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by 산비


빌려주신 책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 깊이 빠져들고 있습니다. 헬렌의 이야기가 제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방만하게 펼쳐져 있던 생각들이 하나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너무나 운명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프로네 님이 마치 신의 계시처럼 제게 나타나 스콧과 헬렌을 알게 함으로써, 제가 막연하게 동경해 왔던 삶의 모습들을 구체화시켜주고 있습니다. 헬렌의 책을 읽으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점을 발견한 것 같아 기쁜 마음입니다. 우리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헬렌이 준거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헬렌은 책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무언가를 가져다주었다. 우리의 다양한 흥미 분야들은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이 되었고, 따로 떨어져 있던 관심사들이 공통의 관심사가 되었다. 끊임없는 토론과 동료애가 서로의 특유한 개성을 깊이 이해하게 했고, 우리는 나란히 따뜻하고 충족된 삶 속으로 성장해갔다."

"우리 관계는 자연스럽게 넓혀져 친구로서뿐 아니라 연인 사이가 되었지만. 우리 관계에서 성은 결코 중심 요소가 아니었다. 우리의 주된 정서는 생각과 행동에서 조화롭고, 서로 믿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데 있었다. 서로를 극진하게 생각하는 애정은 우리에게 성이 위주가 된 생활 이상의 것을 뜻했다."

"건강, 책, 일 그리고 여기에 사랑이 더해진다면 운명이 주는 모든 괴로운 고통과 아픔도 견딜 만해진다.”


“사랑을 하기 위해 단지 애정 어린 편지만을 쓰는 것은 그림물감 없이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 것과 같다. 완전한 관계는 이런 식으로는 거의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크고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점진적이고 느린 축적이 있어야 한다." - 에드워드 카펜터


헬렌이 크리슈나와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인용한 글입니다. ‘점진적이고 느린 축적’, 불같이 타올랐다 냉담하게 사그라지는 그런 만남이 아니라, 생각과 사유를 공유하고 추억을 점진적으로 축적해나가면 오래가는 만남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당신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는 당신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고 싶습니다. 바로 그것이 우정의 참뜻이며, 나는 당신의 진정한 친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내가 당신의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느끼는 때가 오면 언제든지 내게 알려주고, 당신 스스로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스콧이 헬렌에게 쓴 편지 내용입니다. 프로네 님을 알게 되어서 전 무척이나 행복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서로에게 기쁨보다 괴로움으로 다가간다면 그것은 옳지 못합니다. 서로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언제든지 떠나가십시오.


프로네 님도 ‘소노 아야코’의 글을 읽고 뭔가 큰 깨우침이 있었던 듯합니다. 이렇게 서로가 등한시했던 어떤 분야들을 새롭게 알아 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독서클럽> 활동이 갖는 매력일 것입니다.

가을입니다. 독서에 좋은 계절입니다. 책 속에 진리가 있습니다. 열심히 책을 읽고 토론해봅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프로네 님이 다음엔 어떤 책을 저에게 전해주실지 기대됩니다. 주말 잘 보내십시오.


2005 9.3 산비



마침내 헬렌의 책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끝냈습니다. 마지막 스콧이 죽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글을 읽으면서는 감동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밀려왔습니다.


“당신이 건강하다면 아마도 행복할 것이고,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것 모두를 가지지는 못했더라도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부를 가진 것입니다."

"세상은 당신이 그다지 크게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조금씩 자기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나가도록 성장함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줄여 나갈 수 있습니다. 당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당신 자신입니다."

"인생은 단추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행위하고 건설하며, 일정한 형태로 생각을 구체화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건강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조화로운 삶으로 나를 성장시켜 나가야 하고, 생각을 구체화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겨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죽음이라 부르는 변화는 우리 몸으로 보아서는 끝이지만, 같은 생명력이 더 높은 단계에 접어드는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죽음이란 종말이 아니라 옮겨감이라고 느꼈다."

"나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 갔음을 느꼈다." "‘저기 봐! 배가 사라졌다!’ 고 당신이 외치는 순간, ‘저기 봐! 배가 나타났다!’ 하며 다른 쪽에서는 기쁜 탄성을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죽음을 어떻게 정의 내리고 받아들여야 할지를 말해줍니다.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스코트, 우리는 50년 동안 사랑과 동지애 속에서 같이 살아왔습니다. 결혼 생활은 결코 그 사랑의 본질이 아닌 듯합니다. 우리는 관심과 목표와 행동이 일치하는 두 사람으로서 함께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면서 또한 함께 해온 많은 것들을 좋아했습니다. 지적이고 훈련된 당신의 소양은 나보다 훨씬 위였고, 기술은 더 뛰어났으며, 경험도 넓었지만, 우리는 만나서 당신이 나의 부족한 능력을 뛰어넘도록 이끌어준 이해와 협력의 바탕 위에서 같이 일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신비로운 작용으로 평등하게 되었고, 하나로 우리의 삶을 살았습니다. 감사드려요. 그리고 영원히 당신에게 최상의 찬사를 보냅니다.”


