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집에서 주워 온 봄

봄은 이렇게 우리 집에 왔다

by 린꽃


지난주엔 친정에 내려와 지내는 동안 아기를 데리고 처음으로 할머니 집에 다녀왔다.
할머니 집은 제천 시내에서도 떨어져 있어 차로 삼십 분쯤 달리면 나오는, 논과 밭 사이에 조용히 위치한 시골집이다.
늘 혼자 할머니를 뵈러 가던 길을 뒷좌석에 아기를 태우고 가니 감회가 새로웠다.
익숙하지만 어딘지 쓸쓸한 겨울의 시골집들을 지나 드디어 도착한 할머니 집.
3월이 되니 아직 바람은 차가운데도 나무들에는 여기저기 꽃망울이 맺혀있었고, 밭에는 드문드문 냉이나 달래가 올라와 봄이 먼저 찾아와 있었다.


할머니 집 앞, 봄이 먼저 찾아온 밭


낮잠 시간에 맞춰 와서 차에서부터 잠든 아기는 낯선 할머니 집에서도 깨지 않고 계속 잤다.
아기가 곤히 잠든 숨소리를 확인하고 할머니에게 냉이를 캐오겠다고, 아기가 깨지 않는지만 봐달라고 말을 한 뒤 호미와 바구니를 받아 마당을 지나 집 앞밭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호미질을 하니 재미있어서 괜히 땅을 두드려보다가, 이윽고 초록빛이 올라오는 흙에 고개를 숙이고 파보면 여기저기서 냉이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아기를 재워두고 냉이를 캐고 있는 오후라니.
엄마가 된 뒤의 첫 봄은 이렇게 조용한 장면으로 시작되는 것 같다.


냉이를 다 캐고 돌아오던 길, 밭 옆의 마당 한쪽에서는 닭들이 느긋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닭장의 닭들을 구경하던 와중에 어느새 곁에 선 할머니가 닭장 문을 열어 보시더니 마침 초란의 있으니 가져가라고 챙겨주셨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작고 옅은 색을 띤 달걀과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닭들을 한참 번갈아 들여다봤다.



다시 아기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할머니가 지난가을에 캐 두었다는, 크기가 남다르게 큰 고구마도 한 봉지 챙겨주셨다.
집에 와서 그 고구마로 고구마빵을 만들어 보고
아기 먹일 고구마 티딩러스크 간식도 만들어 보았다.
아기는 처음 먹어보는 고구마가 꽤나 마음에 들었던지 빼앗으면 울더니 한참을 씹다가 결국 잘 때도 쥐고 잠들었다.


낮 동안 직접 캐 온 냉이는 깨끗이 씻어 된장국에도 넣고
간단하게 무쳐도 먹었다.
밭에서 캐 온 냉이는 고작 한 바구니인데 부엌에는 금세 봄 냄새가 났다.



돌아보면 특별한 일이 있었던 하루는 아니었다.
아기를 재워두고 캐 온 냉이, 닭장에서 받아 온 초란, 그리고 할머니가 챙겨주신 고구마.
그저 이런 사소한 것들이 오늘 하루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오래 따뜻했다.
언젠가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이 밭에서 냉이를 함께 캐게 될까.
오늘 내가 주워 온 봄의 흔적들이 우리의 어느 날 이야기로
조용히 남아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봄을, 나는 조금 오래 기억해 두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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