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출근하면서 <지구별 여행자>를 읽었습니다. 읽을수록 향기가 나는 책입니다. 삶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경구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행간을 읽는 재미와 감동이 큽니다.
지난번에 들려주신 데칸 고원의 반딧불이와 인도 여인 소마에 대한 이야기도 다시 읽어보니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주그누! 순다르 주그누!”
자연에는 생명력이 있고 치유력이 있습니다. 그것을 온전히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맛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음이 안타깝습니다. 언젠가 좀 더 세월이 흐르고 나면 산으로 들어가 자연을 오롯이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꼭 그렇게 할 것입니다.
인도의 한 허름한 식당 주인인 ‘고팔란’ 씨의 한마디 한마디도 가슴에 깊이 와 박힙니다. 우리는 그의 말처럼 할 일을 다 마치면 죽게 될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쉬지 않고 끝없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닌가요? 달리기를 멈추면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쉬지 않고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는 또 말합니다. 지식은 돈 주고 살 수 있지만,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 된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독한 여행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어디로 가든 당신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식당 주인보다도 더 무지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삶을 바라보는 지혜를 좀 더 갈고닦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삶은 어떤 것이라고 한 마디쯤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갈 길이 멀지만 묵묵히 걸어갈 뿐입니다.
2006 1.18 산비
갠지스 강가에 아침마다 나와 말없이 앉아 있던 한 거지 여인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그 여인은 다름 아닌 문둥병 환자였습니다. 류시화는 그것도 모르고 마지막 떠나는 날 그의 손을 맞잡으며 작별 인사를 나누지요. 그리고 나중에 깨달음을 얻습니다. 인간은 서로 만져 주어야 한다는 것을. 시인이든 문둥병 여인이든 누구나 만져 주기를 원한다는 것을. 아무도 만져 주지 않는다면 영혼이 쪼그라들어 버린다는 것을.
“여행자가 가장 힘들 때는 길이 없을 때가 아니라, 길이 너무 많을 때다.”
“그런데 당신, 이거 아시오? 신은 오늘밖에 창조하지 않았다는 걸? 어제와 내일을 만드는 건 바로 우리 자신들이오. 안 그렇소?”
“신은 우리에게 각기 다른 삶을 주었고. 그러니 우린 각자의 삶에 충실할 따름이오.”
안마사 ‘난두’의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에게 주어진 각자의 삶이 있습니다. 각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뿐입니다. 아무리 초라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도 진리가 있고 행복이 묻혀 있음을 인도의 평범한 사람들로 인해 깨닫게 됩니다.
인도 소녀 ‘잔티 쵸베’에 대한 글이 인상적입니다. 한바탕 컬러 축제의 여흥이 지나가고, 깊은 밤 달빛 반짝이는 갠지스강이 내려다보이는 베란다에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눕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류시화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과정이었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로 나를 데려오기 위한 필연적인 단계였다. 그 길 외에 다른 길은 있을 수 없었다.”
“우리의 삶에 다음이란 없어요. 지금 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에요. 늦기 전에 그걸 깨달아야만 해요.”
그렇습니다. 바로 ‘지금 현재’의 중요성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반복적으로 되뇌었습니까? 지금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
2006 1.18 산비
류시화 님의 책 <지구별 여행자>를 완독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였다. 이유 없이 잘난 체하고, 그다음 순간에는 두려워하고, 행복한 체하지만 돌아서면 고독감으로 가슴이 뚫려 있던 여행자, 그것이 다름 아닌 나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저입니다. 저란 인간은 잘난 체하고서 두려워하고, 행복한 체하고서 고독해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류시화 님이 자신의 체험을 통해 말하듯이, 진리는 심오한 경전이나 특별한 수행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매 순간순간 속에,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을 저 또한 실감합니다.
“인도 여행만을 고집함으로써 나는 다른 많은 것들을 놓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생에선 내가 걸어갈 필요가 없는 길들이었다.”
