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부르는 소리

by 산비

휴가 잘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몽산포는 처음 가보는 곳이었지만 그 이름이 주는 친근함과 정겨움으로 왠지 낯설지 않은 데자뷔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어릴 적엔 나주 영산포와 가까이 살았고 커서는 영등포와 가까이 살아서 일까요? ‘포’가 붙은 이름에서는 배가 드나들고, 갈매기 끼룩거리며, 얼굴에 깊게 주름이 펜 노인이 쭈그리고 앉아 그물을 손질하는 그런 모습들이 연상됩니다. 삶은 그냥 살아가는 거라는 극히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냄새가 납니다.


데네브, '은하수에서 가장 큰 별 데네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홈페이지의 낭만적인 선전 문구에 현혹되어 대뜸 예약한 펜션. 과연 그 이름대로 펜션 ‘데네브’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무척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온 세상에 밤이 내려앉아 고요와 적막에 깊이 잠긴 시간에 저는 밤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문득 잠이 깨어 밖으로 나왔습니다. 무심코 밤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저는 저도 모르게 짧은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별들이 연출해내는 황홀한 밤의 우주. 정말 얼마 만에 그렇게 많은 별들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세모로, 네모로, 일렬로... 거문고, 헤라클레스, 전갈, 백조... 비록 세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 고대의 누군가에 의해 이름 붙었을 수많은 별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고개를 젖힌 채 반짝반짝 명멸하는 별들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밤의 세상이 그리 적막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별들은 들숨과 날숨을 내쉬는 듯 부산해 보였고, 구름도 어디론가 바삐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나무의 이파리들은 바람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고 있었고, 풀벌레들은 저희들끼리만 통하는 소리로 쓰륵거리고 있었습니다. 들쥐와 부엉이도 분명 일상생활에 분주했을 것입니다. 한동안을 그렇게 밤과 별들과 친구 하며 뜰을 거닐다가 잠자리에 다시 누웠습니다.

이번 휴가기간 동안 제가 유난히 밤에 대해서, ‘밤’이라는 낱말에 대해서 민감해진 건 아마도 ‘가와바타 야스나리’ 때문일 것입니다. 휴가 중 짬짬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읽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커피 한잔을 옆에 둔 채, 흔들 그네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들으며 즐기는 독서의 시간은 그럴듯한 멋스러움이 있었습니다. 야스나리의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문체는 밤을 하얗게도 하고 까맣게도 만들며, 그렇게 제 가슴에 밤의 이미지들을 새롭게 심어 주었습니다. 소설을 통해 본 밤의 형상이 현실 속의 밤의 세계와 묘하게 오버랩되며 더욱 진한 ‘밤’을 느껴보는 휴가가 되었습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무슨 양’, ‘어찌하듯’, ‘무엇처럼’하는 직유법들이 약간은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가 활약한 1920년대, 30년대의 문학적 정서를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광수의 소설 '사랑'을 읽으며 이미 겪어 보았던 시대적 어색함이기도 하고요. 아무튼 그의 서정적인 묘사들은 밤을 일으켜 새우기도 하고, 들어 누이기도 하면서 저를 소설 속으로 한 없이 빠져들게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런 것이 ‘노벨문학상’을 받게 한 마술적 힘이겠지요.


일상 속으로 돌아왔습니다. 밤의 낭만 속에서 이제 빠져나오렵니다. 우리의 책 읽기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합시다. 그리고 서로의 느낌과 의문점들을 서신으로 교환합시다. 그럼 내일부터 시작입니다.


2005 8.8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에 흠뻑 취해버린 산비


- 은빛 바다의 기억 -


<스콧 니어링 자서전>을 지금 막 끝냈습니다. 생각의 영역이 많이 넓혀진 느낌입니다. 이 책을 좀 더 일찍이 대학 시절에 접했다면 운동권에 가담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혁명으로 변혁시키기 위해서. 후후


댐을 쌓아 물의 흐름을 아무리 막아보려 해도 물은 어떻게든 바다로 흘러들어갈 길을 찾아내고야 만다고 합니다. 한 개인이 누리는 삶이란 무한한 우주적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지극히 짧은 찰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연과 사회는 변화의 원리에 따라 성장과 퇴화, 건설과 파괴, 진화와 소멸의 과정을 피할 수 없다고 하는군요.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우주 변화의 원리>와 일맥상통하는 논점입니다.


어제는 영종도, 용유도, 무의도 도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정말 환상적인 여행이었답니다. 예전에 차를 타고 영종도 을왕 해수욕장에 가 본 적이 있었지만 그건 장님이 코끼리 다리만 만져본 격입니다. 섬의 구석구석을 두발로 걸어 다니며 숨겨져 있는 비경들과 살아있는 섬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였습니다. 삶에 대해 여유롭게 사색해보는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아! 그 바다가 다시 생각나는군요. 어제의 일인 데 이렇듯 아스라이 여겨지고 바다가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요?


왕산해변은 참으로 멋진 곳이었습니다. 바다를 본 순간 감정이 격해졌던 것은 아마도 내륙을 헤매다가 마주쳤던 첫 바다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첫 번째 만난 바다였기에 더욱 신선함과 설렘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처음이란 항상 그렇게 소중하고 값진 것입니다.

왕산에서 을왕 해변 쪽으로 넘어갈 때는 길도 아닌 곳을 탐사하듯 헤치고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예상치 못한 해안 절경과 맞닥뜨렸습니다. 그곳이 그렇게 충격적인 감동을 준 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바다가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대감을 최소한으로 줄여 놓았다가 기대 이상의 소득을 얻게 되었을 때 기쁨은 배가됩니다. 인생도 그런 마음 자세로 살 일입니다.


