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작은 행복
시골살이를 하다 보면 사람보다 식물과 더 많은 말을 나누게 된다.
묵묵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존재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느려지고, 단단해지는 걸 느낀다.
인적 드문 낯선 산골에서의 시골살이가 외롭고 힘들긴 하지만 이곳의 푸르른 자연을 산책하며 그 속에 머무는 건 여태껏 내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며칠 전엔 도시 나들이를 가며 다이소에 들렀다가
눈에 띄던 작고 귀여운 ‘오이 키우기 세트’를 하나 집어 들었다.
산책을 하며 논밭의 작물들을 볼 때마다 나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마침 마주친 씨앗과 흙, 작은 화분에 왠지 모를 설렘이 있었다.
집에 돌아와 조심스레 화분에 흙을 담고,
눈에 겨우 보이는 조그만 씨앗을 손바닥에 올려 한참을 바라봤다.
생명이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문득 경이로운 마음이 들었다.
천천히 설명서를 읽으며 흙 사이에 씨앗을 심고서는
물을 주고,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엔 물을 줄 때마다 잘 자라고 있냐고, 얼른 자라 잎을 보여달라고 오이에게 말을 걸었다.
며칠도 지나지 않아 드디어 오이의 아주 작은 떡잎이 모습을 드러냈다.
초록의 점 하나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단 며칠이었지만, 나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서
혼자 웃고 있었다.
내가 틔워낸 작은 잎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여리지만 단단한 연둣빛 떡잎을 손끝으로 조심스레 매만지며 이 세상에 와줘서 고맙다고, 열심히 자라달라고 말을 했다.
그날 이후, 오이는 하루하루 다른 모습으로 자랐다.
잎이 커지고 줄기가 길어지더니 빠르게 자라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하는 모습에 서둘러 지지대가 될 만한 나뭇가지를 찾아와 오이의 곁에 둘러줬다.
곧 오이엔 화사한 노란 꽃이 피었고,
비록 예쁜 꽃이 피었던 시간은 짧았지만 꽃이 지고 난 자리엔 조그만 오이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손가락 한마디보다도 작은 크기의 오이.
처음엔 그게 뭔지도 몰라 계속 눈으로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항상 오이를 사면서도 오이가 어떻게 자라는지 그 과정은 알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자 그 조그만 것은 하루가 다르게 길쭉하게 자라났고, 얼추 오이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여리지만 단단한 생을 품고 있는 오이는 내 마음속에 어떤 힘을 가져다줬다.
마트에서 쉽게 사던 오이를,
나는 지금 내 손으로 키우고 있다.
그 과정을 함께하며 내 하루가 더 큰 행복으로 채워지는 걸 느낀다.
시골에 산다는 건 자연의 느리고 고요한 기쁨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오이가 자라는 모습을 매일 들여다보는 시간 속에서
나는 점점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오늘도 작은 화분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세상에 그냥 피고 지는 꽃은 없구나.
그 작은 생명이 자라는 동안, 나도 매일 함께 조금씩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