 하느라 애가 탔다. 오죽 절박했다. 그래서 사야를 가린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돌진했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직행해 밤 12시까지 공부했고,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새벽 2시까지 공부했다. 학교 쉬는 시간에도 학원숙제를 푸느라 여념이 없었다. 공부로 시작해서 공부로 끝나는 하루가 끔찍하게 느껴졌고, 삶 자체가 피곤했다.


나중에는 강박증까지 생겨 삶을 포기하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일 년을 죽은 듯이 보냈다. 그런데 떨어졌다. 그렇게 공부했건만. 기어코 목표했던 고등학교에. 결국 나는 그렇게까지 공부해서 남들 다 가는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 것이다.


물론 고등학교에서도 열심히 했다. 원했던 학교에 가지 못했으니 내신이라도 잘 받아서 반드시 좋은 대학에 가겠노라고 다시 이를 악물었다. 전처럼 강박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기쁘나 슬프나 눈이오나 비가 오나 꾸준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최선을 다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급식 줄을 서면서도 영어단어를 외웠고, 코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풀던 문제를 계속 풀었다. 교과서가 마르고 닳도록 보았고 귀와 눈이 빠져라 강의를 듣고 문제를 풀었다. 그리하여 기어코 전교 1등도 한번 해보았더랬다.


수능일이 가까워질수록 소문이 돌았다. ‘몇 반의 김예란은 적어도 이 대학 정도는 갈 거야’

소문이 커질수록 나의 믿음도 커져갔다. 적어도, 정말 적어도 나는 이 대학 정도에는 붙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그렇게 믿었는데. 그렇게 믿었건만. 또 떨어졌다 ‘적어도’ 그 대학마저도 떨어진 것이다. 결국 정말 하향으로 적어낸 곳에 나는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이후 나는 스스로에 대해 그 어떤 자신감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내 마음 속에는 커다란 주홍 글씨가 새겨졌다. ‘아, 나는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애구나.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애구나.’ 온 사력을 다했는데도 커다란 실패로 끝난 경험은 내게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내가 발걸음을 내딛는 그 모든 길이 실패로 얼룩질까 두려웠다. 그래서 지레 포기하고, 두려워하고, 물러서고 나서지 않게 되는 순간이 많아졌다. 내 주제에 뭘 하겠다고. 어차피 내 노력은 보답 받지 못할 거고 내 인생은 잘 풀리지 않을 거야.


나는 항상 초조했고, 불안했으며 내 자신을 견딜 수가 없었다.



20살 때부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8년이 지난 후, 28살에 그 트라우마가 박살나는 경험이 내게 찾아왔다. 2년간 브런치에 쓴 글이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원고를 투고 한 게 성공했고, 운이 좋아 나는 2쇄까지 찍어 첫 책임에도 불구하고 3000부를 팔게 되었다. 


2년간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아무도 내 글을 읽어주지 않는다는 생각과 싸우며 엄청난 회의와 좌절과 번뇌와 고민이 있었지만 나는 그만두지 않았다. 작가가 되는 건 포기할 수 없는 나의 꿈이었고 글을 쓰는 건 내 삶의 일부와 나의 정체성이 되어버렸으므로. 그래서 매순간 ‘이제라도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을 꾸역꾸역 이겨내고 그저 쓰고 쓰고 또 썼다. 그리하여 그 2년간의 눈물과 노력이 책이라는 형태로 되돌아 온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으로 최선의 최선을 다한 상황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몸부림 친 그 2년이라는 시간과 노력에 보답 받은 것이다.


그 보답의 경험은 ‘나는 뭘 해도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을 고이 접어 쓰레기통에 버려버리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한 분야에서의 실패가 곧 모든 분야에서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확인하게 되었으므로. 나는 그저 성공할 수 있는 분야가 달랐을 뿐이다. 운이 안 좋은 것도 아니고, 내 노력이 부족해서도 아니었으며, 부모님의 지원이 모자라서도 아니었다. 그냥 그 길은 내게 허락되지 않은 길이었을 뿐이다. 내가 성공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을 뿐이다. 그럼 나는 내가 성공할 수 있고, 끝까지 걸어갈 수 있고, 보답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 그 길을 걸으면 된다. 내 인생은 망하지 않았고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저 대한민국 입시제도가 추구하는 방향과 내 길이 달랐을 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당신은 최선을 다했는데도 실패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그렇게 좌절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잘못하거나 모자라서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 길이 당신의 길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달랐을 뿐입니다. 당신이 성공할 수 있는 분야는 반드시, 반드시 있습니다. 당신의 최선이 보답 받을 수 있는 길을 반드시 존재하니 그렇게 좌절할 필요도, 자신을 탓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는 우리 모두가 각자 성공할 수 있는 분야가 따로 있다고 믿습니다. 이 말을 전해주고 싶어서 이 글을 썼습니다.


그러니 저처럼 바보같이 지레 겁먹고, 포기하고, 항상 자신을 탓하고, 주변을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머지않아 당신들도 꼭 당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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