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비 Mar 19. 2019

두꺼워지는 삶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삶



“우리의 영혼은 어둠 속에서도 샛별처럼 빛나야 하는 것. 우리의 영혼은 바닥에 떨어져도 다시 튀어 오르는 공처럼 생동해야 하는 것. 이 세상이 내 앞에 처음으로 있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라. 그렇게 살라”    


매일 반복되는 아침이지만, 온전한 정신과 건강한 육신으로 맞는 새 아침은 얼마나 경이로운지요. 이 아침이 내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맞는 아침인 것처럼 그렇게 느껴야 한다고 시인은 말해줍니다. 하루 종일 지치고 멍든 영혼은 밤과 잠이라는 안식을 취한 후 새벽을 맞아 다시금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영혼으로 깨어납니다.   

  

새벽에 마시는 찬 공기는 폐의 알람입니다. 폐에서 교환된 신선한 산소는 혈맥을 통해 온 몸으로 전달됩니다. 흔들고 걷고 달리는 동안 구겨진 몸은 펴지고, 막혔던 기가 뚫립니다. 심장은 서서히 달아올라 힘차게 박동합니다. 새벽 공기에서 하루를 활기차게 살 수 있는 에너지를 얻습니다.    


“대나무의 삶은 두꺼워지는 삶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삶이다. 대나무는 죽순이 나와서 50일 안에 다 자라 버린다. 더 이상은 자라지 않고 두꺼워지지도 않고, 다만 단단해진다. 대나무는 그 인고의 세월을 기록하지 않고,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다.” - 김훈의 <자전거 여행> 중에서    


왕대는 80년에 한 번씩 꽃을 피우는데, 꽃이 피고 나면 대나무는 죽는답니다. 꽃으로 모든 힘이 들어가서 더 살 수가 없다 하네요. 두꺼워지는 삶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삶이라니.


그저 나이 한 살 더했다는 것이 인생의 훈장이 될 수는 없습니다. 밥이나 축내면서 비만해지기만 하는 인생은 죽은 삶입니다. 얼마나 찰진 삶을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알차고 튼실한 삶, 삶의 지혜와 배움이 농축되어 진한 향이 은은히 배어 나오는 삶. 온 힘을 다하여 꽃을 피우고는 여한을 남기지 않고 가버리는 삶.     


우리의 삶이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요?    


2008 2.15     산비        



“자전거와 연어는 양양에서 만났는데, 그날 밤 여관에서, 산맥을 넘어온 자전거는 원양을 건너온 연어 때 앞에서 수줍게 겨우 잠들었다.”     


김훈은 해발 1100 고지의 태백산맥을 자전거로 타고 넘으며 기진맥진합니다. 허덕 지덕 비틀거리며 고개 마루를 넘습니다. 이 고개를 넘기 전 김훈은 가져가야 할 것과 빼버려야 할 것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배낭이 무거워야 살 수 있지만, 배낭이 가벼워야 갈 수 있다. 그러니 이 무거움과 가벼움은 결국 같은 것인가. 같은 것이 왜 반대인가.” 먼 여행을 떠나보거나, 긴 산행을 해 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공감이 될 것입니다.    

 

“몸이 기뻐서, 아아 소리치며 이 길을 자전거로 달렸다.” 그렇게 힘들게, 그렇게 기쁘게 자전거로 산맥을 넘어왔지만, 연어 앞에 선 김훈은 부끄럽기만 합니다. 양양 남대천에서 나고 자라 멀리 베링해를 거쳐 알래스카까지 4년여의 시간을 여행하고 돌아온 연어 앞에서는 누구라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김훈은 ‘수줍게 겨우 잠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로  첫 마라톤 해외 원정을 다녀왔습니다. 무슨 달리기를 하러 거기까지 가느냐는 비아냥도 들었지만, 다녀온 지금 후회는 없습니다. 저는 지금 알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나도 아아 소리치며 도쿄의 그 길을 달렸습니다. 발바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인내하며 완주하였습니다. 고통스러웠지만 나의 자존심은 포기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아픔도 견디고 견디니 나중에는 무덤덤해지더이다. 우리 삶도 그런 것이겠지요.     


몸이야말로 마음과 정신의 바탕이고, 영혼의 최고 형태라고 합니다. 몸이 튼튼해야 긍정적 태도와 활력이 생기고 뭔가 해보려는 의지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는다는 것입니다. 할 수 없다고 미리 단정해버리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꾸준히 체력을 단련해서 프로네 님도 마라톤에 꼭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2008 2.18     산비       


 

“젊은 날에는 늘 새벽의 상류 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이제는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하류의 저녁 무렵이 궁금하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완독 하였습니다. 이 책이 산문과 시의 경계를 무너뜨렸다는 찬사를 받는 이유를 납득하게 됩니다. 문장의 마디마디에 축약과 은유로 버무려진 속뜻이 담겨 있어, 글을 읽고서는 한 번쯤 마음을 가다듬어 보게 만듭니다. 산문을 읽었는데 시에서 받는 감흥을 느끼게 됩니다. 김훈 문장의 마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나는 확신한다. 어느 누구도 타인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누가 누구를 잃을 수는 없다는 것을.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지는 것.”     


소중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진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김훈에 이어 코엘료의 책 <11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은 에세이에서는 맛볼 수 없는 긴장과 흥분을 느끼게 합니다. 처음 상황 설정 단계에서는 밋밋하게 흐르던 이야기가 사건의 핵심에 접근해 가면서 점점 가파르게 진행됩니다. 갈등과 긴장감이 점입가경입니다. 그 단계에 이르면 책을 놓지 못하고 점점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소설 읽기가 원래 그렇습니다.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2008 2.22    산비

매거진의 이전글 저리 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