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미래>를 꾸역꾸역 읽고 있습니다. 진실의 진위를 가늠할 수 있는 6가지의 기준(합의, 일관성, 권위, 계시, 내구성, 과학)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끕니다.
미래 경제의 모습은 지식의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진실 여과 장치를 사용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많은 부분 거짓이거나 허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6가지의 방식에 의해서.
밤이 되었습니다. 어제는 저만치 흘러갔고, 오늘도 이제 서서히 저물어 갑니다. 어제의 감동과 흥분은 뇌의 한 조각에 기억으로 스며들었지만, 저장되는 그 순간부터 조금씩 녹아서 소멸되어 갈 것입니다.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보석 같은 정수만 남아 아름답고 영롱한 추억으로 자리 잡을 것을 믿습니다.
어제 선물해주신 <티벳 사자의 서>와 <시경>은 프로네 님의 진도에 맞추어서 읽기 시작하려고 합니다. 죽음의 순간에 단 한번 듣는 것만으로도 영원한 해탈에 이르는 진리를 담고 있다 하니 말만 들어도 책을 읽고 싶은 의욕이 샘솟습니다. 그럼, 좋은 밤 되십시오.
2006 12.27 산비
“여행은 결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것들을 건너가게 해 주고, 치명적인 것들을 부드럽게 감싸주기도 하며, 낯익은 것과 낯선 것들의 자리를 뒤바꿔 놓고 우리를 기다리기도 한다.”
여행도 산행도 그것에는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뭔가가 있습니다. 산에 한번 다녀오면 가슴에 맺혔던 것들, 응어리졌던 것들이 풀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엘리베이터는 타고 있으면 그냥 올라갑니다. 산은 내 두발로 걷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습니다. 내 존재에 대한 실체성을 확연히 느끼게 됩니다. 나를 관조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일상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나를 저편에서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혼자 남겨지는 것은 참으로 못 견딜 일이다. 밥을 혼자 먹다 보면 수저와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먹는다는 것이 생존의 조건임을 그때처럼 가슴 아리게 느끼는 적도 없다. 누구에게나 삶의 끝은 오고 남겨진 시간은 부족한 터에 왜 그토록 어수선하게 살면서 쓸쓸해하는 것인지...”
영화 ‘라디오 스타’를 보면서 가슴이 울컥해지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안성기가 버스를 타고 가면서 팔다 남은 김밥을 입에 꾸역꾸역 밀어 넣던 장면. 괴롭고 슬프고 아프지만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만 한다는 것. 혹은 불러오는 배를 움켜쥐고도 식탐을 자제하지 못해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것. 이 두 가지의 상반된 상황을 우리는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먹는 행위가 누구에게는 유희적 즐거움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 꼭 아프리카 소말리아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2006년의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어수선한 삶을 싫어합니다. 꽉 짜인 삶의 계획에 따라 치열하게 살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처음의 마음은 어디로 가버리고 어수선한 가운데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다만 어제가 어떤 하루였든, 오늘은 또 다른 하루라는 것. 우리에겐 아직 열어보지 않은 시간이 주어져있다는 것. 2007년이라는 새로운 시간의 문을 열고 들어가 멋지고 아름답게 행복의 수를 놓읍시다.
2006 12.29 산비
“줄리아, 폭풍우 속의 나무들을 생각해봐. 나무들은 폭풍우 속에 절대로 똑바로 서 있으려고 하진 않아. 휘면 휘는 대로, 바람에 날리면 날리는 대로 가만히 자신을 바람에 내맡겨요. 똑바로 서 있으려고 애만 쓰는 나무들은 결국 부러진답니다. 줄리아, 강해지려고만 하지 말아요. 그냥 자연의 바람에 스스로를 내맡겨둬 봐요. 그래야 폭풍우를 헤져나갈 수 있어요. 그것이 삶의 폭풍우를 헤쳐 나가는 방법이기도 하지요.”
어제는 하루를 푹 쉬며 정진홍 님의 <완벽에의 충동>을 읽었습니다. 그중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가 이야기 나눈 바 있는 여성이지요. 줄리아는 천년 된 삼나무가 벌목될 위기에 처하자 그 나무 위에 올라가 꼬박 2년을 살았습니다. 정확히 738일을. 나무 위의 생활이 여러 가지로 어려웠지만 그중 현실적으로 가장 두려운 것은 바람이었다고 합니다.
55미터 높이의 오두막에서 맞는 폭풍우는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줄리아는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바로 위에 소개해드린 이야기입니다.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똑바로 서고자 하는 것이 옳은 삶일까요? 아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내맡겨두는 것이 지혜로운 삶일까요? 프로네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한 번쯤 생각의 바다에 빠지게 하는 대목입니다.
정진홍 님의 글은 50번 이상의 퇴고를 거쳤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만큼 깊은 감동을 주지는 않습니다. 몇 가지 큰 주제를 가지고 역사에 빛나는 인물들의 삶을 거론하며 교훈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감흥은 밋밋합니다.
휴일 뒤라 그런지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컴퓨터까지 말썽을 부리는 통에 아주 정신이 없었답니다. 문명의 이기가 사람을 아주 편리하게 해주는 반면, 먹통이 되면 모든 작업이 멈춰버립니다. 컴퓨터를 새로 들여서 겨우 수습하였습니다. 오늘은 푹 쉬십시오.
2007 1.2 앗! 2007년이다.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