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네에게 보낸 독서 편지

by 산비

- 구도의 길 -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책을 주문하셨다고요? 무척 어려운 책입니다. 책이 너무 두껍고 어려워서 혼자 읽다 보면 지치고 게을러질 것 같아 도움을 청합니다. 서로 격려하고 토론하며 함께 읽어 나간다면 좀 더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저의 관심분야는 ‘삶’입니다. “산다는 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 삶의 궁극에 무엇이 있는지?” 이런 화두를 가지고 그것을 밝혀줄 책을 찾아 읽고 있습니다. 프로네 님의 관심분야는 무엇인지요?


우선 실험적으로 책 한 권을 독파한 뒤 다시 한번 여러 가지를 검토해봅시다. 이후에는 서로가 공통적으로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책들의 목록을 뽑아 함께 읽어나가기로 하지요. 너무 무리하게 계획을 세우지는 맙시다. 오히려 독서에 대한 활력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게을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서로를 격려하며 책을 읽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우선 손대려 하는 <우주 변화의 원리>는 목차만 펼쳐보아도 굉장히 난해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말 좋은 책이지만 너무 어려워서 읽다가 지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바로 그것이 프로네 님의 도움과 격려가 필요한 까닭입니다. 책을 잠깐 펼쳐보았는데 내용 중에 재미난 글귀가 있었습니다.


“신비와 미신의 개념의 차는 사실을 인정은 하지만 인간의 지능으로 알아낼 수가 없을 때에 이것을 신비라고 대우하고 그 사실을 전혀 인정할 수 없을 때에 그것을 미신이라고 천대한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고 안 하는 인간의 지능이 문제 되는 한 미신의 낙인이 찍혔던 미신 가운데서 오히려 더욱 위대한 진리가 뛰어나왔던 사실을 역사는 반증하고 있다. 지동설과 같은 것이 적절한 예이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보편적인 인식들을 의심 없는 진리라고 바로 말할 수는 없으며 또한 인간들이 그냥 미신이라고 치부해버린 많은 것들 속에 실은 진리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좀 더 시간이 흘러 그것이 전통성과 역사성을 지니게 될 때에라야 비로소 진정한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을 대강 훑어보니 기본적인 지식이 좀 있어야 이해가 잘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주역의 괘나 김일부의 정역, 단학과 율려 사상, 증산도 등에 대한 개략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관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저도 잘 모르는 분야라 걱정이 앞섭니다. 만약 책을 읽어나가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관련 참고도서를 먼저 찾아 읽어보고 다시 본 책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독서를 하면서 갖게 되는 의문점과 독서후의 가슴속에 남는 감흥과 또 다른 접근들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한다는 것은 삶의 또 다른 기쁨일 것 같습니다.’라고 하신 말씀과 ‘서로의 격려와 관심이 생활하는 데 힘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하신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비록 멀고도 험한 길이겠지만 프로네 님과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의 길을 함께 걸어가고 싶습니다. 부디 힘이 되어 주십시오.


2005 7.19 산비


골프가 흥미로운 건, 골프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삶이 공식 몇 개로 풀어지는 수학의 방정식 같은 거였다면, 저는 진즉 문제를 풀고 답을 달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삶은 너무나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답을 써내야하는 기로에서 우리는 늘 망설이고 주저하게 됩니다.


평범함 속에 진리가 숨어있다고 하지만, 그 안의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선 오히려 밖으로 박차고 나와야만 합니다. 우리가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이유이며, 우리에게 독서와 여행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실크로드를 다녀오시겠다는 프로네 님이 무척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삶의 의미에 대해 뭔가 하나라도 꼭 깨달음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삶은 익숙함과 이별, 일상과 일탈을 두 극으로 하는 타원형이라 합니다. 한 극에 머물러 있는 한 반대편에 있을지 모를 가슴 떨리는 삶의 기쁨을 결코 체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구 저쪽 맞은편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오시기 바랍니다.


지난주엔 절에 다녀오셨다고요? 저도 언젠간 '템플 스테이'를 꼭 한번 해봐야지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적이 드문 고즈넉한 산사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며 삶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깊은 사색의 호수에 한번 빠져보고 싶습니다.


