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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예리 Jul 10. 2022

[뉴욕기] 1. 비행기에서 만난 뉴저지 부자(父子)

장시간 비행에서 옆자리 사람과 매끄럽게 인간 관계를 맺는 지혜

뉴욕으로 출장 겸 여행을 다녀왔다. 2022년 6월 16일 인천공항에서 JFK 공항으로 출발했다. 뉴욕에서 약 11일 간 머문 뒤 6월 27일 오후에 서울로 돌아왔다.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LA, 샌프란시스코), 대만 등 성인이 된 이후 여러 국가를 여행했다. 아쉬운 점은 그때 느꼈던 감정, 분위기를 충분히 기록해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라는 존재 어딘가에 그때 경험이 남아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라서 생각하는 방식도, 느끼는 바도 그때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이 시리즈는 현재 내가 기억하는 뉴욕을 기록하기 위한 글이다.


새벽 4시 기상. 4시 50분 집에서 출발.

사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설렜고, 긴장됐다. 행여나 비행기를 타지 못할까 걱정됐다. 첫 해외 출장이었기에 더 그랬다.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까지 가려했지만 아버지가 직접 공항까지 데려다 주신다 했다. 새벽 4시 50분에 집에서 출발했다. 도로는 속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비행기는 오전 9시 50분 비행기였다. 너무 빨리 나왔나 싶었지만 일찍 가는 게 마음 편했다.


도착해서 아버지와 쿨하게 인사를 나누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J.F. KENNEDY를 외치는 목소리가 영상에 담겨 있다. 새벽이었지만 하이 텐션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수속을 마친 뒤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바닐라 라떼 한 잔을 시켰다. 공항 내 스벅에선 기프티콘 사용이 안 된다고 했다. 기프티콘을 사용할 계획이 없었지만 종업원이 먼저 설명해줬다. 안내문을 적어두면 간편할 텐데 고생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바라 한 잔을 마시고도 시간이 한참 남았다. 면세점 구경에 나섰다. 원하는 브랜드 립스틱은 품절이라 계획하지 않은 곳에서 구매를 했다. 직원 분이 친절해서 기분 좋았다. 


이번 뉴욕 방문은 출장 및 여행이었기에 브이로그를 찍어야 했다.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카메라를 켜는 게 익숙해졌다. 공항에서 PD님이 요청한 대로 캐리어샷, 전광판 샷, 이번 출장에서 목표가 뭔지 등을 찍었다. 게이트 앞에 앉아서 남는 시간은 이렇게 촬영을 했다. 민낯이었기에 선글라스를 끼고 촬영했다. 

(재밌는 게 사실상 뉴욕에서 마지막 날에는 선글라스도 안 끼고 맨 얼굴로 브이로그를 찍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다니는 뉴요커들 모습을 보면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나도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다..?!)

 

금방 출발 시간이 다가왔다. 내 좌석은 복도 쪽이었다. 예전에는 가능하다면 무조건 창가 쪽에 앉았다. 이번에는 화장실 다니기 편한 쪽을 택했다. 창밖을 봐도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해서일까?


비행기 옆자리 부자

내 옆 자리에는 부자(父子)가 앉았다. 중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아들이 창가 쪽, 그의 아버지가 가운데, 그리고 내가 앉았다. 아들은 태극기가 박힌 검정색 나이키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한국에선 태극기 모자가 주는 분위기가 있다. 청소년이 그 모자를 착용한 모습은 생경했다. 


이륙 직전 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는 무슨 일로 뉴욕에 가세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했다. 옆의 아들은 "아가씨가 뭐야 아가씨가"라며 본인 아버지에게 눈치를 줬다. 


아버지의 한국어 말투는 조금 어눌했다. 조심 또 조심하라는 울 어무니 말씀이 떠올랐다.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별 걱정이 다 들었다. 얼마 전 읽었던 김연수 작가가 쓴 '지지 않는다는 말'의 구절이 생각났다.


"여행자란 어떤 사람인가? 일어난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넘겨짚고, 현지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여기는 사람이다. 우린 애당초 그렇게 생겨 먹었다."

저 구절에 밑줄까지 치면서 열린 마음을 갖자고 다짐 또 다짐했었다. 그래, 이 질문에 대답하는 건 그 시작이다. 라고 판단했다. 찰나였지만 별의 별 생각을 다했다.


"저는 기자에요. 뉴욕에 행사가 있어서 취재하러 가요. 일정 앞뒤로 휴가도 내서 여행도 조금 하려고요."


그 분은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본인들은 뉴저지에 산다는 것, 20여년 만에 한국에 왔는데 골프장이 너무 많아진 걸 보고 깜짝 놀랐다는 것, 한국 오니 마스크를 써야 해서 불편했다는 것, 맨해튼에서 열흘 있으면 볼 게 없으니 워싱턴으로 넘어가라는 이야기까지. 


그러고 자연스럽게 대화는 끊겼다. 나는 그 아버지가 인간관계를 매끄럽게 풀어가는 지혜가 있다고 판단했는데, 이유는 이렇다. 부자는 화장실에 가고 싶거나 스트레칭을 하고자 이동해야 할 때 내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이때 나와 어느 정도 안면을 터 놓으면 양해를 구하기 조금 더 수월하다. 장기간 비행에서 더 서로를 배려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나도 조심했지만 부자는 나를 더욱 배려했다. 내가 화장실에 갈 때 맞춰 부자가 동시에 화장실에 갔다. 이 사실을 눈치 채곤 나는 주기적으로(?) 화장실에 다녀왔다. 사전에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면 그 짧은 시간에 이처럼 유대감이 형성됐을까 의문이다. 그들은 승무원에게도 매번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착륙이 가까워질 때쯤 그에게 말을 걸었다. "뉴욕에서 꼭 먹어봐야 할 맛집이 있나요?" 그는 이탈리아 음식을 추천했다. 파스타, 피자는 다 맛있다는 설명이었다. 조심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시아인 혐오 범죄가 많아 분위기가 흉흉하다는 것이었다. 아들이 제지해서 마저 듣지 못했는데 이때 조금 겁이 나긴 했다.


그에게 우버는 안전하냐고도 물었다. 그는 뉴욕 노란 택시가 더 안전하다고 답했다. 돌이켜 보면 흥미로운 대답이었다. 다른 한국인들은 우버를 애용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뉴욕에 20여년 간 산 주민은 새로 나온 서비스인 우버보단 오랫동안 이용해온 뉴욕 택시에 안전함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여행객 등 이방인은 말로 설명해야 하는 노란 택시보다 앱으로 편리하게 이용가능한 우버에 안전함을 느낄 수 있다. 살아온 입장에 따라 기준과 잣대가 다르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그렇게 나는 13시간이 넘는 비행을 거쳐 뉴욕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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