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무의식 속에 있는 가장 큰 고민은 AI이다.
어떻게 하면 뒤처지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 수 있을까?
AI가 선도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언젠가 내 직업이.. 대체되는 날이 오진 않을까?
그런 날이 오면 내 역할은 어떤 게 되는 걸까?
그런 날을 대비하기 위해 난 지금 무얼 해야 맞는 걸까?
내 직업은 데이터분석가. 동료들 중에서 대부분이 이미 생성형 AI를 코딩이나 자료조사에 활용한다.
회사 정보 유출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코드 전체를 작성해 달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 AI가 지금까지 준 도움이 꽤나 톡톡하다.
특히나 특정 코드를 기억하지 못할 때나 오류가 생겨 디코딩을 할 때 유용하게 쓰고 있다.
그 외에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낼 때에도 도움을 받는 편이고 단순한 검색에도 구글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명료한 답변을 주기 때문에 애용하고 있다.
최근 업데이트한 Chat GPT 4o는 그럴듯한 데이터 분석을 하고 그래프나 표도 직접 만들어준다.
이전에 데이터 분석가로 이직하려 했을 땐 기술적인 부분이 가장 큰 장벽이었다면,
이젠 복잡한 기술력을 스스로 가지지 않더라도 충분히 분석을 해낼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나는 30대의 남은 기간 동안 커리어를 위해 기술적 내공을 쌓기로 결심했었다.
그런데 지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생성형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바보 같은 결심은 아닐까 반문하게 되었다.
지금 커리어적인 성장을 위해 무얼 하는 게 옳은 걸까 하는 고민을 안고 지낸 지 어언 반년…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 바로 사람. 그리고 관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다.
오류가 적은 깔끔한 데이터를 가지고 통계 분석을 하거나 그래프를 만드는 것?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어려운 것은,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 의미 있는지를 알아내고, 분석의 결과가 정말로 현장에서 실현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나는 종종 나의 직업을 ‘인하우스 컨설턴트’라고 생각한다.
조직 안에서 일하지만 늘 ’ 고객‘의 요청을 받고 분석 결과를 제공한다.
요청을 하는 사람이나 팀원들이 분석을 원하는 이유는 분명 그들의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발견하고 싶거나 문제를 해결하고 싶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 요청이 꽤나 명확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바로바로 결과를 제공했다.
그런데 자꾸만 추가 요청이 들어왔다. 이걸 추가하고.. 다른 건 빼고.. 이걸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이렇게 추가 요청을 받으며 내 역량 부족으로 인해 이런 일이 생기는가 싶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문제는 요청을 하는 사람들이 진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스스로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경우가 적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뭔가 제대로 돌아가진 않는데, 해결책을 찾기 힘드니, 이것도 들여다보고 저것도 들여다보며 어떻게든 갈피를 잡으려 하는 거였다…
사실 나는 요청받은 데이터를 넘겨주면 그만이지만, 함께 그들의 업무에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문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일하니 종종 문제는 다양한 각도의 분석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고,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경우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나 프로세스에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순히 발표 자료를 넘기는 대신 ‘함께‘ 치열하게 고민했다.
도메인 지식을 얻기 위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면담을 요청하고 현장에 나갔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무엇일지 고민하고, 다른 분석가들에게 물었다. 그들이라면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AI가 콕 집어 해결할 수 없는 것, 그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사람 간의 관계이다.
시스템이 잘 되어있는 곳에도 사람이라는 변수가 작용하는데.. 하물며 시스템 자체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곳도 많다.
그러니 앞으로도 조직에는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문제에 주저 없이 뛰어드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설령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AI의 도움을 받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나도 관심을 확장시키기로 했다.
늘 스스로에게만 들여다본 렌즈를 다른 사람들에게 비추고,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걸 노력해 보기로 했다.
결국 ‘데이터 분석’의 본질, 문제 해결에 맞닿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해결책이 현장에서 실현될 수 있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지금도 찾기 힘들고 앞으로도 찾기 힘들 것이다. 내가 하루하루 쌓아 올리는 작은 노력의 결실이 모여 언젠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