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다정함

by 예림 RINA
이런 것 저런 것을 비판 못하시는 부모는 그저 별안간 네가 없어졌대서 눈물이 비 오듯 하시더라. 그것을 내가 "아 왜들 이리 야단이십니까. 아 죽어 나갔단 말입니까." 이렇게 큰소리를 해 가면서 무마시켜 드리기는 했으나 나 역시 한 삼 년 너를 못 보겠구나 생각을 하니 갑자기 네가 그리웠다. 형제의 우애는 떨어져봐야 아는 것이던가.

편지하여라.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네 편인 것을 잊지 마라. 세상은 넓다. 너를 놀라게 할 일도 많겠거니와 또 배울 것도 많으리라.
이 글이 실리거든 『중앙』 한 권 사 보내 주마. K와 같이 읽고 이 큰오빠 이야기를 더 잘하여 두어라.

축복한다.
내가 화가를 꿈꾸던 시절 하루 오 전 받고 '모델' 노릇 하여 준 옥희, 방탕불효(放蕩不孝)한 이 큰오빠의 단 하나 이해자(理解者)인 옥희, 이제는 어느덧 어른이 되어서 그 애인과 함께 만리 이역 사람이 된 옥희, 네 장래를 축복한다.

이틀이나 걸렸다. 쓴 이 글이 두서를 잡기가 어려울 줄 아나 세상의 너 같은 동생을 가진 여러 오빠들에게도 이 글을 읽히고 싶은 마음에 감히 발표한다. 내 충정(衷情)만을 사다오.

닷새 날 아침
너를 사랑하는 큰오빠 쓴다.
- 이상, 동생 옥희 보아라

내가 살면서 오빠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오그라드는 마음을 잠시 뒤로 하고 이 감정이 휘발되어버리기 전에 빨리 기록해두어야겠다.


나에게는 쌍둥이 오빠가 한 명 있다.

한 날 한 시에 태어나, 3분 차이로 오빠라 부르는 사람이 있다.


송우영. 송예림.

부모님이 ‘우애’ 있게 지내라고 이름의 가운데자도 이렇게 지어놨건만.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참 지지리도 앙숙처럼 많이 싸웠다.


우리 오빠는 다정한 스타일이 아니다.

말을 예쁘게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살뜰히 챙겨주는 사람도 아니다.

어렸을 때는 그 점이 굉장히 서운했다.

시인 이상이 동생 옥희에게 하는 것에 반의 반만큼 만이라도 해줬으면. 하고 바랐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상의 말처럼, 형제간의 우애는 떨어져봐야 아는 것이던가.

집에서 나와 독립한지 약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오빠에게 고마운 일이 문득 떠오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부모님을 졸라 방학동안 호주로 어학연수를 갔었는데, 당시 휴대폰이 없던 나에게 오빠는 본인의 휴대폰을 기꺼이 빌려줬다.

먼 타지까지 가서 휴대폰도 없으면 어떡하냐며.

아이폰으로 사진 많이 찍고 추억 남겨오라고 했다.

본인은 그 동안 휴대폰 없이 사는 불편함을 감수했으면서도.. 생색 한 번을 내지 않고.

덕분에 당시 남긴 사진들은 여전히 내 앨범 한 켠에 소중하게 간직되어있다.


한 번은 오빠의 친구들이랑 다같이 술을 마셨는데,

오빠 친구들이 말하기를

“우영이가 술 취하면 동생 자랑을 어찌나 하던지,

맨날 들어서 지겹다“ 더라.

평상시에 칭찬은 커녕 좋은 말 한 번 해준 적이 없는 오빠였기에, 믿지 못해 여러 번 되묻는 나를 두고

오빠는 쓸데 없는 소리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라며 술잔만 기울였다.


또 한 번은 엄마랑 서운한 점이 쌓여서 전화로 싸웠던 날, 오빠가 전화가 왔다.

서운함이 폭발해 그 동안 쌓였던 울음과 화, 짜증을 쏟아냈는데

오빠는 몇 시간동안 그저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 뒤로 엄마랑 화해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오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잘했다”고만 했다.


다정함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말을 본 적 있다.

발산하는 다정도 있지만 수렴하는 다정도 있다는 말.

그저 들어주고, 좀 모르는 척 해주고, 함구하는 그런 종류의 다정.

이십대 후반이 되어서야, 난 오빠의 다정을 느낀다.


새삼스럽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 전화한 오늘도

오빠는 “술 마셨냐?” 랜다.

김이 팍 새다가도, 그래 이런 사람이지 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이런 종류의 사람이 내 오빠여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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