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글을 쓰는가?

by 산비

“내가 진정성의 문제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은 책을 쓰면서부터였습니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내부에서 짊어지고 다니지만 완전히 의식하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상처들을 깨닫는 것이고, 인내심을 갖고 그것들을 탐구하고, 묘사하는 것입니다. 작가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바로 그런 글을 읽을 때 우리는 무릎을 치면서 감동받게 됩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표면화되지 못하고, 명제화하지 못하던 것들, 막연하고 의뭉스러웠던 것들이 글로 명확히 표현되어 있어, 그 글을 읽으며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가려운 곳을 긁힌 것처럼 시원함을 얻게 됩니다.

어떨 때는 거꾸로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정리되지 못했던 생각들이 글을 쓰는 동안, 글을 쓰려고 의도하는 동안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자기가 써놓고도 그 글이 너무나 멋스럽고 깔끔하여 스스로 감탄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며 내가 이런 훌륭한 생각을 했었나 싶어 지기도 합니다. 말로 하려고 하면 마음만 앞서고 잘 표현이 안 되던 것도, 글로 써 내려가면 논리적인 설득력을 갖추게 됩니다. 그래서 글이 쓰고 싶어 지는 가 봅니다.


“이파리를 가시로 바꾸며 저 선인장들이 뜨거운 태양을 견뎌내듯 산다는 건 어차피 무언가를 견뎌내는 것이 아니던가.”


바보스러움을 숨기려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내보일 수 있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힘들어하고, 같이 해결책을 모색했으면 좋겠어요. 뜨거운 태양을 견뎌내야만 이파리를 가시로 바꿀 수 있다고 하잖아요. 가시가 되기 위한 수련이라고 생각하십시다. 언젠가 빛나는 가시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반복되는 뜨거움의 고통을 견뎌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힘냅시다.


2006 12.14 산비


<부의 미래>를 조금 읽었습니다. 제4부 ‘공간의 확장’ 시간성에 대한 고찰에서 이제 관점이 공간에 대한 문제로 넘어왔습니다. 부의 지리적 이동이 전개되고 부의 지리적 판도가 대대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서두를 꺼냅니다. 아시아를 향한 부의 역사적인 이동, 다양한 경제 기능의 디지털화, 국경을 넘어서는 지역 국가의 출현, 장소와 위치를 중요시하는 기준의 변화와 같은 모든 현상들이 심층 기반인 공간과 관계된 변화의 물결입니다.

“나는 삶의 모든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언어로 바꾸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글을 씁니다. 나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구성합니다. 나는 행복한 적이 없기 때문에 행복하기 위해 씁니다.”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오르한 파묵’의 대답입니다. 파묵은 이번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터키의 작가입니다. 삶의 아름다움을 언어로 바꾸는 것이 작가의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고 공감하고 행복해하면 덩달아 작가도 행복해지는 것이겠지요.

비록 재주가 미천하여 삶을 관조하고 통찰하는 능력도 부족하고 그것을 표현해내는 능력도 일천하지만, 프로네 님이 조금만 격려해주신다면 열심히 갈고닦아 빛나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해 나가겠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생각들을 적어나가기를 한 10년쯤 꾸준히 한다면 어느 정도 일가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성이 안차면 한 10년을 더하는 거지요. 머.


드라마 황진이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평생을 재주 겨루며 겯고틀던 知己가 이리 가고 없는데 내가 무슨 힘이 있어 命을 더 이어 붙이겠는가. 백무 이 사람”

‘겯고틀다’ - 지지 않으려 서로 버티어 겨루고 뒤틀다. 우리도 겯고틀며 평생을 질주해봅시다. 프로네 님이 앞서 나가면 제가 바로 뒤 쫓아 가고, 제가 앞서 나가면 프로네 님이 바짝 따라붙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겯고틀면 분명 ‘괄목상대’할만한 발전이 있을 것을 믿습니다.

2006 12.15 산비



여행지에서 스치는 풍경을 아쉽게 뒤돌아보게 되는 건 다시 보지 못하리라는 예감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시 오지 않을 2006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것일까요?


이제 조금 여유가 생긴다는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마 곧 또 정신없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어쩌면 정신없는 일을 스스로 만들어낼 게 분명합니다. 인생은 그런 것입니다. 끊임없이 정신없게 하는 일이 생기고 그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우왕좌왕하고. 그러다 보면 세월은 흐르고... 그러므로 인생에 나중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십시오. 일을 하면서도 여유로울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십시오. 일에 치이지 마시고, 일을 지배하고 리드해 나가십시오.


때로는 인생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노인과 바다’의 노인처럼, 결국 앙상한 뼈만 남게 된다 하더라도 끝내 삶의 항구로 끌어오고 싶은 ‘바로 그것’에 전부를 걸어야 하는 순간이 인생마다 있습니다. 고생을 죽도록 했는데 결과가 없다면 허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걸었고, 그 과정을 즐겼다면 후회는 남지 않을 것입니다.


<부의 미래>는 시간과 공간과 부의 관계에 대한 설명에서 경제 활동의 세 번째 심층 기반인 ‘지식’에 대한 문제로 넘어왔습니다. ‘제5부 지식에 대한 신뢰’를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데이터가 모여 정보가 되고, 이런 정보가 더 포괄적이고 고차원적인 패턴으로 배열되어 다른 패턴과 연결될 때 비로소 지식이라 부를 만하게 된다고 합니다.


지식이 갖는 특징은 여러 가지입니다. 지식은 비경쟁적이며, 형태가 없고 직선적이지 않습니다. 지식은 다른 지식과 어우러지며 밀봉하기 어렵고 퍼져나갑니다. 지식은 상징이나 추상적인 개념으로 압축할 수 있으며 점점 더 작은 공간에 저장할 수 있고, 이동이 편리합니다. 지식은 명시적일 수도 있고 암시적일 수도 있습니다.

책을 읽어 나가고는 있는데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관심 있는 영역이 아니라서 일까요? 너무 두껍기도 하고. 그래도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이 필독서로 읽는다고 하니 끝까지 읽어보렵니다.


문득문득 가슴이 답답해지고,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싶어 지고 내 스스로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져서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럴 필요 없다. 그러면 안 된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어’ 하면서 자기 최면을 겁니다. ‘최소한 프로네 한 사람은 나를 인정해주고 있잖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많은 칭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2006 12.19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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