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일
아직도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의 설렘을 기억한다. 새 교과서를 받아와 네임펜으로 또박또박 이름을 쓰고 책싸개로 정성껏 표지를 쌌던 날들. 수능 공부는 책, 공책, 프린트물을 쌓아가며 해내었고 대학교와 대학원은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하염없이 두드리며, 그야말로 손목을 바쳐가며 해내었다.
내겐 학교야말로 성장하는 곳이었다. 그러니 학교를 졸업하면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도 당연하다. 직장인이 되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되어 가던 나는 이제 나의 성장을 내가 아닌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건강, 하루의 행복, 기분의 조절, 관계, 시간을 쌓아가는 방식까지 모든 것은 온전히 나에게 달려있다.
그래서 올해 내 최대의 고민 화두는 바로 ‘성장’이다. 나에게 성장이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성장을 위해서 스스로를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실험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렇게 글을 발행하는 것도 그 실험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풀타임 직장인으로 근무하는 나의 하루는 주로 짧은 아침 개인시간 - 업무시간 - 저녁시간 - 하루의 마무리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무래도 업무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업무 기술의 성장이나 향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술적인 부분보단 업무 외적인 부분, 이를테면 책을 읽는다거나 경험을 통해서 배운 것들, 이 성과에 이르기까지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관계도 마찬가지인 게, 배우자에게 좋은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성장을 위해 내가 올해 노력하고 있는 건 바로 열심히 기록하는 것이다. 이는 하루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고, 하루에 내가 흡수하는 인풋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하루에 대한 기록 (시간관리, 스케줄 관리 등)에 치중했다면 요즘에는 인풋과 생각을 적으려 한다. 그동안 책을 많이 읽는 데에 치중해 왔다면 요즘에는 좋은 책을 여러 번 읽고 적으며 인풋을 체화시키고 내 삶에 적용시키고자 한다. 하루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오늘 나는 어떤 것을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어떤 게 잘 풀리지 않아 답답했는지, 일주일을 돌아보았을 때 어떤 영역에 치중한 일상을 살았는지, 아쉬운 점은 무엇이었는지, 읽은 것 중 정리하고 싶은 내용엔 어떤 게 있는지 적어가다 보니 분기당 한 권 정도의 노트를 끝까지 써내고 있다.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이렇게 종이에 펜으로 열심히 글씨를 쓴 건 처음이다.
그리고 브런치를 열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 인풋‘에 비해 ’ 아웃풋‘의 비중이 너무나 낮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책을 여러 번 읽고 내용을 적으며 정리하더라도 하루를 마무리할 때 즈음이면 그 좋은 글귀들은 속절없이 휘발된다. 기록을 처음 시작한 게 의미 없이 날아가는 하루하루가 아쉬워서였는데, 이렇게 머릿속에 남는 게 없다니 어이가 없을 정도다.
내 안에 들어온 것들이 나에게 오래오래 남기 위해서는 결국 생각하고 요약하는 과정을 많이 거쳐야 한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오늘 하루를 한 번이라도 더 찬찬히 돌아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기록을 하다 보면 매일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하루하루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 새삼 깨닫는다. 내가 오늘 읽고 적은 것들,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 것들, 아주 작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소한 순간들이 쌓이면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키는지도 느낄 수 있다. 오늘 가장 기억하고 싶었던 것은 매월 말 발행되는 윤소정의 <생각구독>에 나왔던 구절, 바로 ‘위대한 사람이 매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기록하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 된다’는 말이었다.
작은 글이나마 매일 적으며 마음에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