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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Oct 05. 2019

히말라야 콩데 트레킹 5

= 2019년 8월 2일 : 타메(3820m) - 콩데(4250m) =    


맑고 밝게 살자. 쾌활하게 생활하자. 역경과 시련도 담대함과 차분함으로 대처하자. 위기에 흔들리지 말고 평상심을 유지하자. 고통은 어쩔 수 없지만 고통에 대한 반응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힘들다, 짜증 난다가 아니라 할만하다, 견딜 만하다 다짐하고 당당하게 나아가자. 명랑은 운명을 이기는 힘이다. 명랑하자.   


  

   

운명의 날이 밝았다. 오늘이 이번 트레킹의 최대 고비가 될 것이다. 제일 높은 곳(4250m)까지 올라가고 제일 길게 걷는 날이다. 콩데 호텔까지는 중간에 탈출로나 쉴 수 있는 롯지가 없다. 점심도 미리 준비해 가야 한다. 밤사이에 제법 굵은 비가 내렸다. 시끄럽게 창문을 내려치던 빗소리는 새벽에 들어서야 잦아졌다. 잘 웃고 유머 넘치던 가이드 잠조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날씨가 문제란다. 콩데 가는 길 중간에 폭포의 계류가 흘러내리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비가 많이 와서 수량이 불면 건너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냥 한 귀로 흘려들었다. ‘뭐 별일 있겠어’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산책에 나섰다. 어제 봐 두었던 언덕 너머의 타창 마을에 가보려는 것이다. 곰파 가는 능선에서 건너 보이던 마을의 초르텐이 근사했다. 여전히 가랑비가 흩뿌리고 운무가 자욱한 궂은 날씨다. 산책을 짧게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아침을 먹었다. 이날만은 식욕이 없어도 든든히 배를 채워야 한다. 점심거리로 오믈렛을 속에 넣은 짜파티 9개를 주문했다. ‘짜파티’는 인도의 ‘난’비슷한 네팔 전통 음식으로 밀가루를 반죽해서 얇게 부쳐내는 피자의 도우 같은 것이다. 별다른 맛이 없는 그저 밍밍한 밀가루 전이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아침을 먹고 나자 비가 그치고 날이 개었다. 구호를 외치고 힘찬 발걸음으로 콩데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초입 길은 평이했다. 어제 타메로 왔던 길을 거슬러 내려갔다가 우측으로 틀어서 언덕 하나를 넘는다. 타메 수력 발전소를 끼고돌아내리는 길이다. 우리가 어제 걸었던 타모 마을 뒤로 운해가 근사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우리 앞에 어떤 시련과 고난이 닥치게 될지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첫 번째 계류가 나타났다. 건기에는 쉽게 건너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기라 강물이 불어 그냥은 건널 수가 없다. 신발을 벗고 바지를 치켜올린 후 강을 건넌다. 물이 얼음장처럼 차다. 빙하 녹은 물이니 찰 수밖에. 발을 닦고 등산화를 다시 신었다. 두 번째 계류가 또 나온다. 역시나 다리가 없다. 다시 신발을 벗고 강을 건너고 발을 닦고 등산화를 다시 신었다. 영 성가시고 번거롭다.     




이제 날이 흐려져 주위 경치고 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원래는 계곡 건너편의 남체 마을이 계속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길이라고 한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배꼽시계가 점심시간을 알려온다. 궂은 날씨에 바닥이 젖어 점심을 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다. 약간 경사진 언덕길에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아 가져온 점심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허기가 져서 그런지 오믈렛 짜파티가 제법 맛나다. 쪄온 감자도 맛이 그만이다. 감자만 먹으라고 해도 몇 개는 먹어치우겠다.    




본격적인 트레킹을 다시 이어갔다. 이후부터는 경사가 급해진다. 길이 여간 미끄럽지가 않다. 돌에는 이끼가 잔뜩 끼어있다. 작은 도랑을 몇 개 건너고 다시 큰 물을 만났다. 이제 앉아서 신발을 벗고 뭐할 여유가 없다. 젖으면 젖는 대로 그냥 첨벙첨벙 건넌다. 어쩔 수 없다. 그대로 밀고 나가는 수밖에. 제발 더 이상의 큰 물이 나오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빌면서. 그런데...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콰~ 하며 들려오는 소리가 직감적으로 대물이다 싶었다. 급이 다르다. 코너를 돌자 마침내 드러나는 녀석의 정체. 이건 숫제 나이아가라다. 거대하고 웅장한 폭포수가 흘러내리고 있다. 망연자실.  ‘X 됐다.’ ‘저건 안 된다. 무조건 되돌아가야 한다.’ ‘사람 죽일 일 있나.’그러나 돌아가는 일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미 6시간을 넘게 걸어왔으니 돌아가는 것도 6시간 잡으면 컴컴한 밤이 되고 만다. 다시 그 물길들을 건너가는 것도 그렇고. 진퇴양난의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가이드 잠조와 숙의에 들어갔다.    


 

“건너갈 수 있을까? 잠조”“글쎄요. 이번엔 어렵겠어요.”“그럼, 어쩐다지?” “루클라에 전화해서 헬기를 불러야죠. 그런데 전화도 안 터지네요.”물만 노려본다. 다들 넋이 나갔다. 퇴로는 없다. 무조건 앞으로 뚫고 나가야 한다. 잠조가 위로 아래로 길을 찾는다. 뒤에서 비실비실 하던 재일 씨와 김샘은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위험이 닥치자 비로소 에너지가 솟는 모양이다.     


