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자와 유키치의 <학문을 권함>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후쿠자와는 1834년 하급무사의 집안에서 태어나 한학을 배우고 독학으로 영어를 익힌 후, 3차에 걸쳐 미국과 유럽을 순방합니다. 귀국한 후에는 교육과 저술에 전념하며 국민들을 계몽하는데 힘썼습니다. 그는 봉건적 무단 질서로부터 근대적 언론질서로의 전환기를 살았던 위대한 지도자로 일본에서 추앙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후세에 공자를 배우는 사람은 시대의 생각의 차이를 계산에 넣어 취사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2천5백 년 전에 행해진 가르침을 그대로 모방하여 이 시대에 적용하려는 사람은 사물의 가치 변화를 논의해서는 안 될 사람이다.”
이탁오의 생각과도 통하는 데가 있습니다. 후쿠자와는 실질적 학문을 추구했습니다. 실제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한학이나 고전보다는 과학정신에 입각해서 사실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자연의 법칙을 발견해서 그것을 실생활에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독립이란 자기 자신의 일에 책임을 가지고 타인의 신세를 지지 않는 정신을 말한다.”
후쿠자와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 국민 개개인의 독립입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타인의 신세를 지지 않는 독립인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근세 계몽기에 지도자들이 이와 같이 타인에게 신세 지지 말 것, 폐를 끼치지 말 것을 강조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일본의 국민성으로 정착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시아가 막 깨어나던 19세기에 국민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후쿠자와가 같은 선각자가 있었다는 것은 일본의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독서는 학문의 수단이며, 학문은 실행의 수단이다. 실천을 통해서 경험을 쌓지 않으면 결코 용기란 나올 수 없다.”
독서와 경험은 양분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실천하지 않는 학문은 죽은 학문입니다. 공부와 수행을 통해 자립한 다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시금 반복되는 일상입니다. 권태와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고 체험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 ‘간송미술관 추사 특별전’ 관람이 많이 기대됩니다.
2006 10.27 산비
몸은 좀 어떠신지요? 사실 정신적 충격이 더 컸으리라 봅니다. 이제 좀 진정이 되셨는지요? 이미 벌어진 일은 어떨 수 없습니다. 그 일이 하필이면 왜 나에게 일어났을까? 그 순간 왜 그랬을까? 하면서 후회하고 심란해하지 마십시오. 차야 보험으로 처리해서 수리하면 그만이고 몸이야 치료받고 요양하면 차차 나아질 것입니다. 무슨 불치의 병에 걸린 게 아닌 바에야 시간이 약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일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실수를 교훈으로 삼아 차후에 더욱 조심하시면 됩니다.
토요일에 간송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아주 소박하고 예스러운 건물이었습니다.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는 다소 규모가 작고 입구의 지저분한 개집 몇 개가 눈에 거슬렸지만 정성스레 가꾸어진 정원과 꽃들이 한국적 미의 정서를 담고 있어 마음이 부하고 편해졌습니다.
두 개 층에 나누어 전시된 김정희의 글씨와 그림을 둘러보았습니다. 한문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뜻과 음을 알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프로네 님이 곁에 계셨다면 음을 달아주시고 뜻풀이를 해 주셨을 텐데... 그러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게 중 ‘高士逍遙’라는 제목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소요’라는 제목이 우선 마음을 잡아끌었습니다. 예전에 보았던 추사의 유명한 그림 ‘세한도’와 비슷한 분위기의 그림이었습니다. 소나무 늘어진 산수를 배경으로 한 선비가 뒷짐을 지고 소요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그 선비에 나를 대비시키며 한참을 그림에 빠져 소요하였습니다. 나중에 나도 저렇게 소요하며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지더이다.
45억 년의 지구 역사에 비하면, 350만 년의 인류 역사에 비하면, 단기 4300여 년의 한국사에 비하면 우리가 살다가는 생은 참으로 짧고 유한합니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언제 어느 순간 우리 생이 허망하게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입니다. 만약 사고가 났던 바로 그 순간 프로네 님의 생이 종지부를 찍었다면 과연 당신은 이 세상에 무엇을 남겨 놓은 것입니까? 행복했다고, 후회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을 더 값지게, 진실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힘내십시오.
2006 10.30 산비
유적은 시간을 천년 단위로 보게 한다고 합니다. 유적은 우리를 우리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 이끄는 ‘문’이라는 것이죠. 그리스와 터키의 유적지를 돌아본 경험을 담은 책 <에게-영원 회귀의 바다>를 쓴 다치바나 다카시는 ‘존재의 근본을 만드는 것은 책이 아니라 여행이다’라고 말합니다. 책을 읽어서 깨닫는 것과 체험을 통해서 얻게 되는 깨달음의 깊이가 다릅니다.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여행을 통해서 얻습니다.
시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항상 처음과 마지막엔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디 마음이겠지요. 작년 이맘땐 무슨 생각을 하고, 뭐라고 편지를 썼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저장된 파일을 뒤져보았지요.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감회가 새롭더군요.
이제 2006년 시월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입니다. 삶이 아무리 윤회되고 ‘영원회귀’된다고 하더라도 그땐 또 다른, 또 하나의 별개의 삶이 있을 뿐입니다. 죽음 뒤에 내세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나일 것입니다.
프로네 님의 사고를 계기로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윤수는 이 세상에 행복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사랑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마침내 알게 되지만 스쳐 지나가듯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한편으로는 행복한 시간들이 너무 짧게 끝나버리는 게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그래도 마지막 순간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어서 다행스럽게 여겨졌습니다.
비록 우리 앞에 놓인 운명의 시간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영원을 약속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한 가지 바람은 우리의 인연이 아주 오래오래 오래도록 이어지는 것입니다. 몸조리 잘하시고 푹 쉬십시오.
2006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