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by 산비



“사랑이란 그 자체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 외에 또 다른 무엇인가를 찾는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그대를 손짓하여 부르거든 그를 따르라./ 비록 그 길이 어렵고 험할 지라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를 품을 땐 몸을 맡겨라./ 사랑이란 언제나 이별의 시간이 오기 전에는 자기의 깊이를 알지 못하는 법이다./ 어찌 가슴속에 있는 말을 다 할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보다 깊고 깊은 자기의 비밀은 스스로도 말할 수 없으므로.”


칼릴 지브란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무슨 대서사시를 읽는 듯한 느낌입니다. 상당히 관념적이라 언뜻 이해하기가 난해한 점도 있지만, 군데군데 주옥같은 문구들이 숨어 있어 밑줄 긋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저자가 레바논 출신이라는 사실도 놀랍고, 책의 원전이 아랍어로 쓰였다는 것도 신기합니다. 결국 사람이란 어디에서 태어났느냐보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진리를 갈구했느냐에 따라 어떤 성취를 이루어 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책을 마저 다 읽고 다시 한번 토론을 좀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동안 서로 읽거나 교환한 책의 목록을 쭉 뽑아보니 벌써 14권이나 우리가 함께 읽었습니다. 뿌듯하고 대견합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책을 읽읍시다.

책 속에 진리가 있고 책에 행복한 삶에 대한 답이 나와 있음을 확신합니다. 우리보다 앞서서 우리와 같은 고민을 했던 이들이 얻은 깨달음을 단지 우리는 찾아서 읽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숨겨놓은 보물 쪽지를 찾아서 주워 담듯이.


편안한 밤 되십시오.


2005 9.15 산비



“자비심과 잔혹함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이 어두운 밤에 벌어지고 있는 비바람의 싸움질처럼 영원히 서로 다투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비가 결국은 잔혹을 이기는 것입니다. 자비는 성스러우니까요. 결국 공포의 밤도 지나가고 아침이 오는 것일 테지요. "

"진짜 빛은 사람의 마음속으로부터 발산됩니다. 진실은 밤의 어둠 속에서만 보이는 별과 같은 것입니다. 진실은 우리 삶의 하루하루를 즐기고 우리를 일깨우고 모든 인간이 그 즐거움을 누리길 바라는 은밀한 감정이지요."

"이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고 행복에의 길을 분간해 내고 그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건 행복의 이름으로 소리쳐 부르는 것이 곧 인간 된 자로서 하나의 의무입니다.”

칼릴 지브란의 외침입니다. 우리는 늘 정신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며 진실한 행복을 찾아 끝없는 구도의 길을 떠나야 할 것입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던 어느 추운 겨울날, 수도원에서 버려졌던 칼릴은 라헬과 그의 딸 마리암에게 구조된 후 그의 집에 며칠 머물게 됩니다. 그 사이 칼릴과 마리암 사이에 사랑의 마음이 싹틉니다. 이때 칼릴이 말합니다.

“삼라만상의 신비 가운데 처녀의 평온했던 영혼을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도록 만드는 그 욕망보다 더 힘차고 아름다운 신비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지나간 날의 기억을 망각에 파묻히게 하고, 그 감미로운 힘으로 삶을 다가오는 희망찬 미래로 꿈틀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칼릴은 고뇌합니다. “왜 나는 눈을 감고서 이 처녀의 눈 속에서 반짝이는 빛을 외면하고 있는 것인가?” 칼릴이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의 상황과 둘의 관계에 대해 마리암에게 설명할 때 마리암은 이렇게 말합니다. “ 우리 둘은 다 같이 숨은 어떤 힘, 정의롭고 자비로운 힘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그 힘이 뜻하는 대로 우리를 맡겨 두기로 합시다.”


칼릴 지브란의 책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 많습니다.> 中 제2장 ‘자유인의 목소리‘ 에 나오는 가슴 시린 사랑이야기였습니다.


2005 9.16 산비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 많습니다> 중 제3장 ‘부러진 날개’ 편을 막 끝냈습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에 가슴이 아려옵니다.


인생의 봄날에 어디에선가 불현듯 나타나 고독을 행복의 순간으로 변모시키고, 밤의 긴 침묵을 음악으로 가득 채워 놓았던 여인 ‘셀마’는 이 세상 모든 슬픔과 절망을 가슴에 안고,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이승에 남겨둔 채, 갓 출산하자마자 죽어버린 아이와 함께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야기의 화자로 나오는 지브란은 셀마를 알고부터 비로소 자연의 의미를 모색하게 되고, 온갖 서적과 성서의 계시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색과 명상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사랑에 빠진 자신의 변화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 일주일 만에 뜨겁게 불타올랐던 둘의 사랑은 운명의 여신이 칼리브 주교의 조카를 보내 그와 정략결혼을 하게 함으로써 파국을 맞게 됩니다.


그 슬픔을 한 편의 시처럼 절절하게 읊어대는 지브란의 절규들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습니다. 마치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감정이입이 되어 눈물짓게 합니다. 그나마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밀회를 즐기던 두 사람에게 그것마저 막아서는 악마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때 셀마는 지브란의 미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시키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위안합니다.


