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공즉시색

by 산비

“생각의 도구 중에서 2가지 이상의 현상으로부터 유사점을 찾고 이를 다른 현상에 적용하여 결론을 도출해 내는 유추만큼 중요한 도구도 드물다. 인간은 유추 없이는 생각도 말도 하기 힘들다.”


이것으로부터 저것을 유추해내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유추할 수 있어야 발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계는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어제의 유추가 오늘에 이르러서는 무용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아이디어도 후세대에게는 웃음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뱀장어가 진흙 속에서 짝짓기 하여 나왔다고 믿었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많았으며, 남미에서 유럽으로 토마토가 처음 들어온 16세기에는 토마토가 인간에게 독이 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렇듯이 오늘 우리가 사실이라고 여기는 것들의 상당수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모든 지식에는 한정된 수명이 있게 마련입니다. 변화하는 지식들을 끊임없이 배워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디에도 길은 없다. 내가 가는 곳이 나의 길이다. 길은 내가 갈 때 나의 길이 되어 길을 내어준다. 길은 있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삶은 길을 열고 달릴 수 있는 용기다.”


길을 열고 달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집시다. 내가 내딛는 걸음걸음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하나의 길이 되게 합시다. 너무 위축되지 마십시오. 우리에겐 우리 나름의 길이 있음을 믿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그런 이야기를 쓰는 이는 매우 적다. 떠벌리는 자들과는 작별을 고하고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미지의 글쓰기를 시작하라.”

“책 읽기는 책이 우리에게 속삭이며 우리 영혼이 그것에 대답하는 끊임없는 대화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우리 삶의 중요한 구성입니다.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읽기만 해서는 남는 것이 적습니다. 책의 속삭임에 대한 대답을 글로 남기는 것. 그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나의 내면과 마주 대해야 하고 자아와 토론해야 합니다. 그렇게 정제된 지식만이 우리의 영혼을 살지게 합니다.


요즘 책 읽은 느낌에 대한 글이 뜸하십니다. 연암집이든 뭐든 읽은 글에 대한 생각들을 좀 적어 보내주십시오. 당신의 글이 고픕니다.


2006 12.20 산비



내일 정화 스님의 강의 주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우선 강의를 듣기 전에 뭔가 공부가 필요할 것 같아서 불교사상의 가장 근본이라 할 수 있는 ‘空’에 대해서 공부를 해보았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았다는 것이 바로 ‘색과 공이 상호의존적으로 연기하고 있는 진리’입니다. 그 진리를 깨닫고 설파하기 위해 불교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머리로는 잘 믿어지지 않고 허황된 이야기로 들리지만, 프리초프 카프카의 해설을 들어보면 그것이 물리학적 이론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우리가 실체적으로 감지하는 물질이(색) 어떻게 공이 될 수 있느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몇 가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 첫 번째가 장이론입니다. 물질은 입자도 될 수 있고, 파동도 될 수 있으며 그것은 단일한 장으로 통일될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가 인지하는 입자라고 하는 것이 단지 장의 국부적인 응결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제 이 ‘장’이라는 개념을 ‘공’의 개념에 대입시켜보면 놀라운 유사성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공은 모든 형태들의 본질이며 모든 생명의 원천이다.’ 그렇지요. ‘공’은 무한한 것들을 담을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공을 채우고 있는 충만한 장의 에너지가 응축되어 모든 ‘색’을 만들어냅니다. ‘공즉시색’입니다. 또한 이 에너지의 집결은 왔다가 가버림으로써 개체의 특성이 상실되고 바닥의 장으로 융합됩니다. ‘색즉시공’입니다. 다시 말해 물질과 공간은 분리될 수 없는 단일한 전체로서 상호 의존적으로 존재합니다. 질량체가 있고 중력장이 있어 공간을 휘게 하는 게 아니라 ‘만곡 된 공간’ 그 자체가 곧 ‘장’이며 물질입니다. 이 둘은 구별될 수가 없습니다.


눈을 감고 미시적인 상상력을 동원해보십시오. 내 앞에 놓인 키보드, 책상, 전등, 그리고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입자들을 쪼개고 쪼개면 이 모든 것이 우주라는 공간을 채우고 있는 동일한 입자들의 결정체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입자라는 것은 에너지장이 각각의 조건에 따라 응축된 결과입니다. 다시 물리학적으로 설명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의 소립자들(예를 들어 광자, 핵자 같은)과 아직 실체를 규명하진 못했지만 존재할 것으로 유추되는 가상의 중간자들이 에너지를 방출하고 흡수하며 소멸되고 생성되는 과정 즉 허공으로부터 생겨났다가 다시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 그것이 ‘색즉공, 공즉색’의 진실입니다.


원론으로 돌아가서 불교에서 말하는 空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 만물에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사상입니다. 이것을 ‘파도 현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바다의 파도를 보고 있으면 한 구획의 똑같은 물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것 같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장의 응결인 입자는 호수의 표면을 가로지르는 파도처럼 ‘공’ 속을 전파되어 나갑니다. 즉 키보드, 책상, 나를 이루고 있는 장의 응결체인 입자는 끊임없이 소멸되고 생성되며 전파되어 나갑니다. 바로 전의 나를 이루고 있던 입자들은 이미 저쪽으로 가버렸고 새로운 에너지장이 조건에 따라 다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약간은 궤변처럼 들리시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2006 12.22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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