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2

by 산비

생각의 창고가 텅텅 비어버린 느낌입니다. 생각이 쌓여야 그것을 정리하고 풀어서 글을 써낼 수가 있을 터인...

침잠하고 사유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료의 축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요즘 신문을 너무 건성건성 읽어서 그런가 싶기도 합니다. 제 즐거운 취미 중의 하나가 신문을 읽으며 빛나는 문구들을 발견해 스크랩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문구들에 내 생각을 덧붙여 글을 쓰는 것입니다. 제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미소 짓는 프로네 님을 상상하면 저는 무척 행복해진답니다.


“사소한 것 갖고도 자주 다투는 사람이 좋은 친구인 것 같아요. 너무 어렵거나 상대방이 마음 편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관계는 불편하잖아요. 사소한 걸로 다툴 수 있다면 부담 없는 친구지요.”


일부러 다툴 필요는 없겠지만, 가끔은 사소한 걸로 티격태격 서로 고집을 부리며 힘겨루기를 하는 것은 서로에게 상처 주는 것이 아니라 얼굴에 미소 짓게 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속으로 부글부글 끓으면서 의식적으로 참아내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고,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을 그 자리에서 바로 말할 수 있는 관계여야 합니다. 가식적인 행동과 의식적인 인내가 하나씩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할 수도 있습니다.


“만족감은 자신이 삶의 흐름의 일부임을 느끼고 이해하면서, 긴장을 풀고 그 흐름과 함께 움직이는 데서 온다. 당신이 먼 길을 막 떠나려 하는데 비가 쏟아진다고 해서 비참한 기분이 될 게 뭐 있는가? 아마도 더 좋을 것은 없겠지만, 라다크 사람들의 태도는 그렇다고 해서 ‘불행할 게 뭐냐?’이다.”


사소한 사고라도 일단 벌어지면 골치 아프고, 번거롭고, 짜증 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다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노 빠사 나다’(별 일 아니야) 스페인 사람들의 낙천적인 마음과 라다크 사람들의 평화로운 마음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2006 12.11 산비



“인간에겐 컴퓨터에 없는 ‘동기’라는 게 있고 그로 인해 그 어떤 한계와 불가능도 극복해온 까닭이다. 각오하고 노력하는 자의 힘은 무한하지 않던가.”


얼마 전 세계 체스 챔피언과 컴퓨터 사이에 체스 대결이 있었습니다. 이번엔 인간의 완패로 끝났습니다. 10년 전 처음 대결 때는 인간이 이겼습니다. 그 뒤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컴퓨터가 업그레이드되어 이제는 컴퓨터에 완전히 밀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컴퓨터가 아무리 업그레이드된다고 해도 결국 인간은 컴퓨터를 다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겐 ‘동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동기에 의해서 자극받는 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한 인간은 어떤 한계도 극복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꽤나 많은 곳을 다니고 많은 것을 배웠지. 우리가 배운 것은 어쩌면 사전에 더 잘 나와 있을지 몰라.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광경과 이 느낌은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 가질 수 있는 것이야”

박물관을 다니며, 유명 답사지를 다니며 본질은 도외시하고 설명된 안내판에만 너무 집착하는 것을 탓하는 말입니다. 숙제한다면서 열심히 안내문을 베끼는 아이들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하는 말입니다. 물론 궁여지책으로 그렇게라도 하여 역사를 접하게 해 보려는 의도겠지만, 중요한 것은 전시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심미안입니다. 좀 더 직관적인 미적 안목을 갖추어야 합니다. 모든 것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바라보고 관조하는 시각입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그것을 바라보며 얻는 느낌. 그것은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찰나적 기쁨입니다. 그것은 삶의 순간순간에 그것을 의도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섬세한 감각을 가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적 얻음입니다. 그 찰나의 기쁨을 많이 느끼고 얻어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마주치는 많은 사물과 사람들을 그저 스쳐 지나치지 마시고 면밀히 관찰하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의외의 소득이 있을 것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그럼.

2006 12.12 산비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를 완독 하였습니다. 책을 다 읽고서야 헬레나가 라다크를 위해서 실질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녀에게도 많은 시련과 고민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노력들이 도움을 주기보다 해를 끼치는 것이 더 많지는 않은가? 라다크는 전혀 개발이 되지 않으면 더 잘 살 것인가? 개발은 외부의 개입 없이 오직 라다크 사람 자신들에게서만 나와야 하는가?” 등등.