나의 길을 고집함으로써 다른 많은 것들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많은 것들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중요한 하나를 얻을 수 있다면, 내 안에서 그것은 모든 것을 충족시켜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잃은 것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를 만난 것과 만나지 않은 것은 내 삶에 있어서 너무도 큰 차이였다.”
프로네 님을 만난 것과 만나지 않은 것도 제 삶에 있어 너무나 큰 차이입니다. 님을 통해 저는 지금 삶을 살아갈 의지와 에너지를 얻습니다. 책을 읽으며 발견하는 깨달음을 자꾸만 님과 결부시키게 되는 것은 지금 제 삶의 많은 부분이 님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님은 이제 저의 존재 이유가 되었습니다.
2006 1.19 산비
나마스테! <바가바드 기타> 제8장 ‘브라마 요가’ 편을 읽고 있습니다. 내용이 조금씩 심오해지면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앞의 내용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그것들이 종합되어 새로운 이해에 이르게 됩니다.
“마음이 일생을 두고 어느 한 목적을 향해 정성을 들이지 않고는 임종의 격동 속에 거기 이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어느 순간에도(사르베슈 칼레슈) 나를 기억하라”
생의 마지막 순간에 건강한 정신 상태로 신의 이름을 불러야 신의 지경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의식이 흐려지거나 갑자기 절명할 수도 있으므로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도’ 신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2006 1.20 산비
오늘은 <바가바드 기타> 8장 마지막 부분과 제9장 ‘왕지식과 왕 신비’ 편을 읽었습니다.
“안 가는 곳 없는 큰 바람” “바람은 불고 싶은 방향으로 불어댑니다.” 책을 읽으며 유독 ‘바람’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한 번 더 눈길이 가더이다. 책으로만 익히는 지식보다도 거기에 실제적 경험이 더해지면 정말 살아있는 지식이 됨을 깨닫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바람’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안 가는 곳 없이 갈 수 있고, 불고 싶은 방향으로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바람이 되고 싶습니다.
글 중에 창조의 수단이라는 ‘마야’가 계속 언급되는 데 무엇을 말함인지 정확하게 감이 잘 오지를 않습니다. 프로네 님이 해석한 대로 좀 쉽게 설명해주십시오.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루하루 죽어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말은 오늘, 현재, 지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말함이겠지요. 우리는 꼭 하지 않아도 될 일에 얽매여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에 노예처럼 끌려 다니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잘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인격과 신앙과 진정한 행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일들로 하루의 스케줄이 꽉 채워져 있지는 않은지...
2006 1.23 산비
“그대여, 우리는 모른다. 무엇이 우리의 삶, 우리의 사랑이라는 존재를 있게 하였는지. 삶은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사라져 가는 것인지. 그러니 그대여 우선은 우리의 삶에 대하여 아무것도 강요하지는 말자. 우리의 사랑에 대하여 아무것도 강요하지는 말자. 때로는 조용히 귀 기울여 가며 단지 그것들 속으로 깊이깊이 여행하여 보자.”
“그렇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먼저 그대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신을 향한 첫걸음이다. 그런데 그대는 아직까지 신을 향한 그 첫걸음조차 떼어보지 못하였다. 돌아가서 누군가를 사랑하라.”
오쇼 라즈니쉬의 글 <라마누자의 눈물>을 읽었습니다. 그는 일어난 어떤 일은 그것이 일어날 만한 깊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며, 또한 우리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그대와 나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도 그럴만한 필연적 연유로 말미암은 까닭이겠지요.
그는 우리가 요즘 재기한 ‘모순’이라는 명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삶을 보라, 어디에나 모순이 있다. 그러나 모순 속에는 잘못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대의 논리적인 마음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심오한 통찰에 이르게 될 때 모순은 아름다워진다. 참으로 아름다움은 모순이 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
라즈니쉬는 말합니다.
