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도, 나도 함께 견딘 시간

혼자가 아니었던 6개월 접종의 밤

by 린꽃

친정에 오자마자 아기는 6개월 접종을 맞았다.
화천에 있을 때와 다른 점이라면 접종을 위해 읍내까지 왕복 두 시간을 운전하지 않아도 유모차를 끌고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소아과가 있다는 거다.
물론 가족들 모두 일을 하고 있으니 친정에서도 혼자 아기를 데리고 다녀야 하는 건 똑같았지만, 근방에 병원이 있는 것만으로도 부담은 훨씬 덜했다.



월요일 오전 열시쯤 방문한 집 근처의 소아과는 항상 한적해서 사람이 없다.
원장님이 조금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다는 후기가 많은 곳이라 보통 시내나 다른 동네의 소아과를 많이들 가는 것 같지만 병원이 없는 곳에서 살다 온 나는 친절 여부를 떠나 그저 병원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기도 하고, 언제 가든 대기가 없는 게 좋아서 친정에 올 때마다 아기를 데리고 집 근처의 소아과를 찾는다.



접종을 한 뒤엔 집에 돌아오던 길에 바로 옆의 대형마트도 한 바퀴 돌고, 집 앞에 새로 생긴 아기 옷 매장도 구경하고 왔다. 집에 온 이후로는 매일같이 유모차를 끌고 나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게 꽤나 재밌다.



화천이었으면 접종 날 보건소까지 두 시간 운전으로 이미 지쳐있었을 텐데, 산책하듯 유모차를 끌고 소아과와 마트를 다녀온 뒤에도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었다.
낮 동안 내내 자는 아기와 같이 낮잠도 자고 저녁에 퇴근한 부모님, 남동생과 족발도 시켜 먹었다.
늘 접종일 이면 밤에 열이 오르기 전에 긴장하며 나는 뭘 먹는 줄도 모르게 아기만 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함께하는 사람이 있는 저녁은 달랐다.
가족들은 일상 얘기를 하거나 이번 주말 계획 얘기를 하며 밥을 먹는 동안 대수롭지 않게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마음도 훨씬 편했고, 다 같이 저녁을 먹고 난 뒤엔 가족들 모두 운동을 하러 가고, 나 혼자 남아 아기를 돌봤다.



낮 동안 미열이 지속되던 아기는 6시가 넘어 이번에도 어김없이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몸이 뜨거워지더니 열은 금방 40도를 넘겼다. 아기는 아프다며 악을 쓰고 몇 시간을 울기 시작했고, 나는 익숙하게 큰 대야에 미지근한 물을 받아와 손수건으로 내내 아기 몸을 닦아줬다.
아홉시쯤 운동을 다녀온 부모님이 우는 아기를 번갈아 안아주고 머리에 찬 손수건을 대줬고, 네 시간 간격으로 해열제를 먹였다.
평소엔 해열제를 먹고 한 시간쯤 지나면 열이 조금이라도 내렸는데 이번엔 달랐다.
해열제도 듣지 않고 39도 이상 열이 지속됐을뿐더러 안 그래도 수유량도 적고 주사를 맞은 날은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빈속에 계속 토를 했다.
아기가 아프니 나도 같이 지치던 와중에 부모님이 덤덤하게 나와 동생을 키우며 겪어본 일이라고 능숙하게 나서서 내내 옆에서 아기 손을 잡아주고 닦아주며 달래줬다.



울다가 새벽쯤 겨우 선잠이 든 아기 옆에 누운 친정엄마는 아기를 토닥이며 이렇게 힘든데 그동안 혼자 어떻게 했냐며 속상해하셨다.
지금까지는 이 정도로 아픈 적이 없었다고, 이번이 제일 심하다고 얘기하면서 나도 지쳐서 잠깐 누워 쪽잠을 청했다.
자면서도 아기가 낑낑거리는 탓에 잠들지 못하다가 곧 다시 열이 올라 우는 아기를 안고 달래며 또다시 온 가족이 아침까지 밤을 새웠다.




설상가상 나는 그날 새벽에 아기를 안고 돌아다니다 허리를 삐끗해서 한동안 걷지 못할 정도로 아팠는데, 여전히 혼자였더라면 치료도 못 받고 홀로 아기를 돌보며 힘들었을 텐데 며칠간 아기를 맡기고 낮 동안 치료도 받고 오며 지금은 절뚝거리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걸을 수 있게 되며 천천히 회복하고 있고, 다행히 아기도 그 뒤로 이틀간 열이 지속되다 언제 아팠냐는 듯 지금은 쌩쌩하다.



늘 혼자 버텼던 접종의 날이 그렇게 지나갔다.
아기도, 나도 아팠던 이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늘 아무렇지 않게 나 홀로 잘 견뎌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도 누군가의 품이 필요했던 사람이라는걸.
내가 아파서 아기를 안아주지 못하는 동안 온 가족이 돌아가며 아기를 안고 돌봐줬고, 정신없어서 자꾸만 받아온 약을 깜빡하는 내게 시간마다 약을 챙겨줬다.
아기가 아파서 칭얼거리는 동안에도 내가 허리를 붙들고 기어 나와 아기를 보려고 하면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더 누워있으라며 돌봐준 덕분에 아이를 맡기고 잠깐이라도 쉬며 회복할 수 있었다.
누군가 아기를 봐줄 테니 쉬라고 말해주는 시간들은 생각보다 더 안정되고 따뜻했다.
항상 혼자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접종의 날.
혼자 울고, 혼자 달래고, 혼자 밤을 새우던 날들이
이번에는 함께여서 덜 무서웠다.
친정에 아기를 돌보러 왔다가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돌봄을 받았다.



이날의 기억은 아마 오래도록 나를 버티게 할 것 같다.
아마 또다시 혼자일 다음 접종의 날이 오더라도,
이날의 온기를 떠올리며 조금 덜 두려워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