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정 바라고 추구하고 그리워하는 일, 내 모든 것을 걸 만한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다 잘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 한두 가지 정도는 죽는 날까지 지속적으로 해 나가고 싶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무언가 나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 나 스스로 뿌듯하다면 그걸로 족하지만,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세월을 덧없이 허송한 것은 아닌 셈이다.
히말라야의 아침이 밝았다. 여행을 오면 빼먹지 않고 습관처럼 하는 아침 일과가 있다. 산책이다. 새벽, 이른 아침 뒷짐 지고 어슬렁어슬렁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본다. 밥 먹기 전 식욕을 돋우는 아침 운동도 되고, 그 지역의 문화를 살펴보고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둘러보는 좋은 기회가 된다.
네팔 현지인들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밤 문화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전기 사정이 좋지 않으니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난다. 우리 옛 조상들의 삶이 그러했듯이. 아이들도 아침 일찍부터 부산하다. 말을 걸어보니 큰 집에 아침 먹으러 가는 길이란다. 한 아이가 영어 교과서를 가지고 있어 펼쳐 보았다. 10살짜리 초등학교 3학년 영어 책의 수준이 장난이 아니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역사의 영향일까? 네팔은 195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아침을 먹고 관절을 풀어주는 도수체조를 실시한 후 힘찬 구호와 함께 오늘의 트레킹을 시작했다. 오늘은 오전에 남체까지 대략 5시간 정도의 걷기가 예정되어 있다. 남체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쉴 사람은 쉬고 체력에 여분이 있는 사람들은 고소 적응을 위해 에베레스트 뷰 호텔까지 다녀올 계획이다.
어제의 음산했던 날씨와는 달리 날이 아주 쾌청하다. 따사로운 햇살이 몸을 보드랍게 감싸 안는다. 초록빛 대지는 생명력으로 충만하다. 겨울의 히말라야는 하얀 세상이지만, 여름의 히말라야는 푸른 세상이다. 척박함과 황량함은 5000m 이상의 고지에서나 보는 풍경이다. 수목 한계선인 4000m까지는 나무와 꽃과 풀이 무성하다.
어제의 우울과 긴장을 다 털어버리고 오늘은 모두 밝은 표정으로 ‘히말라얀 라이프’를 만끽한다. 재잘재잘. 길을 걸으며 이런 얘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앞에서 농을 던지면 뒤에서 받아친다. 별것 아닌 싱거운 소리에도 괜스레 웃음보가 터진다. 함께 동행하는 여행의 즐거움이다.
얼마 안 가 톡톡(2760m)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서 남체 가는 길과 콩데 가는 길이 갈라진다. 3일 후에는 콩데에서 이 길로 톡톡 마을까지 내려올 것이다. 남체에서 하루 자고 타메로 갔다가 콩데 호텔을 거쳐 톡톡으로 하산하는 것이 우리의 일정이다. 톡톡에서 루클라까지는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서 루클라로 원점 회귀하게 된다. 이것이‘콩데 트레킹’ 일주 코스다. 짧은 일정으로 히말라야의 다채로운 속살을 만나볼 수 있는 최적의 코스라고 생각한다. 보통의 트레커들은 5일 일정이면 남체나 상보체까지만 갔다가 같은 길로 루클라로 되돌아온다. 그건 조금 밋밋하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나 칼라파타르까지 다녀오려면 보통 2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히말라야 콩데 트레킹’은 하마터면 무산될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었다. 콩데 호텔이 7월까지만 운영되고 8월부터는 직원 연수 관계로 한 달간 문을 닫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콩데 산(6186m)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콩데 호텔은 예티 마운틴 홈 그룹에서 운영하는 호텔 체인 중의 한 곳이다. 쿰부 지역에는 루클라, 팍딩, 몬조, 남체, 타메, 콩데에 지점이 있다. 보통의 롯지 숙박비가 일만 원 정도라면 이곳은 룸 하나에 200불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네팔 물가를 생각하면 무척 비싼 가격이다. 인터넷으로 아고다 같은 호텔 예약 전문 사이트를 통해서 예약할 수 있다.
콩데 베이스캠프에는 이곳 말고도 롯지 한 군데가 더 있지만 여름에는 문을 닫는다. 유일한 숙소인 콩데 호텔마저 문을 닫는다면 대책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가지 플랜을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 남체에서 EBC 쪽으로 조금만 더 가보고 돌아올 것인가? 타메까지만 갔다가 되돌아올 것인가? 아니면 타메에서 콩데를 거쳐 당일로 톡톡까지 내려오는 건 어떤가? 그러려면 최소 12시간 정도 걸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뭐 새벽부터 죽기 살기로 걸으면 못할 것도 없지’‘예전에도 12시간씩 걸었었는데 뭐’자꾸만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마음을 그쪽으로 굳혀갔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만약에 정말로 그날 타메에서 톡톡까지 트레킹을 진행했다면 몇 명은 탈진하고 몇 명은 고소증이나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지도 모른다.