<우주 변화의 원리> 책을 드디어 받아 보셨군요. 머리가 절레절레 흔들어지지 않던가요? 황망해하실 프로네 님의 표정이 보이는 듯합니다. 책의 서문만 보았을 때는 꼭 읽어내고야 말겠다는 의욕에 불타올랐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의문들을 풀어줄 열쇠가 담긴 책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내용의 방대함과 난해함에 두려운 마음이 앞서더군요. 그래서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한 줄 한 줄 서로 격려하며 읽어나간다면 책을 완독 한 후의 감동이 훨씬 더 크리라 봅니다.


여행은 두 가지의 즐거움을 주는데, 하나는 떠날 곳이 있어서 즐거운 것이고, 또 하나는 돌아올 곳이 있어서 즐거운 것이라고 합니다.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십시오.


2005 7.21 산비


비가 내립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비라 더욱 반갑습니다. 친한 벗이 먼 곳에 있다가 갑자기 찾아온 격이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메마른 사막 속을 헤매다가 오신 프로네 님은 더욱 그 비가 반갑겠습니다. 잘 다녀오셨지요? 좋은 여행이었을 듯합니다.


저는 그간 신영복 님의 <강의>라는 책을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보통 ‘동양사상’ 그러면 도올 김용옥 선생을 퍼뜩 떠올리지만 그분에 버금가는 내공을 쌓은 분들이 강호에 존재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EBS에서 '명심보감'을 강의하시던 박재희 님도 대단한 분이셨고, 20년간의 감옥 생활이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형성된 신영복 님의 정신세계도 깊이가 한량없었습니다.


<강의>라는 책을 일관해서 그 논조를 유지해나가는 힘이 대단합니다.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삶의 사회성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주체적 자기 성찰과 실천적 창신의 자세, 그것이 지향하는 발전적인 사회의 변화,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모든 지적 관심은 현실의 실천적 과제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찔리는 점이 많았습니다. 그동안의 저는 저 스스로의 안녕을 위한 깨달음 얻기에만 전념했었거든요. 그러나 ‘Indra's Net’ 이야기를 통해, 이 세계가 중중무진 다중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배우고는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강의> 내용 중, 특별히 영감을 받은 고전은 ‘노자’입니다. 그 바람에 저는 요즘 노자의 정신세계에 푹 빠져 있습니다. 노자님 말씀에 제가 그토록 추구하고 염원했던 이상향의 모습이 담겨있었습니다. 왜 진즉 ‘노자’를 읽지 못했는지 후회됩니다.

노자 철학에 있어 無는 제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인식을 초월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인간의 인식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 인간의 지배 밑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감명 깊게 읽은 글귀 중 몇 가지만 옮겨봅니다.


“누군가의 기쁨이 누군가의 아픔의 대가라면 그 기쁨만을 취할 수 있는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가장 이상적인 정치는 백성들이 임금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백성들의 삶에 간여하지 않는 상태이다./ 공성 사수, 즉 일이 성취되더라도 말을 아껴야 한다. 자기가 이룩한 일을 생색내지 않아야 한다. 공을 이루었으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가장 중요한 원칙 문제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있어서는 구태여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중요한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작은 일에 매달리고 그 곧음을 드러내려 한다.”


'독서 삼매경'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비로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책이 주는 즐거움, 고전이 밝혀 들고 있는 진리의 등불을 좇아가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프로네 님과 그 행복감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이번 주 목요일부터 휴가를 떠납니다. 그동안 <강의> 책을 읽어 보세요.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해 주는 책입니다. 그러고 나서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우주 변화의 원리> 책을 읽기로 합시다. 전에도 이야기하였지만 하루 종일 그 책만 붙들고 있으면 질려서 포기해버릴 가능성이 많습니다. 다른 책들도 같이 읽으면서 하루 6장 정도씩만 읽어나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이미 읽어본 책들 중에서 참 좋았다 싶은 책이 있으면 교환해서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다 읽은 후 책에 대한 느낌과 깨달은 점을 서로 이야기해보면 재미있을 것입니다.


2005 8.1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