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속의 슬픈 나
최근에 만난 친구들이 내게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내가 '분명 웃고 있는데 울고 있다'는 말이다.
차라리 울라고, 울어도 된다고.
그렇게 슬픈 눈으로 웃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최근에 꽤 자주 들었다.
결혼을 한 이후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이사를 온 탓에 다들 멀리 사는 친구들과 모처럼 만나 서로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얘기들을 하다 보면 내 얼굴은 급격하게 어둠이 드리워진다.
친구들과 만나면 너무 좋고 행복한데, 과거의 얘기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들떠서 얘기를 하다가도 현실의 나를 깨닫는 순간 아차 싶은 마음에 주춤한다.
그와 동시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큰 돌덩이가 나를 짓누르는 느낌을 받는다. 밝은 얘기를 하고 싶어도 더 이상 목구멍이 막힌 듯 가슴속 단전에서부터 어떤 이야기도 나오질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행복한 얘기를 꺼내고 싶어도 행복하질 않으니 행복한 얘기를 꺼낼 수 없다.
매번 혼자 벽을 보는 게 일상인 결혼생활이나, 시골살이에 대한 막막함이나 당장에 분만취약지 산골에서의 두려운 출산은 둘째치고 앞으로 병원이나 인프라가 없는 시골에서 아무런 도움도 없이 혼자 육아를 해야 하는 현실이나 여전히 지독하게 날 괴롭히는 시댁 얘기들을 꺼내다 보면 어느새 맞은편에서 내가 힘들 것 같아 걱정이 된다며 눈물짓는 친구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괜찮아, 지금까지도 해냈으니 앞으로도 어떻게든 해낼 거야. 울지 마. '
친구를 다독이며 이야기하고 내 눈에도 눈물이 가득 찬 채로 내 얼굴은 또다시 웃는다.
그런 나를 보는 친구는 차라리 그냥 울어버리라며 또다시 운다.
벌게진 눈으로 웃으며 흐르지 않는 눈물을 삼키는 내 모습은 나 스스로 보진 못하더라도 꽤나 안쓰러울 걸 안다.
웃고 싶지 않은데, 나도 한 번쯤 내 사람 앞에서는 마음 놓고 울고 싶은데 이미 습관처럼 웃는 얼굴이 고착화되어버린 내 얼굴이 이럴 땐 정말 밉다.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행복하고 싶었는데,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 생각했는데 결국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아무리 행복하려는 가면을 써도 가면 속의 나는 여전히 슬퍼하고 있다는걸, 알면서도 외면해왔었다.
늘 결혼을 하면 행복이 당연한 수순처럼 따라붙는다고 생각했기때문에 결혼 이후에 외롭고 불행해진 나를 차마 인정하고싶지 않았다.
그렇게 내 스스로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는 프레임 안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고 실상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충분히 행복하잖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그러니까 웃어. '라며 내게 보통 사람들의 보편적인 행복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는 법을 잊어버렸나 보다.
우는 나는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 아니니까, 그대로 숨겨둔 채 살아왔나 보다.
어쩌면 나는 정말 우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버릴 걸 알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무너지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당장에 애써 괜찮다고 우는 얼굴을 감추고 웃고 있는 내가, 언제까지 웃을 수 있을지 이젠 잘 모르겠다.
나는 더 이상 웃고 싶지 않다.
슬픈 감정이 들 때는 마음껏 울어보기도 하고, 억지웃음이 아닌 정말 행복해서 웃어보기도 하고 싶다.
더 이상 괜찮은 나, 씩씩한 나, 마냥 밝은 나로 살고 싶지 않다. 날 위해서라도 이젠 감정을 숨긴 채 바보처럼 웃고 싶지 않은데 이미 나는 오래전부터 나를 위해 사는 방법은 알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아마 우는 얼굴을 감추고 웃으며 살아가겠지.
나는 앞으로의 내가 너무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