히말라야로 떠나기 2주 전에 호텔 측과 다시 접촉을 시도해보았다. 다행히도 우리가 요구한 8월 2일 금요일까지 영업을 하고 직원 연수는 8월 5일 월요일부터 하겠다는 회신을 받았다. 히말라야의 여신이 우리를 도왔다. 그렇게 해서 7박 8일의 깔끔한 콩데 트레킹 일정표가 완성되었다.
멋진 폭포 옆을 지난다. 무지개가 선명하다. 탄성을 내지르고 기념사진도 찍는다. 이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폭포가 마냥 아름답기만 했다. 나중에 만나게 되는 콩데 산의 무시무시한 폭포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오금이 저려온다. 폭포라면 아주 이가 갈린다.
달리아의 붉은빛이 선명하다. 파란 하늘과 하얀 설산이 배경으로 어울리니 더할 나위 없이 예쁘고 아름답다. 여름에 히말라야에 오면 예쁜 야생화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여름 우기 히말라야 여행자들의 특권이다. 우기라서 안 좋은 점도 있지만 우기이기 때문에 좋은 점도 많다. 여행자는 비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몬조(2835m)를 지난다. 첫날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됐다면 1박을 하려고 계획했던 마을이다. 몬조는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출입관리소’가 있는 곳이다. 인원이 많다 보니 수속을 밟는데 시간이 걸린다. 이곳에서 잠시 쉬며 목을 축였다. 입장료로 3000루피, 우리 돈 3만 원을 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산악인들은 입산료로 1300만 원 정도를 낸다고 한다. 사무실 뒷벽에는 10년 전처럼 연도와 월별로 그곳을 지난 트레커의 인원수가 계시되어 있다. 가을 성수기에는 한 달에 만 명이 넘는 트레커가 지나갔고 여름 비수기인 7, 8월에는 단지 삼사 백 명 정도만 방문했다. 삼십 배나 차이가 난다.
다리를 건넌다. 히말라야 트레킹 상징물 중의 하나가 까마득한 절벽 위에 아스라이 놓인 출렁다리다.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매달아놓은 하얀 카타와 오색의 타르초가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남체까지는 여섯 개의 철교를 이리저리 건너야 한다. 다리가 나올 때마다 요렇게 조렇게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긴다. 마지막에 라차 도반 오르막에 놓인 다리가 가장 높고 길고 아찔하다. 소설가 박범신은 이 다리를 건너며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는 듯하다는 표현을 썼다. 이 다리를 건너면 속세의 번뇌들은 진정 망각될 것인가? 우리는 이제 인간계를 떠나 신들의 세상, 히말라야로 들어간다.
대충 하다마는 것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야구선수 최동원은 일구 일구에 혼을 실어 공을 던졌다고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전력투구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를 것이다.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후회는 남지 않는다. 내 에너지를 완전히 연소시킨 그 열정과 뜨거움이 아름다운 것이기에.
남체 전 마지막 마을인 조르살레(2760m)에서 모모와 밀크 티로 요기를 했다. 십 년 전에 하산하면서 하룻밤을 유숙했던 마을이다. 여기서부터 남체(3440m)까지는 700m의 고도를 올려야 한다. 고소증 예방 수칙에 하루에 500m 이상 고도를 올리지 말라는 것이 있는데 이 구간은 어쩔 수가 없다. 비스따리 비스따리(천천히 천천히) 올라가는 수밖에. 중간중간 쉬어가며 당도 보충하고 물도 수시로 마시고 서로 격려도 하면서 걷기를 이어갔다.
여럿이 함께라서 였을까? 생각보다 수월하게 남체 마을에 도착했다. 남체 입구에 입장료 영수증을 확인하는 체크 포인트가 있다. 가이드 겸 포터 잠조가 영리하게 일을 처리한다. 남체 바자 마을은 쿰부 히말라야의 거점 도시 같은 곳이다. 매주말마다 큰 장이 열린다. 각종 등산 장비를 갖춘 장비점부터 은행, 약국, 빵집, 인터넷 카페, 마사지 샾까지 없는 게 없다. 물론 지금은 비수기라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다. EBC를 가는 보통의 트레커들은 이곳 남체에서 이틀을 머물며 고소 적응 기간을 갖는다. 남체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탕보체, 페리체를 지나 EBC에 이른다. 위로 가면 쿰중 마을이고, 왼쪽으로 가면 타메를 지나 란조라 패스로 갈 수 있다.
