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 다녀왔습니다. 싱가포르는 듣던 대로 깨끗하고 잘 정돈된 도시였습니다. 도시 전체가 마치 거대한 숲인 양, 나무들이 많고 공원들이 잘 정비되어있었습니다. 가로수로 심어 놓은 나무들은 하나하나가 어찌나 크고 아름답던지. ‘싱가포르’의 원래 뜻이 ‘사자의 도시’라지만, 제가 만약 이름을 붙인다면 ‘나무의 도시’라고 붙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싱가포르의 대표적 공원인 ‘보타닉 가든’이 인상에 많이 남습니다.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시간에도 제법 많은 시민들이 공원에 나와서 기체조도 하고 산책도 하고 그러더군요. 공원뿐만 아니라 거리 곳곳에 달리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선진국일수록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호젓한 공원의 오솔길과 물안개 피어나는 호숫가를 혼자 산책하며 사색을 즐겼습니다.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여행 내내 틈날 때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읽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책이지만 정작 제대로 읽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헤르만 헤세가 왜 그렇게 추앙받는지, 이 책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 알만 했습니다. 깊은 감동을 받았답니다.
“생각이란, 우리가 그걸 따라 그대로 사는 생각만이 가치가 있어."
"‘금지되었다’는 것은 그러니까 영원한 것이 아니야, 바뀔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들 누구나 자기 스스로 찾아내야 해,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어 있는지...”
프로네 님은 이미 이 책을 읽어보셨겠지만 혹 아직 제대로 읽지 못하셨거나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면 꼭 다시 일독하시기를 권합니다.
조용헌 님의 책에 우리가 함께 읽은 <우주 변화의 원리>와 한동석 님이 언급되어 있었다니 무척 반가우셨겠습니다. 그 책을 읽으며 큰 깨우침을 얻지는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리 허튼짓을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도 기쁜 마음입니다. 마치 류시화 님의 책을 읽다가 ‘스콧 니어링’을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뻤던 것처럼.
2005 10.5 산비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비가 와서 좋은 아침입니다.
데미안은 무척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만약 이 책을 제가 알을 깨고 나오려 한참 애쓰던 스무 살쯤 접했다면 훨씬 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알을 훨씬 더 일찍 깨트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제는 그 모든 충격들을 그냥 유연하게 받아들일 만큼 나이를 먹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론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누구나 한번쯤 겪게 되는 유년시절의 아픔과 고통들, 성장기에 처음 어둠의 세계를 접하게 되면서 겪는 당혹감, 두려움 그리고 그런 것들을 극복해가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들. 마치 저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연습시키면서 한 마디를 던진 것이 단원들 저마다 모두 자기에게 하는 이야기인 양 들리면 그 사람은 명지휘자라고 합니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신자들 저마다가 모두 자기에게 하는 이야기로 들려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면 그 목사님은 훌륭한 목사라고 하더군요.
헤르만 헤세의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소설 속 주인공에서 모두들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쩜 그렇게 내면 의식의 흐름을 잘 잡아낼 수 있는지 그 능력이 부럽습니다.
한 번쯤 저금통을 몰래 깨트려 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며, 한 번쯤 부모님을 속이는 거짓말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못된 껄렁패에 시달려보기도 하고,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기도 하고, 처음으로 술에 취해 토사물을 쏟아내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나에게도 데미안 같은 존재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어른스럽고 존경스러웠던, 너무나 똑똑하고 뛰어나서 나에게 엄청난 열등감을 안겨주었던, 그러나 너무나 닮고 싶었던 그런 친구가 있었습니다. 나에게도 베아트리체가 있었고, 나에게도 에바 부인 같은 존재가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헤르만 헤세가 이미 책에 써 놓았다니... 후후.
더 이상 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 모든 것이 뒤섞여서 모호할 때, 자신의 내면 속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가 그곳에서 울려 나오는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마치 데미안이 하던 것처럼. 내 안의 나가 진정 간절히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신을 집중하여 들어봅시다.
2005 10.7 산비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삼분의 이쯤 읽었습니다. 마음씨 착한 ‘제제’를 통해 내 마음도 같이 정화됨을 느낍니다.
“커가면서 네가 속으로 말하고 보는 것들을 ‘생각’이라고 해. 생각이 생겼다는 것은 너도 이제 곧 내가 말했던 그 나이...”
“철드는 나이 말인가요?”