“유한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의 소유를 필요로 하지만, 무한한 사랑은 오로지 사랑 그 자체만을 요구할 뿐인 걸요.... 내 연약한 영혼 속에는 이제 새로운 힘이 있고 이 힘은 보다 위대한 것을 얻기 위해 그보다 덜 위대한 것을 희생시킬 수 있는 능력인 거예요. 그것은 바로 당신이 사람들의 눈에 고결하고 명예로운 존재로 남아 있고 그들의 박해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도록 하기 위해 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는 것이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는 것. 그것이 우리 같은 범인들도 가능한 일일까요? 다시 한번 ‘진정한 사랑’ 이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니다.


2005 9.20 산비


- 우주 변화의 원리 -


상쾌하고 청명한 가을 아침입니다.


저는 요즘 법정스님이 쓰신 <홀로 사는 즐거움>을 읽기 시작했고, ‘포리스트 카터’ 가 쓴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을 절반쯤 읽었습니다. 이 책은 미국의 원조 인디언인 체로키족의 한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 본 세상을 그린 책입니다. 무척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읽어 보셨는지요? 빨리 읽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우주 변화의 원리>는 제8장 ‘우주의 본체’ 편을 읽고 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그동안 우리가 계속 공부해 왔던 모든 것들이 종합되는 느낌입니다. 우주의 본체인 ‘태극’ 개념에 주자에 의해 ‘무극’이 더해지고, 김일부에 이르러 ‘삼극 원리’로 정리되면서 마침내 우주의 본체와 그의 운동하는 상이 일목요연하게 밝혀지게 되었다고 한동석 님은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주 만물은 태극의 운동에 의해서 생성되는 것이므로 그 본체는 태극일 수밖에 없지만, 이와 같은 매개의 우주 운동은 일괄된 전체 우주인 대우주의 정신, 즉 에너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써 그 본원이 바로 적막무짐한 무극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김일부가 무극의 본체로서 황극이라는 개념을 추가함으로써 마침내 우주의 운동원리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쉽게 이야기하면, 우주의 본체는 태극인데 그 본원은 무극이며 그것을 운동할 수 있게 한 요인은 황극에 있다는 것이지요.


마지막 제 9장 ‘신비의 행로’ 편은 이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읽었었던 부문이지만 아마 지금 다시 읽으면 다른 의미로서 와 닿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힘을 불어넣어 주십시오.


2005 9.23 산비


법정 스님의 책을 읽다가 좋은 말씀이 있어 몇 자 덧붙입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한다고 합니다. 사람은 홀로 있을 때 전체로서의 자기이며, 누구와 함께 있으면 그때는 부분적인 자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홀로’라는 말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며 부서지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홀로 있을 때 진리와 더 가까워지며, 보이지 않는 절대 존재와 대화를 나눔으로써 삶의 본질과 맞닿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홀로 사는 사람은 고독하지만 즐거워야 하며,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한다고 합니다. 즐거움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긍정적인 인생관을 지니고 사소한 일에 고마움과 기쁨을 누리며 만들어 가야 하고, 그제야 비로소 홀로 사는 즐거움이 움튼다고 하네요.

하지만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절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만났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리니 기쁜 마음으로 그와 함께 가라’는 불교 경전에 나오는 말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법정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은연중에 내밀한 감동이 전해져 옵니다.


2005 9.23 산비


마침내 <우주 변화의 원리>를 끝냈습니다. “두 팔을 벌리고 창문을 열어젖히니 푸르러 오르려고 몸부림치는 잔디밭 위에는 아직도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책의 마지막 한 줄이 의미심장합니다.


우리가 내내 공부한 ‘음양오행’은 결코 중화족의 산물이 아니고, 동이족에서 시작되어 면면이 전해지면서 업그레이드되어 온 동양 정신의 집적물로서, 절대불변의 우주 법칙이며 동양의 천문과 지리, 사주와 기문둔갑, 한의학의 이론적 근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산속에 들어가서 10년을 도를 닦는 것보다 이 책을 읽고 크게 한 번 깨닫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으나 과연 우리가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긴 얻은 것인지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다만 이쪽 방면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언급된 용어의 정의나 개념들을 공부함으로써 단순 지식의 장이나마 넓어진 것에 만족하려 합니다.


이 책의 편집자는 다시 설명하기를, 전반부의 동양철학의 바탕만 제대로 이해하면 금화 교역의 운기론적 이해가 가능하고, 6장의 음양 승부 작용에 의한 토화작용과 인간의 본질과 물질의 변화를 이해하면 본격적으로 7장의 우주정신의 생성과 본체 그리고 인간 정신의 형성과 자유, 기혈의 동정, 유전과 수요, 종교 정신과 도, 정신의 생사 등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우주 전체가 왜 삼천 양지의 운동을 하는지 접근하게 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둔한 저의 머리로는 처음부터 막힘을 풀지 못한 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며 책을 읽어나간지라 깨달음이 심히 미흡합니다. 프로네 님은 어떠셨는지요?


아무튼 장장 449 에 달하는 이 책을 완독 하게 되어 감개무량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어나가며 프로네 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터전을 마련하게 된것 같아 또 다른 면에서 이 책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고맙습니다.


2005 9.28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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