헬렌이 스코트가 죽은 뒤에 마지막으로 썼다는 편지의 내용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관계 맺음에 대한 표본을 보여줍니다. 관심과 목표와 행동이 일치될 때 서로는 서로를 이해하고, 이끌고, 협력하면서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좋은 책을 읽었습니다. 끝으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는 감동적인 문장을 옮겨드립니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어떤 것도 이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인과율의 흔들리지 않는 법칙 속에서 다른 모든 것과 이어진다. 일단 한번 생겨난 사랑은 진동을 멈추지 않고 영원히 진행되고 존재하게 된다. 사랑은 원천이자 목표이고, 완성의 도구이다. 사랑에 참여하고 사랑을 주는 것은 인생의 가장 위대한 보답이다. 사랑에는 끝이 없으며 영원히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과 떠남은 삶의 일부이다.”


2005 9.7 산비


-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


사랑은 늘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게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대를 만나기 위해 많은 이별을 했는지 몰라... ’하는 김민우의 노래 가사처럼, 사랑은 그렇게 세월의 헛헛함을 미련스럽게 견뎌낸 뒤에야 겨우 찾아옵니다. 상실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무엇이 싫고, 무엇이 좋은지 마음 깊은 곳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비로소 사랑이 옵니다.

우리가 가끔 후회하는 것은 우리가 한 것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하지 않은 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랑을 함으로써 혹 사람을 잃게 되더라도 사랑을 아니 한 것보다 행복한 일입니다.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변명과 불평 그리고 자신에 대한 연민은 삶의 밀도를 떨어뜨릴 뿐입니다. 외로움이나 쓸쓸함은 어차피 혼자 견뎌내야 니다.


망각은 현재의 발목을 잡는 과거에서 벗어나도록 인간에게 선사된 재능이라고 합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려면 일상의 무게를 가볍게 해야 하는 데, 망각이 바로 삶을 비워내는 최선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삶의 맷집에 해당하는 망각이 없다면 그 숱한 아픈 과거의 기억을 어떻게 견뎌낼 것이며, 이 지루한 반복으로서의 일상을 또 어떻게 이어갈 수 있겠습니까?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뜻하지만,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발밑에 차이는 행복은 보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행운만을 찾아 헤매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상념들을 적어보았습니다. <방외지사> 1,2 권을 같이 드릴까 하다가 1권을 읽고 재미가 없으면 2권이 의미가 없을 것 같아, 2권 대신에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같이 보내드립니다. 그럼 오늘도 힘찬 하루.


2005 9.9 산비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칼릴 지브란의 말입니다.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한 사람도 지브란이지요.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지브란의 글들이 가슴을 울립니다. 혹시 그가 쓴 책들 중에 더 가지고 계신 것은 없는지요? 전해주신 류시화의 시집은 모두 다 읽었습니다. 마지막에 스콧 니어링의 글이 실려 있음을 발견하고 또 한 번 뿌듯하였습니다. 저도 스콧처럼 스스로 곡기를 끊고 조용히 잠들 듯이 죽기를 원하며, 바다가 바라보이는 나무 아래 뿌려지기를 원합니다.


비가 갤 듯하더니 다시 내리네요. 비가 와서 참 좋습니다.


2005 9.13 산비


보내주신 ‘로망스’를 듣다 보니 갑자기 드라마 <가을 동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서 이렇게 또 몇 자 끄적거립니다.

주인공 은서와 준서는 결코 맺어질 수 없는 사이였지만 어떤 논리로도 그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논리보다 앞서서 우선 사랑하는 거예요. 사랑은 반드시 논리보다 앞서야 해요. 그때 비로소 삶의 의미도 알게 되죠.”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책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서 장영희 님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 고통이라 할지라도 고통은 결국 사라지지만,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 내가 사라져 버린 후에도 이 지상에 남을 수 있는 사랑을 만들기 위해 나는 오늘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비가 하루 종일 내린 연유로 오늘은 제가 좀 말이 많았습니다. 하찮은 글들 읽으시느라 시간만 허비하신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2005 9.13 비 오는 가을 저녁에. 산비



벅찬 감동을 안고 장영희 님의 책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끝냈습니다. 그녀의 지난했던 삶의 과정에서 묻어 나오는 체험들이 글 속에 오롯이 스며들어 있어 읽는 재미와 감동을 더해 주었습니다.


“어쩌면 넘어지기 전에 이미 넘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러나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눈물이 나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참았습니다. 신은 몇 번이나 이미 넘어졌던 사람을 왜 다시 또 넘어뜨리는 걸까요? 겨우 한 고비 넘겼다 싶으면 다시 밀려오는 시련의 파도, 그러나 그 시련의 파도 안에 우리를 향한 신의 사랑과 신이 의도하는 바가 담겨있음을 믿습니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하면서 써 내려간 헬렌 켈러의 글도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몸이 건강해서 눈으로 볼 수 있고,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사실 몸의 건강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신의 건강입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는 있으나 정신적으로 눈먼 사람은 얼마나 불행한 사람입니까? 우리는 정신적으로 눈 뜬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어야 하겠습니다.


2005 9.14 장영희 님의 글에 깊이 감동받은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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