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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리 May 08. 2020

12시간의 출구조사원 고생담

대학원생은 대체로 가난하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들은 특히 더 그렇다. 대학원생들의 유이한 돈줄은 장학금과 프로젝트 연구비라 할 수 있는데, 내가 다니던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에는 장학금이 전무했고 연구비도 턱없이 부족했다. 힘들게 연구과제 입찰을 따내도, 한 달에 받는 돈은 고작 50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덕분에 2016년을 살던 나의 주요 일과 중 하나는 요긴한 알바 자리를 찾는 것이었다. 공부할 시간을 뺏기지 않으면서, 시급은 높은 그런 꿀알바! 그러던 차 우연히 발견한 알바가 바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출구조사원이었다.


제20대 국회의원선거 방송3사(KBS-MBC-SBS) 출구조사 조사원 모집  

급여 12만원 / 당일 현금 지급

      

2016년 최저시급이 6,030원이었으니, 당시 기준으로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게다가 당일 현금으로 아르바이트비를 준다니! 당장 학식 사 먹을 돈도 부족했던 나에겐 궁핍함에서 벗어날 찬스였다. 물론 12시간 풀 근무라는 만만치 않은 조건과 사전 교육을 수료해야 했지만, 12만 원 앞에선 그게 별 대수랴. 성실함과 강인한 체력을 강조한 알바 지원서를 제출했고, 수월하게 알바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한 대학교 강당에서 진행된 2시간가량 진행된 사전교육에서는 '역대 출구조사 예측 명승부' 같은 비디오를 틀어줬다. 60초 카운트 다운과 함께 '국민의 선택입니다'라는 아나운서 멘트가 나오면, 정당별로 예측된 국회의원 의석수가 나왔다. 발표자였던 리서치회사 관계자는 출구조사가 얼마나 중요한 지 또 얼마나 정확한 지 수도 없이 언급하며,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책임감과 자부심을 강조했다. 물론 선거일 당일에는 투표를 할 수 없으니 사전투표에 꼭 참여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출구조사는 방식은 단순하다. 투표소를 나서는 사람을 카운트하여 5의 배수의 사람에게 결과를 물으면 된다. 보통 한 조는 조장 1명, 카운터 1명, 조원 2명 내외로 구성되는데, 카운터가 5번째에 해당하는 사람을 골라내면 조원이 다가가 투표 결과를 묻는 방식이다. 이때 조사하는 내용은 투표 결과뿐만 아니라 연령대와 성별도 포함되며, 감사의 의미로 '후라보노' 껌을 한통 증정한다. 그렇게 모은 결과를 조장은 한 시간마다 집계하여 어플을 통해 본사로 전송하면 끝이다. 나는 대학원생이라는 이유로 조장을 맡게 되었고, 아르바이트비 1만 원을 더 준다는 얘기에 남몰래 '아싸'를 외쳤다.


출구조사원 아르바이트의 특별한 점 중 하나는, 알바 전일 합숙을 하는 것이다. 투표가 시작되는 새벽 6시부터 출구조사 업무가 시작되는데, 워낙 이른 시간이기 때문에 아르바이트생들의 개별 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까닭에 영등포역 근처의 깔끔한 모텔에서 숙박을 진행하게 됐고, 그곳에서 일일 룸메이트이자 다음날 알바를 함께할 조원들을 만났다. 


자기네는 21살이라며, 나를 보자마자 '언니'라고 불렀던 그 아이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박을 한다며 몹시 들뜬 분위기였다. 다음날 겪을 고난의 12시간을 생각하며 일찍 컨디션 조절에 들어간 '모범 알바생'인 나와 달리, 그 아이들은 홍대를 다녀오겠다며 숙소를 떠났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았다. '이러다 내일 나 혼자 알바하는거 아닌가' 불안감이 엄습할 때쯤, 21살짜리 꼬맹이들은 감사히도 숙소로 복귀했다. (물론 만취상태로!) 나의 알바 고생길은 새벽 5시, 이 알바 동료들을 흔들어 깨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불행히도, 4월의 새벽은 어둑어둑 찬기운이 가득했다. 심지어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다. 알바 장소였던 영등포구청 투표장은 참 한적했는데, 할 일이 없으면 시간도 더디게 가는 법. 나의 동료들은 숙취, 졸음과 싸우며 해롱거렸지만, 온통 비에 젖은 탓에 잠시 앉을 곳도 없었다. 


심지어 투표장에서는 출구조사원의 근접 접근을 막았다. 선거법에 따르면 출구조사는 투표장 30m 밖에서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30m 밖에서는 누가 투표를 하고 나오는지 알 수가 없으니, 살금살금 투표장 근처로 다가가야만 했다. 암묵적으로 접근을 눈감아주는 곳도 있지만, 영등포구청은 자비가 없었다. 멀리서 5번째 사람을 찾아 뛰어다니다 보니 체력도 금세 바닥이 났다.  


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협조적 일리 없지 않은가. '투표 결과를 왜 물어보냐'며 큰 소리로 혼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계셨고, '왜 나는 껌을 안주냐'며 자신도 출구조사에 응답하겠다 강짜를 부리는 아저씨도 있었다. 이런 갈등(?)이 수도 없이 반복되고난 후에야 점심시간이었다.


다행히도 오후부터는 날씨가 맑아졌다. 가볍게 김밥과 라면을 먹고, 벤치에 앉아 쉴 여유도 생겼다. 그런데 피곤함이 과했던 탓일까,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탓일까? 틀림없이 벤치에 앉아 쉴 생각이었건만, 나는 그 벤치에 누워서 잠을 잤다. 노숙자 뺨치는 뻔뻔함. 결국 피곤함에 절여진 우리 조 일원들은 번갈아 가며 벤치에 누워 잤다. 다행인지 투표소는 내내 사람이 없었다. 결국 오후 알바는 졸음과의 사투였다.


18시 투표 마감과 함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리고 장장 12시간의 알바도 막을 내렸다. 아르바이트 담당자가 투표소 근처로 찾아봐 봉투에 담긴 소중한 알바비를 나눠주었다. 심지어 투표 인원 저조로 인해 몇 박스씩 남은 후라보노 껌도 나눠 가지라는 쿨함을 보여줬다. 나는 알바비 봉투와 후라보노 2박스를 소중히 챙겼고, 피곤함에 못 이겨 택시를 타고 집에 가고야 말았다. 조장 수당으로 챙긴 1만 원이 순식간에 택시비로 증발되었지만, 후라보노 2박스를 챙겼으니 나쁘지 않았다며 택시 탑승을 애써 정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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