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예리 Aug 08. 2023

영화 '더 웨일', 구원의 주체는 누구일까.

"안타까운 일이다. 고래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집중하기 어려운 영화였다. 보다가 잠들어서 다음 날 다시 봤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왜?





(스포주의)






주인공 찰리는 200kg가 넘는 거구다. 혼자 힘으로는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몸집이 비대해다. 그는 매일 피자를 시켜 먹는다. 미트볼 샌드위치나 치킨 등이 주식이고 폭식도 한다. 그런데 그를 유심히 보면, 음식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냥 입에 음식을 마구마구 쑤셔 넣을 뿐이었다. 일종의 자해 행위처럼 보였다.


그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혹사시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일찍이 결혼했다. 딸 엘리가 여덟 살이 되던 해 한 남자, 앨런을 만났다. 앨런은 찰리의 작문 수업 수강생이었다. 찰리는 앨런과 첫 산책에서 키스를 했다. 그렇게 둘은 연인이 됐다. 찰리는 가정을 떠났다. 사랑만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지만 기대는 무너졌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으로 선교사 활동까지 했던 앨런이 자책감에 빠졌기 때문이다. 앨런은 가족과 연을 끊었지만 종교는 끈질기게 그에게 달라 붙었다. 연인 찰리의 사랑도 앨런을 구원하진 못했다. 앨런은 식음을 전폐하다 죽음을 맞았다. 이후 찰리는 사랑의 상실과 가족을 떠났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스스로에게 음식으로 '형벌'을 가한다.


찰리는 숨이 가빠져올 때마다 '모비 딕'과 관련된 에세이를 읊는다. 첫 장면에서부터 이 에세이가 등장한다. 에세이 정체는 마지막 장면에서 밝혀진다. 그의 딸 엘리가 어릴 적 쓴 에세이였다.


나는 영화의 수미상관을 이루는 에세이와 앨런의 죽음,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모두 연결돼 있다고 풀이했다.


에세이 내용 일부를 공유한다.


"이스마엘과 퀴케크는 교회에 갔다가 배를 타고 출항하는데 선장은 해적인 에이허브다. 그는 다리 하나가 없고, 어떤 고래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 고래 이름은 모비 딕. 백고래다. 내용이 전개되면서 에이허브는 많은 난관에 직면한다. 그는 평생을 그 고래를 죽이는 데 바친다. 안타까운 일이다. 고래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를 죽이려는 에이허브의 집착도 모른다. 그저 불쌍하고 큰 짐승일 뿐. 에이허브도 참 가엽다. 그 고래만 죽이면 삶이 나아지리라 믿지만 실상은 그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될 테니까." - 영화 '더 웨일(The Whale)' 중.-


고래는 나를 괴롭히는, 혹은 내가 집착하는 그 무엇에 대한 은유다. 누군가에 대한 증오, 실망, 원망, 해묵은 감정 등 그 대상은 뭐든 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정작 그 대상은 내가 괴로워 한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점이다. 에이허브 선장이 모비 딕을 죽이려 발버둥치는 동안 모비 딕은 그저 유유히 바다를 헤엄칠 뿐이다.


스스로 음식을 거부한 앨런과 스스로 폭식을 택한 찰리. 앨런과 찰리는 오랜 친구, 연인, 가족이 내민 구원의 손길을 외면한다. 에이허브 선장이 평생 고래에 집착했듯 이들은 고통에 사로잡힌 셈이다.


영화에선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구원의 주체는 '나'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러한 메세지가 마지막 장면에 담겼다. 내내 기구에 의존해 걷던 찰리는 처음 혼자 힘으로 일어난다. 힘겹지만 힘주어 발걸음을 내딛는다. 영화 시작부터 줄곧 집 밖에는 비가 내렸는데, 이 장면에선 유일하게 해가 났다. 찰리의 해방을 상징하는 듯했다.


원점으로 돌아가 내가 왜 눈물이 났는지 생각해 본다. 주체적이지 못한 삶을 살던 찰리가 마침내 자유로워졌다는 점에서 함께 해방감을 느낀 것 같다.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추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도 오고 그래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