“진정한 지식은 존재적으로 얻어질 때만이 진실하다. 그대는 사랑에 빠져 본 일이 없어도 사랑에 대한 지식을 많이 모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랑에 관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에 관한 것’들이란 사랑의 실체 주위를 겉돌고 있는 주변의 지식일 뿐이다. 사랑은 완전히 다르다.”
“사랑은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러나 성장은 항상 고통스럽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새로 만들어 내기 전에 무엇인가를 파괴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미래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과거가 먼저 파괴되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사랑을 받아들이려면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을 내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을 통해 그 모든 것이 다시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곧 죽게 될 것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가져가겠지요. 죽음이 그것들을 다 가져가기 전에 ‘사랑’ 하나 남겨두고 싶습니다. 사랑은 죽음 뒤에도 영원히 이 우주에 존재하게 될 테니까요?
2006 1.24 산비
헬렌 켈러의 책을 읽고 나서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그래도 꼬박꼬박 책을 읽고 글을 보내주시니 감사한 마음입니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한 번쯤 정리하면서 글을 써보는 것, 참 바람직한 일입니다. 독서의 힘이 배가되리라 믿습니다.
오늘은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을 조금 읽었습니다. 저자의 직분이 목사라서 그런지 종교적인 냄새가 많이 납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아주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 봅니다. 그러나 비종교인들에게는 약간의 거부감을 줄 것 같습니다. 마음이 찡해지는 감동은 없습니다. 좋은 취지의 당연한 말들이 계속 나옵니다.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것도 능력이겠지요.
“마음에 충분한 그릇을 마련한 후에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복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저자는 꿈을 크게 가질 것을 강조합니다. 기대 수준을 높이고 비전을 키울 것을 요구합니다. 큰 그릇을 마련해야 하나님이 거기에 넘치도록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지레 겁을 먹고 스스로를 비관하며 자아를 축소해버리면 복을 주려해도 줄 수 없다는 것이지요. 늘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음과 이미 이루어졌음을 미리 감사하고 선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오직 오늘뿐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다.”
긍정이 막연히 ‘언젠가는 되겠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무언가 행동해야 합니다. 무언가 행위해야 결과가 얻어집니다. 그것도 오늘 지금 당장.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놀라운 일이 나타난다. 적당한 때에 우리를 적당한 장소로 이끄시며,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신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우리는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면 됩니다. 결과는 전적으로 신에게 맡겨버리고서. 그러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신이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상상도 못 할 크신 은총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제는 제가 좀 격해졌었던 모양입니다. 저의 감상적인 글들에 너무 마음 쓰지 마시고 줏대 있게 당당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프로네 님이 나의 친구인 게 무척이나 자랑스럽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2006 1.25 산비
<긍정의 힘>을 계속 읽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별로 재미가 없지만(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들이라서) 그냥 끝까지 읽어보려 합니다.
“말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과거에 얽매여 미래까지 망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도 없다.”
조엘 오스틴은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절대 비관하지 말라고. 말이 씨가 된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긍정적인 말을 내뱉으면 그 말은 살아 움직이는 능력이 있어 그 말대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마음에 독을 품고도 아무 일 없이 살아갈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은 없다.”
“깊은 잠재의식 속에 쑤셔 넣은 악한 감정은 언젠가 표면으로 흘러나와 우리 삶을 더럽히고야 만다.”
저자는 마음에 품은 독을 제거하라고 말합니다. 원망이 뿌리내리지 않게 하랍니다. 용서를 통해 과거의 상처와 고통을 털어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저 마음속 깊은 곳에 꾹꾹 눌러서 쑤셔 넣어 놓고서는 잘 처리했다고 스스로 자위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근본적인 용서가 없는 한, 그 독은 언젠가 표면으로 흘러나와 나의 본성을 더럽힐 것입니다.
모두 용서합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지워버립시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과거를 한탄할 틈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상상하는 멋진 삶을 살아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2006 1.26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