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다'의 정의를 내려본다.
한국에 돌아온 지 5일 차다. 시차보다도 날씨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어제는 낮에 걷다가 살짝 어지러웠다. 체력왕인 내가 살면서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화들짝 놀라 점심으로 누룽지 삼계탕을 먹었다. (건강이 최고다.ㅋㅋ)
브뤼셀과 파리에서는 계속 걸었다. 하루에 2만 5000보는 기본이었고, 3만 보 가까이 걸은 날도 꽤 된다. 브뤼셀 날씨는 비가 쏟아지다 해가 쨍쨍하다 종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비가 잔뜩 내린 뒤 눈부시게 햇살이 비치던 밤 8시 즈음 우연히 무지개를 마주했다. 신기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감사했다. 취재 준비만 열심히 했지 해당 국가 날씨는 으레 여름이겠거니 했던 나는 이날 처음 '백야'를 경험했다.
파리는 생각보다 작았다. 해가 길었기 때문에 일정을 마치면 무조건 밖으로 향했다. 아침에는 눈이 저절로 떠졌다. 소풍 가는 날처럼 설렜다. 잠자는 시간이 아까웠다. 준비해 온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세수도 안 하고 나갔다. 센 강을 뛰다 걷다 했다. 눈만 뜨면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이 벅찼다.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옷차림 때문인지 관광객들이 여러 차례 내게 프랑스어로 길을 물었다. 못 알아 들으면 영어로 되물었는데, 영어로 말해도 나는 그곳이 어딘지 모르니 답을 해줄 수 없었다. 고개를 저으면 그들은 내가 영어 발음을 못 알아 듣는 줄 알고 살짝 어설픈 프랑스식 발음을 반복했다. 그러면 나는 미안하지만 모른다는 뉘앙스로 어깨를 살짝 들어주고는 사뿐히 자리를 떴다. 그러고는 괜히 나한테서 파리지앵 바이브가 풍기나 싶어 혼자 슬쩍 웃었다.
두바이에서는 걷기 힘들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왜 이 시기에 두바이를 왔느냐고 물었다. 나도 두바이가 이 정도 날씨인 줄은 몰랐다고 답하고 싶었지만 말을 아꼈다. 40도가 넘는 두바이는 요즘이 비성수기라고 했다. 하늘은 뿌옜다. 바닷가 근처인 두바이는 수증기와 더불어 모래바람, 도시 개발로 인한 공해 등으로 여름에는 하늘이 뿌옇다고 했다. 두바이 현지인들은 우스갯소리로 이를 두고 '두바이 미스트'라고 표현했다. 낮에는 밖에 잠시라도 나가면 숨이 막혔다. 웬만하면 걷는 걸 선호하는 나도 거리와 상관없이 무조건 택시를 탔다. 호텔 비용이 예상보다 저렴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내 주변 지인들은 익히 들어 알겠지만 나는 평소에 '쪼다'가 싫다는 말을 많이 한다. 쪼다의 정의를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로 늘 쪼다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런데 문득 한국에 온 지 5일 차이고 비도 오고 그래서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나는 쪼다의 정의를 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가 유연하지 않은 사람. 자기가 경험해 온 세계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 대화를 하면 앞뒤가 턱턱 막힌 기분이 드는 사람. 그런 사람이 쪼다다.
약 10일 동안 3개 국을 돌아다니는 값진 경험을 하면서 세상은 넓고 가볼 데는 무궁무진하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은 넓고 가볼 데는 무궁무진하다'라는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것에서 나아가 정말 그렇다고 온몸으로 체감하게 됐다. 마음이, 사고의 경계가 말랑말랑해진 기분이다. 그럴 수 있겠구나. 그렇겠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는 아직 쪼다인 인간일지도 모른다. 성장무새로서 내게 성장은 중요한 가치다. 나는 앞으로도 더 넓은 세상을 자유롭게 누비면서 시야를 넓히고 마음을 키우며 청춘으로 살아갈 테다.
(여행기는 순차적으로 올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