재일 씨가 눈을 번득이며 소리친다. “대장! 저리 건너면 안 될까?”“글쎄 나도 그 자리를 보고 있는데...” 딱 한 군데 목이 좁아지는 곳이 눈에 띄었다. 사실 거기까지 내려서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없는 길을 가시넝쿨을 헤집으며 겨우 뚫어서 계류에 접근했다. 이제 한 명 한 명 물을 건넌다. 가이드 잠조와 포터 라츠가 기민하게 움직이며 손을 잡아주고 도강을 돕는다. 한 순간 삐끗하면 거센 급류에 휘말리고 말 것이다. “오! 신이시여~”    


 


다행히 다들 무사히 계류를 건넜다. 십 년 감수했다. 처절한 콩데 전투를 치르고는 그때까지 버텨주던 등산화가 이제 신발 속까지 모두 젖어버렸다. 어쩔 수 없다. 그냥 그대로 걷는 수밖에. 이제 더 큰 물은 없을 것이라고 잠조가 말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만만치 않은 계류 두세 개를 더 건너야만 했다. 자라에 놀란 가슴 솥뚜껑만 봐도 놀란다고. 멀리서 물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쫄리고 오금이 저려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비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모두 걸음을 멈추고 고어재킷과 우비를 입도록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대장의 말을 무시하고 그냥 전진한다. 다들 기진맥진이고 정신이 없다. 정신 줄을 놓아버린 좀비들처럼 그저 퀭한 눈빛으로 땅만 보고 걷고 있다. “안 됩니다. 이러다가 저체온증 옵니다.” “빨리 비옷 입으세요.” 나중에 변명을 들어보니 ‘이미 젖었는데 비옷 입는다고 무슨 소용이냐.’ ‘올라가서 편평한 곳 나오면 거기서 입으려고 했다.’‘무슨 소리 하는지 안 들렸다.’ 화가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너희들 죽고 싶어” 그제야 발길을 멈추고 주섬주섬 재킷과 비옷을 꺼내 입는다.    


 


바람이 문제였다. 막판 가파른 깔딱 고개를 지나 능선 위에 올라서자 칼바람이 몰아쳤다. 온몸이 젖은 상태에서 바람이 불어대니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해발 4200m의 고지라서 기온 자체도 10도 이하로 떨어져 있는 데다 바람이 부니 체감 온도는 거의 영하권에 가까웠다. 이가 딱딱거리고 손이 저려왔다. 신 단장님이 추위를 견디지 못하시고 벌벌 떨고 계시다. 재일 씨 비옷까지 얻어서 겹쳐 입었는데도 너무 춥다는 것이다. 배낭에서 비니 털모자를 꺼내어 긴급히 머리에 씌어드렸다. 힘내세요. 조금 빨리 걸으세요. 호텔까지 무조건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김 교수님도 안간힘을 쓰고 계시다. 추워서 죽을 것 같다고 하신다. 배낭에서 버프를 꺼내어 목에 감아드렸다. 배낭에 달려있던 버프 하나는 머리 위에 겹쳐서 씌어드렸다. 교수님 입에서 자꾸만 격한 용어들이 쏟아져 나온다. 숨이 안 쉬어지고 앞이 캄캄하고 어지럽다고 하신다. 내 몸을 내가 조정할 수가 없으니 화가 난다고 하신다. 

    

나총도 비실비실 비척거리고 있다. 안 선생님은 말을 잃으셨다. 모두가 탈진 상태다. 재일 씨만 목소리를 높이며 분발하고 있다. 이장님이 의외로 힘을 내신다. 삼일 내내 뒤꽁무니에서 따라오기만도 급급하던 분이 이 날은 맨 앞에 선두에서 치고 나가신다.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약발이 듣는 것이라고 웅성거린다. 가져온 약 중에 비아그라만 빼고 모든 약을 다 먹었으니 약 기운에 펄펄 나는 것이라고.     


이장님은 그렇게 생각했단다. ‘내가 이렇게 추우니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추울까? 내가 호텔에 얼른 가서 물도 데우고 난로에 불을 피우도록 조처해야겠다.’ 이장님의 그 판단이 아주 현명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이장님이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매니저를 불러서 난로에 불부터 피우게 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똘똘한 매니저가 있어 일사불란하게 일을 처리했다고 한다.     



김 교수님은 호텔 문턱을 넘으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급히 방으로 옮겨 젖은 옷을 벗게 하고 핫 샤워를 하게 했다. 호텔 측에서 따뜻한 밀크 티를 내왔다. 지금까지 마셨던 밀크 티 하고는 차원이 다른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어찌나 고소하고 달콤하던지. 밀크 티 두 잔을 연거푸 마셨다. 몸이 따스해지고 심장에 온기가 돌아왔다. “아! 살았다”    


 

그 날 저녁 거실에 둘러앉은 우리는 모두 한 명씩 돌아가며 ‘콩데 전투’의 무용담과 소감을 나누었다. 제일 먼저 대장인 내가 일어나서 허리 숙여 사죄했다. 대원들을 생사의 위험에 빠트린 대장을 마음껏 욕해달라고 했다. 이런 식의 미친 계획은 짜면 안 되는 거였다. 단장님과 교수님은 눈물을 글썽거리신다. 모두의 도움과 배려가 아니었으면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가이드와 포터도 고생이 컸다. 그들에게도 한 마디씩 하게 하고 박수로 격려했다. 모두 수고가 많았다.     


맛있는 디너가 제공되었다. 고급 호텔답게 음식도 격이 달랐다. 애피타이저로 럼주 칵테일이 나오고 이어서 수프와 익힌 채소와 메인 닭요리와 디저트가 순서대로 나왔다. 내가 먹어 본 닭요리 중에 태어나서 제일 맛있게 먹은 닭고기였다. 입맛을 잃은 몇몇 대원들은 한 젓가락도 입에 대지 못했다.


악몽 같았던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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