무의도의 호룡곡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하늘과 하늘에 떠 있는 해마저도 그리고, 그 은빛 해가 내려 비치는 바다까지 온통 은빛 세상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다음에 그곳을 다시 찾는다 해도 그와 같은 은빛의 세상을 또 만나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더욱 어제 만난 무채색의 세상, 은빛 바다의 기억이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이제 다시 일상입니다. 어제 얻어온 삶의 에너지들이 당분간은 살아가는 데 많은 힘을 발휘해주리라 믿습니다. 그 에너지가 다 소모되어 사는 게 힘들고 지겨워질 때쯤, 또다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해볼 것입니다.


2005 8.29 산비


- 몸이 하는 말 -


보내주신 글과 사진은 잘 받아 보았습니다. 갑자기 저도 사막에 한번 가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사막 한가운데 홀로 누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스콧 니어링의 책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제가 관심 있어하는 부분이 뒷부분에 서술되어 있는데 내용이 조금 빈약합니다. <조화로운 삶>이란 책을 구해서 좀 더 읽어보아야겠습니다. 그가 주장한 4시간의 육체노동과 4시간의 지적 활동 그리고 4시간의 교제는 제가 늘 꿈꾸어 온 삶입니다.


조용헌 님이 쓴 <방외지사>라는 책에 보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중에 빌려드리겠습니다. 오늘 받으신 책들은 쉽게 읽히는 책들이라 아마 이번 주 안으로 다 읽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전경일 님이 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지금은 야후 코리아의 임원이 되어 있지만 IMF 때는 실직해서 1년 6개월 동안 백수로 지냈다고 합니다. 그 기간 동안 700권의 책을 읽고 7권의 책을 써냈다고 하니 참 대단합니다.

주로 남성의 시각에서 마흔에 갖추어야 할 덕목과 습관, 지혜에 대해서 적어놓았습니다. 모든 것은 몸이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몸은 아픔, 통증, 그리고 우리가 직감이라고 부르는 막연한 느낌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말은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우주 변화의 원리>에도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몸이 하는 말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몸이 정신을 반듯하게 지탱할 수 있도록 평소에 운동으로 열심히 몸을 단련해야 하겠습니다.


<우주 변화의 원리>는 어디까지 읽으셨는지요? 저는 요즘 게으름을 좀 부리고 있습니다. 내용이 너무 어렵고 관념적이라 자조적인 생각이 자꾸 들던 터에 7장 정신론에 들어오니 다시 재미있어집니다. 지나간 내용 중 ‘근취저신 원취저물’에 대한 이해는 넓혔으나 ‘금화 교역론’이 계속 걸립니다.


금화 교역의 수단으로써 즉 화를 금수 속에 포위하는 데 있어서 인신 상화가 하는 역할은 무엇인지, 수토 합덕 하는 금화 교역 이란 무슨 말인지, 오운과 육기가 교역하는 작용, 즉 운기학적으로 금화 교역은 또 어떻게 해석되는지? 알 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고, 잘 와 닿지가 않습니다. 조금 쉽게 프로네 님이 이해하신 대로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그럼 몸조리 잘하십시오.


2005 8.31 산비


- 느릿느릿 걷는 자가 되어 -


비가 많이 올 것처럼 예보하더니 바라는 비는 오지 않고 푹푹 찌는 날씨입니다. 저는 지금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쓰고 류시화 님이 옮긴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스콧 니어링의 책을 읽고 나니 그 책에 언급되어 있는 소로우의 책이 읽고 싶어 졌습니다.


소로우의 대표작은 그가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2일 동안 산 이야기를 쓴 <월든>이라는 책입니다. 19세기에 출간된 책 중 가장 위대한 책으로 꼽힌다는군요.

지금 이 책은 ‘블레이크’라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한 통의 편지가 발단이 되어 그와 13년 동안 나누었던 편지를 묶은 것입니다. 그가 ‘산책의 즐거움’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아 이렇게 우선 몇 자 전합니다.


“느릿느릿 걷는 자가 되어 날마다 최소한 한두 시간은 야외에서 보내는 것,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는 것, 바람 속에 들어 있는 소식을 귀 기울여 듣고 언어로 표현하는 것, 언덕이나 나무의 전망대에 올라 눈보라와 폭풍우를 관찰하는 것”


소로우가 일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항목입니다. 또한 제가 동경하는 삶이기도 하고요. 소로우는 오솔길을 걸으며 세계를 여행하고 싶다고 그의 일기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솔길 외에 달리 무슨 길이 필요하며, 길을 걷는 데 발 외에 또 달리 무엇이 필요하냐고 반문합니다. 저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런 삶을 살 것입니다. 지난번 무의도의 갯벌을 걸으며 그런 생각을 더욱 굳혔습니다.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 그냥 내가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었거든요. 그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젊은 시절엔 동해 바다를 동경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갈수록 서해바다에 애착이 갑니다. 화려한 일출보다는 은은한 일몰이 더 좋아집니다. 무채색 빛이 연출해내는 은빛 세상 속에 파묻혀 있어 보니 뭐랄까 영혼, 구원, 침잠, 정화 이런 상태에 점점 몰입되다가 마침내 마음이 평화로워졌습니다. 정신이 맑아졌습니다. 막연한 기쁨이 밀려왔습니다. 매일매일을 그렇게 자연을 느끼고 사색하고 명상하며 살면 삶은 얼마나 풍요로워질까요?


2005 9.1 은빛 바다를 그리워하며,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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