“그래 잘 기억하고 있구나. 그땐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생각이 자라고 커서 우리 머리와 마음을 돌보게 돼. 생각은 우리 눈과 인생의 모든 것에 깃들게 돼.”
철이 든다는 것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랍니다. 저는 대학 1학년 때에야 비로소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그 나이가 되어서야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아직도 철이 덜 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2005 10.11 산비
不欺自心 “자기를 속이지 말라.”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며 산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다른 무엇보다도 삶을 맑고 향기롭게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자기와의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나태나 타성으로부터 자기라는 질서를 흩뜨리지 않고 마침내는 밤하늘의 별처럼 오롯이 자기 자신의 생을 빛나게 하는 일이라는군요.
오늘은 정찬주 님이 쓴 성철 스님에 대한 이야기 <자기를 속이지 말라>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원래는 후순위의 책이었는데 갑자기 프로네 님이 <화엄경> 이야기를 하시기에 우선 먼저 읽고 싶어 졌습니다. 저에게 있어 독서는 사실 엄청난 내공과 집중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나마 요즘은 프로네 님 덕에 책 읽기에 훨씬 재미가 붙고 맹렬한 마음이 생겨 진도가 잘 나갑니다. 어서 빨리 읽고서 프로네 님께도 이 책을 읽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마음자세가 우리가 <독서 클럽>을 운영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성철의 스승이었던 ‘동산’은 대나무에 바람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10년 연상이었던 ‘청담’과 평생 도반의 우정을 나누었던 성철은 그가 입적하자 “청담이 없으니 마음이 안 좋다.”라고 읊조립니다. 만약에 프로네 님이 어느 날 홀연히 떠나간다면 저도 마음이 참 안 좋을 것입니다.
2005 10.12 산비
“아픔이란 가슴 전체가 모두 아린, 그런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비밀을 말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죽어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모두 읽었습니다. 처음엔 조금 밋밋하게 시작했지만 책장을 넘겨갈수록 마음이 울컥거리고 눈물이 그렁거려서 아주 혼났습니다. 삶은 시련과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쓰러지지 않고 이 삶을 살아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은 결국 ‘사랑’ 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뽀르뚜가’는 그 사랑을, 사랑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제제’에게 가르쳐 줍니다.
“난 절대로 당신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당신도 알지요?” “왜”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니까요. 당신이랑 같이 있으면 아무도 저를 괴롭히지 않아요, 그리고 내 가슴속에 행복의 태양이 빛나는 것 같아요”
혹시 장동건과 고소영이 주연한 <연풍연가>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나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고 나니 갑자기 그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나 구성이 조금 진부하기는 하지만,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가슴 저리게 잘 만들어 놓은 영화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영화에 나무 한 그루가 나옵니다. 영화의 엔딩을 장식하는 장면에서도 그 나무가 다시 나오지요. 소설 속 '밍기뉴'의 이미지하고는 크게 상관이 없지만 무슨 연유인지 갑자기 그 나무가 생각이 났습니다.
저에게도 나의 오렌지 나무 밍기뉴, 나의 슈르르까 같은 분이 계십니다. 나의 은사님이시지만, 나에게는 정신적으로 어머니와도 같으신 분이지요. 언젠가 꼭 그분을 프로네 님에게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오늘 나머지 일과들도 잘 마무리하십시오.
2005 10.13 산비
정찬주 님이 쓴 암자에서 만난 성철 스님 이야기 <자기를 속이지 말라>를 완독 하였습니다. 이 책은 성철 스님이 수행과 공부의 터전으로 삼았던 암자들을 따라가면서 그곳에 새겨진 스님의 말씀과 발자취를 담아낸 글입니다.
성철, 무려 8년 동안을 자리에 눕지 않고 ‘장좌불와’의 수행을 하였으며 10년 동안 자신의 거처에 철조망을 쳐놓고 ‘洞口不出’ 즉, 집 밖을 단 한 발도 내딛지 않는 수행을 하셨던 분입니다. 어디서 그런 치열함이 솟았던 것일까요? 그런 엄청난 내공을 쌓고 頓悟頓修 하였기에 뭇사람들이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권위를 갖추었던 것이겠지요.
그가 설법을 통해 내내 강조한 말이 ‘자신을 바로 봅시다.’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 하고도 일맥상통하는 말이지요.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고, 자기가 원래 부처인데 그걸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는데 사람들이 자기 밖에서 행복을 찾고 진리를 구하고 있으니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함과 같다는 것입니다.
내일 이 책과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함께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럼.
2005 10.13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