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고자 하는 길

by 산비

여기 한 그루 책이 있다. 책이 덩굴을 내밀어 내 몸을 휘감아 오른다. 무수한 문장들이 내 몸에 알 수 없는 무늬를 새기며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아무리 베어내도 무성하게 자라 오르는 책나무. 책나무 속에 들어가 눕는다. 내 속에 뿌리 뻗은 나무에서 일제히 날아오르는 저 눈부신 새떼. - 남진우의 ‘책 읽는 남자’ 중에서

책의 문장들이 내 몸에 무늬를 새깁니다. 내 얼굴에 표정을 만듭니다. 내 안에 향기를 뿜어 넣습니다. 내 머리에 알을 낳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부화하여 힘차게 날아오르는 새떼.

책은 상상력이라는 새를 내 안에 잉태하여 푸른 창공으로 날려 보냅니다. 책을 읽으며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진정으로 알아가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평범함과 실패 그리고 그 사람이 지닌 장엄함을 이해하고 감사하는 일이다. 그 사람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이다!” -로버트 A. 존슨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친구 프로네!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싶습니다. 당신의 평범함과 비범함, 당신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당신이 지닌 슬픔과 고단함까지 모든 것을 끌어안고 싶습니다. 당신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휴식이 필요한 때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을 견디지 못하면 히말라야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능력이 히말라야에 가기 위한 덕목이 됩니다. 우선은 휴식을 취하십시오. 그런 다음 지금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차근차근해나가시기 바랍니다.


‘마가 끼었다’든가, ‘재수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미신입니다. 강인한 정신력으로 지금의 고난을 극복하시고 다시 일어서는 프로네 님이 되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바보 같다고 너무 자학하지 마십시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만 생각하십시오. 2006년 시월의 마지막 하루가 저물고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마감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2006 10.31 산비



침팬지와 함께 하며 40여 년간 외길을 걸어온 구달 박사는 말합니다.


“가야 할, 안 가곤 배길 수 없는 길이 열려 있었고 그 길을 따라왔을 뿐이다.”


40년이란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십니까? 나이 마흔, 지금의 내 나이만큼의 세월을 오로지 침팬지 연구에 쏟아부은 것입니다. 나에게는 가야 할, 안 가곤 배길 수 없는 길이 있는지,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하지 않곤 배길 수 없는 일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일에 온 열정을 바쳐 몰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달리기도 그런 것 같아요. 달리지 않곤 배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달립니다. 특별히 풀코스 마라톤은 10km나 하프를 뛰면서는 느낄 수 없는 무엇이 있습니다. 한 편의 드라고 인생역정의 축소판입니다.

온 마음을 모아 오로지 달리는 일에만 몰두하기. 고통과 피곤함을 스스로 즐기며 이겨내기. 너무 힘들고 지쳐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의 싸움. 마침내 그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결승점에 들어설 때의 희열. 나중에 언젠가는 프로네 님도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해봅니다.


김홍성 님의 책 <천년 순정의 땅, 히말라야를 걷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술도 음식이다. 음식 중에서 가장 고귀한 것인지도 모른다. 밥은 육신을 위해서 먹는다면 술은 영혼을 위해서, 영혼들의 교감을 위해 마신다고 생각한다.”


“어디를 여행해도 그 지방 술을 마셔보지 않고는 결국 그 지방을 여행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이 세상을 살면서 술맛을 모르고 살았다면 역시 살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도 물론이다.”

김홍성 씨는 시인답게 술을 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라다크 지방의 민속 농주인 ‘창’(우리의 막걸리)을 구해서 마십니다. ‘이 술에는 라다크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우기면서.

책에 사진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순박한 라다키들(라다크 사람들)의 천진한 미소가 정겹습니다. 마치 옛날 우리네 시골 아낙네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옛날은 지겹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지금 와 옛날을 추억해보면 입가에 편안한 미소가 지어지는 것입니다. <천년 순정의 땅, 히말라야를 걷다>를 읽으며 나도 언젠가는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몸은 조금 나아지셨는지요? 주저앉지 말고 다시 일어서는 프로네 님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6 11.2 산비



기분은 좀 어떠신지요. 11월이 시작되고 벌써 또 3일이 흘렀습니다. 오늘은 금요일, 이번 한 주도 그렇게 또 지나가네요. 시간의 힘은 대단합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명약이 바로 ‘시간’입니다. 시간은 모든 아픔을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죽을 것 같았던 절망과 슬픔도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안개처럼 사라져 버리곤 합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잡아둘 수는 없습니다. 다만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 않고 무언가를 우리가 행위했다면 그것은 ‘경륜’이란 이름이 되어 남습니다. 경륜이 쌓인 사람에겐 존재감이 있습니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주위 사람들에게 압도적 존재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내공을 쌓아야 하겠지요. 자기 수련이 필요하겠지요. 허황된 도약을 꿈꾸기보다는, 우보천리의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걸어 나가면 언젠가 자신도 모르게 존재감을 갖춘 덕망 있는 사람이 되리라 믿습니다.


라다크의 마카밸리와 잔스카르를 트레킹 한 기록인 <천년 순정의 땅, 히말라야를 걷다>를 완독 하였습니다.

“먼 길을 여행하느라 피곤한 얼굴에 꾀죄죄한 행색의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이 세상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를 걷습니다. 프랑스인, 미국인, 독일인, 이스라엘인, 일본인. 그들은 왜 그 황량하고 적막한 길을 걷는 것일까요? 무엇을 얻었을까요? 나는 왜 그곳에 가보고 싶은 걸까요? 책 속의 많은 사진들이 나를 그곳으로 더욱 강력하게 잡아끕니다.


“골목을 알면 떠날 때가 된 것이다. 정에 붙들리면 더 이상 방랑자가 아니다. 우리도 정들기 전에 작별을 나누자. 그것이 바로 하염없는 방랑자의 숙명...”


방랑자는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합니다. 무료해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골목길까지 훤해졌다면 떠날 시간이 된 것입니다. 방랑에는 여러 가지 방랑이 있습니다. 정말 나그네가 되어 이 곳 저곳을 떠도는 방랑도 있지만, 고뇌하고 사유하는 정신적 방랑도 있습니다.

나는 나의 지적 방랑을 끝없이 이어갈 생각입니다. 한 가지에 천착해서 안주하고 싶지 않습니다. 골목이 눈에 익어지면 다시 새로운 곳으로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날 것입니다. 문명과 역사와 과학과 신비주의와 고전부터 미래학까지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끝이 없습니다. 오래도록 동행이 되어 주십시오.

2006 11.3 산비

매거진의 이전글존재의 근본을 만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