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1

by 산비

헬레나 노르메리-호지의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를 읽었습니다. 지난번 김홍성 님의 책 <천년 순정의 땅, 히말라야를 걷다>에서도 라다크 지역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것이 그곳을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의 관점이었던데 반해, 이 책은 직접 현지에서 16년을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겪고 사유한 것을 풀어놓은 책이라 훨씬 진솔한 맛이 있습니다.


처음에 단순히 학위논문을 위해 라다크를 방문하였던 헬레나는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감복해 장기체류를 결심합니다.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그녀는 ‘미래로 가는 길은 하나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보다 건전한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문화를 밖에서부터 관조해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모든 사회는 자신을 우주의 중심에 두고 자신의 채색된 렌즈를 통해 다른 문화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서구문화의 유별난 점은 그것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또 너무나 강력해졌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자신을 비교해볼 ‘타자’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우리와 같거나 우리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여기는 것이다.”


저자는 별다른 의문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던 서구식 산업문명의 가치체계에 대해 비판합니다. 서구적인 것만이 정상적인 것, 유일한 방식으로 간주되어 오면서 인간은 점점 더 경쟁적이고 탐욕스럽고 자기중심적으로 되어 감을 한탄합니다.

제1장 ‘작은 티베트’와 제2장 ‘땅과 함께 살기’를 읽었습니다. 라다키의 생활상에 대해서 잔잔하게 써 내려가는 그녀의 글이 뭉클한 감동을 줍니다. 문명인이라 자부하며 누리는 편리한 생활들이 과연 우리의 정신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검약하며 찌꺼기 하나까지도 재활용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너무나 소비적인 우리의 삶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들도 고기를 먹지만 짐승을 죽이는 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반드시 용서를 빌고 많은 기도를 올린 후에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왕 생명을 뺏어야 한다면 많은 사람에게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커다란 동물이 낫다고 여긴답니다. 물고기를 먹지 않는데 그것은 훨씬 많은 생명을 빼앗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날이 차지만 마라톤 연습에 나가보려 합니다. 찬 기운을 가슴 가득 받으며 오히려 그것을 즐겨보려 합니다. 번뇌와 시름을 모두 잊고 오로지 달리는 일에만 몰입해보려 합니다. 그럼.


2006 12.6 산비



라다크에서는 아버지를 ‘압바’라고 부른다네요. 재밌죠? 우리말의 ‘아빠’와 발음이 유사하지 않습니까? 책에는 라다크 인들의 생활상과 의식구조에 대해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헬레나가 불교적 개념인 ‘空’을 이해해나가는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나무는 그냥 나무일 뿐이지만, 잎사귀에 떨어지는 비와 나무를 흔드는 바람과 그것을 받쳐주는 땅이 모두 나무의 한 부분을 이룹니다. 궁극적으로는 우주 속의 모든 것이 나무를 나무로 만들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것의 본성은 순간순간 변합니다. 그건 한순간도 똑같지 않습니다. 이것이 공(空)의 의미입니다. 사물이 독립된 존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무지(감각과 개념화)가 모든 것이 분리되어 있고 항구적인 것으로 보이는 ‘일상적’ 세계 너머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물을 이런 ‘무지한’ 방법으로 보기를 고집하는 한, 우리는 삼사라, 즉 존재의 바퀴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우리의 감각이 인지하는 세계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는 가에 따라 우리의 세계관은 달라지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개념은 ‘자아’는 궁극적으로 우주 속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절대적이고 항구적인 것에 대한 믿음이 욕망과 고통을 가져옵니다. 끊임없이 집착하고 추구하고 구하려 애쓰지만 만족은 드물고 순간적입니다.

삶의 자세에 대해서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주는 책입니다. 스콧 니어링과 소로우가, 장길연과샤 튜더가 왜 그렇게 고집스럽게 자연을 벗하고 살며 옛날 방식의 삶을 고수하고자 했었는지 다시 한번 반추해보게 됩니다. 좋은 밤 시간 되십시오.

2006 12.7 당신의 신실한 벗 산비


제1부 ‘전통’, 제2부 ‘변화’를 거쳐 제3부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편에 들어섰습니다. 헬레나 스스로 라다크의 과거와 현재를 대비하여 설명하면서 다소 과장되게 긍정하거나 부정한 면이 있을 수도 있다고 고백합니다. 전통적인 생활은 장밋빛 렌즈를 통해서 보고 현대적인 삶은 검게 색칠한 것처럼 묘사했을 수도 있다고.

일반적인 서구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가난하기 그지없고 문맹에다 기본적인 편의들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실상은 외부에서 보았을 때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헬레나는 강조합니다. 단순히 경제학적 측면으로 GDP가 거의 제로로 잡히는 라다크나 비슷한 인근 국가인 부탄의 사람들과 수입이 없는 뉴욕의 노숙자나 거지들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네의 기본 욕구를 스스로 충족시키고, 아름다운 미술과 음악을 즐기며, 가족, 친구, 여가 활동을 위한 시간을 서구인들보다도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기 어려운 삶의 기쁨과 활기가 그들 속에 있습니다. 그들은 늙거나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삶과 죽음은 지속적으로 회귀하며, 삶의 각 단계는 그 나름의 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자연에 기초를 둔 전통적인 사회가 여러 가지 결함과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더 지속 가능한 사회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인간과 주위 환경과의 오랜 대화의 결과입니다.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다양한 상호관계는 서로를 강화하고 조화와 안정을 이루는 쪽으로 변화해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인위적인 개발의 손길이 뻗쳐옵니다.


“문화적 붕괴의 또 하나 중요한 요인은 현대 세계와의 접촉에서 비롯하는 열등감이다.

헬레나가 내부로부터 들여다보고 써 내려간 라다크 전통 파괴의 역사를 읽으며 현대화, 문명화는 과연 필요악인가? 세계 문명은 모두 다 서구식 개화의 길을 반드시 걸어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현대화는 문화의 지역적인 다양성과 독립성을 단일문화와 경제체제로 대체시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더욱 탐욕스러워지고 서로 갈등을 겪게 됩니다. 개발은 과연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일까요? 갑자기 모든 가치체계의 혼란이 일어납니다. 배를 곯고 굶어 죽는 일이 일어나는 것만 아니라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만족하며 살아가는 삶이 정신적으로는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물리적으로 편리하지만 우울한 생활과 다소 불편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행복한 삶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저는 당연히 후자를 택하겠습니다.


문제는 어디에 더 가치를 둘 것인가 하는 가치관과 무엇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이것과 저것을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래서 선택할 수 있다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비교할 능력이 없을뿐더러, 인위적인 힘에 의해 밀려오는 서구화의 물결에 어쩔 수 없이 휩쓸려 버리고 맙니다.

나 혼자서는 그것을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아스팔트 도로가 생기고, 전기가 들어오고, 플라스틱 양동이가 유입되면 그것을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차이가 생기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갈등과 반목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꼴 저 꼴 보기 싫으면 소로우처럼 혼자 산속으로 들어가 두문불출하고 자급자족하며 사는 수밖에 없겠는데...


책을 읽으며 이 책을 쓴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라는 사람이 참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화와 문명을 거시적으로 관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결론지을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일입니다. 무려 16년의 세월을 직접 몸담고서 체험하고 호흡하며 그 문화 속에 동화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글 한 줄 한 줄에 진정성이 배어 나올 밖에요. 그런데 그녀는 어떻게 16년을 그 속에서 살 수 있었을까요? 이미 서구 문명의 편리함에 물들어 있었던 사람이... 또다시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2006 12.11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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