십 년 만에 다시 만나는 남체, 감회가 없을 수 없다. 꿈에도 그리던 마을 아니던가? 이렇게 살아서 다시 보게 되는구나! 지난 2015년 대지진 때는 건물 일부가 무너지고 초르텐이 부서지는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지금은 거의 복구가 된 듯하다. 예전보다 확실히 건물 수가 늘어나 보였다. 그때 한참 뚝딱뚝딱 여기저기 공사판이었는데 그새 새 건물들이 많이 올라갔다. 히말라야 트레커들의 수요가 늘어나니 공급도 늘어간다. 땅이 한정되어 있으니 곧 한계에 도달할 테지만.
가이드 잠조의 추천으로 ‘셰르파 랜드 롯지’에 짐을 풀었다. 남체에 있는 숙소들은 대개 시설이 좋은 편이다. 주인장이 노말 커먼 룸 말고 디럭스 룸을 추천한다. 일반 룸의 방값은 만원이다. 방마다 핫 샤워가 가능한 화장실과 전기 콘센트가 갖추어진 디럭스 룸의 방값으로 30달러를 요구한다. 가을 성수기에는 55달러까지 받는 방이라고 한다. 딜을 해서 20달러에 방을 쓰기로 했다. 비수기의 혜택이다. 일반 룸에 묵으면 샤워비와 배터리 충전비를 따로 내야 한다.
점심을 먹고 팀을 나누었다. 남체 마을에서 휴식을 취할 팀과 상보체에 있는 에베레스트 뷰 호텔에 산책을 다녀올 팀으로. 안 샘은 등산화의 중창이 떨어져서 신발 하나를 새로 사야 했다. 등산화를 오랫동안 신지 않고 보관하면 중창이 들떠서 벌어지는 일이 생긴다. 마사지를 받고자 하는 대원도 있었지만 여름 비수기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4명이 길을 나섰다. 오전 내내 날씨가 좋았는데 오후 들어서는 운무가 올라와 시야가 좋지 않다. 이런 상황이면 상보체에 올라가도 별로 볼 것이 없다. 게다가 깔딱 고개를 힘들게 올라왔던 오전 트레킹의 피로가 풀리지 않아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목적지를 바꾼다. 남체 마을 꼭대기에 있는 산악 박물관과 반대편에 있는 티베트 불교 사원 곰파에 들러보기로 했다.
남체에는 셰르파들의 민속 문화를 소개하는 사설 유료 박물관이 있고, 텐징 노르게이의 에베레스트 정복을 기념하는 자료들을 모아놓은 무료 공공 박물관이 있다. 아쉽게도 4시가 넘은 탓인지 박물관들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박물관 건물 내부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바깥마당의 조형물들과 텐징 노르게이 동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티베트 곰파는 박물관과는 정반대 쪽에 있다. 남체를 아래로 내려다보며 마을 위쪽의 둘레길을 걸어 곰파로 갔다. 곰파는 생각보다 크지 않은 규모였다. 오른편에 요사채 같은 건물과 중정 마당이 있고 왼편에 예불을 드리는 법당이 있다. 마당에서 주민들이 한 줄로 둘러서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가만 보니 우리의 시조 가락 같은 노래를 읊조리며 운율에 맞추어 발을 구르고 있었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흥을 돋우는 장단이었다. 흥에 이끌리어 나도 모르게 그 대형에 동참했다. 말은 섞지 않았지만 눈빛만으로 이해와 동의를 구할 수 있었다. 자애로운 미소로 나를 맞아준다. 한참을 그렇게 그들과 어울리며 네팔 문화의 흥취를 만끽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일부터 시작되는 라마 불교 축제의 어떤 의식을 연습하는 중이라고 했다.
연습은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눈으로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법당으로 가보았다. 법당에는 달라이 라마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향불이 피워져 있었다. 스님 한분이 우리를 위한 축원을 올려주었다.
숙소 롯지로 돌아와서 남아있던 대원들과 그날 오후 서로에게 있었던 일과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 샘은 결국 등산화를 사지 못하고 운동화 한 켤레를 장만했다고 한다. 카트만두보다는 물가가 30% 이상 비쌌다. 모든 물자가 비행기로 들어오니 그럴 만도 하다.
저녁으로 네팔 라면을 주문해서 먹었다.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아 밍밍하지만 담백해서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라면 한 그릇 값이 300루피(3000원)인데 여기에 계란 하나를 추가하니 가격이 600루피로 뛰어오른다. 계란 한 알이 남체에서는 3000원이다. 그래도 그만한 단백질 보충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