그녀는 우선 그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현대 문명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라다크 인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강연을 하고 본보기를 예시하고 연극(라다크여, 뛰기 전에 잘 보라!)을 만들어 홍보 활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가장 현대적이라는 미국인들이 돌로 빻은 통밀빵을 비싼 돈을 주고 사 먹으며, 부자들이 오히려 라다크 사람들의 집 같은 천연재료로 만든 집에서 살고 가난한 사람들은 콘크리트 건물에서 살고 있으며, 부자들은 100% 천연섬유와 순모라고 쓰인 상표가 붙은 옷을 사 입고 가난한 사람들은 폴리에스테르 옷을 입는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것만으로 역부족이라는 것을 느끼자 그녀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그룹을 조직하여 워크숍과 세미나를 열고, 주정부에 편지를 띄우고, 국제단체(라다크 프로젝트, 에콜로지 및 문화를 위한 국제협회)를 결성하였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반개발’이라고 불렀습니다. ‘반개발’의 일차적 목표는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미래를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자기 존중과 자립을 증진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생명을 떠받치는 다양성을 보호하고, 지역중심의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보다 작은 규모의 정치, 경제적 단위를 향할 때, 상호 관련성에 기초한 보다 넓은 세계관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최근 세계는 점점 더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들과 가장 현대적인 문화 사이에 놀라운 유사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과 지구 사이에 본래부터 존재해온 오래된 유대관계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과거로 완전히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미래를 찾는 우리의 노력은 불가피하게 자연과 더 큰 조화를 이루는 어떤 근본적인 패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헬레나의 주장이고 이 책의 결론입니다.


“진정한 미래는 오래된 옛 지혜 속에 있다.”


좋은 책 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해보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제 내면에 자연주의에 대한 깊은 동경이 자리 잡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이제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차근차근 진행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 방방곡곡, 심산유곡을 방랑하며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평화로워지는 수려한 땅을 찾아보렵니다. 앞으로 강물이 흐르고, 뒤로 산이 있고, 밭을 일굴 수 있는 땅이 붙은 농가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다면 흙집이나 통나무로 오두막을 직접 지어도 좋을 것이고요. 통창으로 들판과 먼 산이 바라보이면 좋겠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물안개가 자욱하게 일어나는 모습과 하얗게 눈 내린 들판에 교교한 달빛을 받으며 고적하게 서있는 소나무를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 꿈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오래된 미래>를 다 읽고 시간이 있어서, 지난번 읽다만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를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온 듯 전혀 다른 관점의 책을 읽게 됩니다. 어찌 보면 좋은 대비가 되는 독서의 타이밍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의 압박, 시간을 더 작고 불규칙하게 잘라낼 수 있는 우리의 능력, 전자 인프라의 엄청남 힘과 속도, 개별적으로 가격이 정해지는 상품, 점점 세밀해지는 지급체계, 이 모든 현상은 돈의 흐름이 어느 시점에 가장 정점에 오를지 예측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프로그램 편성표에 의해 운영되는 TV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말로 대별되듯, 우리의 삶은 이미 시간을 선택하여 소비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과 식당들, 365일 진료하는 병원, 시간 외 거래되는 주식시장, 광고를 빼고 편집해서 보는 쌍방향 TV...

‘시간이 돈이다’라는 구호 아래 시간당 임금으로 계산되고 지급되던 9 to 5의 시스템은 이제 낡은 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멀티태스킹, 멀티포커스가 일반화되고 각종 첨단 장비들이 오피스에 도입되면서 이제 거리와 시간 개념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차츰 지식이 노동의 가치를 좌우하는 추세가 되면서 작업 시간도 획일적인 표준 시간에 따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시간은 더욱 중요해졌지만 정확한 시간 엄수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인간은 시간을 점점 짧게 또는 길게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시간과 생산성의 연결 고리는 약해지고, 불규칙해지고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부의 심층 기반인 시간과 인간의 관계가 혁명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 토플러의 주장입니다. 오늘은 머리가 아주 뒤죽박죽입니다. 달리면 좀 정리가 되려나...


2006 12.13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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