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28 - 8.3
내가 어릴 적 가장 좋아했던 만화영화는 ‘신밧드의 모험’이다. 신밧드가 펼치는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에 나는 밥도 마다하고 만화영화에 빠져들곤 했었다. 내가 도시를 유람하고 리조트에서 편히 쉬는 패키지여행보다, 미지의 길을 찾아 숲으로 떠나는 자유 트레킹을 더 좋아하는 것도 다 그런 까닭일 것이다.
이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저 고개 너머에서는 어떤 모험이 펼쳐질지, 저 산마루 위에서는 무엇이 보일지 너무나 궁금했다.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득 안고 이탈리아 북부 산악지대 돌로미테 산군을 6박 7일 동안 걸었다.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고 산은 이리 둘러보고 저리 봐도 첩첩이 산중이었다. 제주도의 세 배, 서울의 다섯 배에 달하는 면적이라고 했다.
‘돌로미테’라는 이름은 프랑스의 유명한 광물학자 ‘드외도네 돌로미외 Dolomieu(1750–1801)’가 처음 발견하고 명명한 돌로마이트(Dolomite:백운암)라는 암석에서 유래한다. 2억 5천만 년 전부터 형성된 바닷속 퇴적암이 7천만 년 전에 일어난 지각 변동으로 땅 위로 솟아오른 뒤 오랜 기간 풍화와 침식 작용을 거쳐 오늘날의 기기묘묘한 바위 산군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3000미터가 넘는 웅장한 18개의 고봉과 잘 보존된 숲과 계곡, 수많은 빙하와 호수가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자랑한다. 여기에 더해 지질학적 가치까지 인정받아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알프스 산맥의 동쪽 끝 돌로미테 산군에는 여러 코스의 트레일이 발달해 있다. 그중 대표적인 코스가 ‘알타비아(Alta Via)’이다. 알타비아는 영어로 ‘하이 루트’(High route), 우리말로는 ‘높은 길’이란 뜻이다. 난이도 별로 90km에서 190km에 이르는 8개의 알타비아 코스가 있는데 숫자가 올라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진다. 일반 트레커들이 가장 많이 찾는 대중적인 루트는 ‘알타비아 넘버 1’이다. 브라이에스 호수에서 벨루노까지 돌로미테의 중심 지역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종주하는 약 150km의 트레일이다. 우리는 이번에 그 ‘알타비아 1’ 코스를 종주하고 돌아왔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트레킹이었다. 내 계획과 생각만큼 내 육체의 능력이 따라주지 못했다. 번번이 시간이 밀물처럼 밀려났다. 어쨌든 죽기 살기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몸이 자주 퍼져서 흐늘거렸다. 불굴의 투혼은 때론 체력적 한계를 뛰어넘게 했지만 그것도 어느 범위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낭패감과 좌절감으로 분노가 자꾸 치밀었다. 다음에는 절대 이런 식의 미친 계획은 세우지 않으리라!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때론 다시 만났지만 어느 사이엔 점점 멀어졌다. 멀어지는 줄도 모르고 가다가 되돌아오기를 수차례. 우리는 그것을 전문용어로 ‘알바’라고 불렀다. 편해 보이는 길이 오히려 험난한 위기를 자초했고, 직등으로 넘어가는 길이 우회하는 길보다 더 먼 길이기도 했다. 갈림길에서는 늘 결정을 해야 했고 때로는 운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드니 점점 더 운명에 순응하게 된다.
인생은 선택이다. 우리는 매번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선택한 이상 승부를 걸어야 한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이기는 자만이 꿀을 먹을 수 있다. 이기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운이다. 필사적으로 싸워도 결과는 운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엔 운이 좋았다.
만복의 근원은 건강이다. 건강의 최우선 조건은 DNA이다.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야 건강할 수 있다. 장수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아무리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도 백 살까지 살 수 있다. 쓸 만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면 술을 조금 마시더라도 운동을 열심히 하면 그런대로 살만큼 산다. 타고난 유전인자가 좋지 않으면 아무리 운동을 해도 절제하지 않으면 결국 건강을 잃고 만다. 운동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른 식습관이다.
어머니는 고혈압, 아버지는 당뇨가 있었다. 나는 두 분의 나쁜 쪽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가족력이 불러올 잔혹한 결과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한 채 그냥 막 살았다. 대창, 막창 가리지 않고 먹었고 위스키 고량주 가리지 않고 마셨다. 남들보다 많이 먹을 수 있는 거대한 위장을 자랑스러워했고, 잘 이기지도 못하면서 취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
내 몸이 견뎌낼 수 있는 한계는 딱 오십 살까지였다. 나이 오십이 넘어서자 여기저기 몸의 기관들이 고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종아리 통증으로 마라톤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산에 오를 때면 가끔씩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다. 근본 원인은 혈관이었다. 혈관에 나쁜 기름때가 끼어 여기저기 막혀가고 있었다. 동맥경화.
벤츠 엔진이라도 경유, 석유, 유사 휘발유 안 가리고 넣으면 탈이 날 텐데, 티코 엔진을 가지고서 아무거나 안 가리고 마구 먹어댔으니... 엔진의 연식이 오십 년을 넘어서자 올 것이 오고야 말았던 것이다. 나는 결국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막힌 심장 관상동맥에 두 곳이나 스텐트를 넣는 시술을 받아야 했다. 트레킹을 2주 남긴 시점이었다.
다들 무리라고 했다. 심장 주치의도 한사코 말렸다. 스텐트가 안정되는 데 최소 2개월, 길게는 일 년이 걸린다고 했다. 혹여 무리를 해서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 혈전이 떨어져 나갈 위험이 크다고 했다. 혈전이 돌아다니다가 어딘가의 혈관을 막아버리는 것. 그것이 심근경색이고 뇌졸중이다. 죽음을 초래할 수도 있는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그 어떠한 두려움도 떠나고자 하는 내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목숨을 걸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죽으면 죽으리라. 길을 걷다가 죽으리라. 매일 아침 한 주먹씩의 약을 입에 털어 넣으며 비장한 각오로 길을 나섰다. 심장에 무리를 주지 않아야 했다. 오래 걷더라도 급하게 걸어서는 안 되었다. 평균 하루 10시간씩, 어떤 날은 꼬박 12시간의 고된 걷기였지만 결국 해내고 말았다. 그 어려운 일을 아무 사고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