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뒤에 있는 뜻

by 산비


“날지 못하는 것은 운명이지만, 날아오르려 하지 않는 것은 타락이다.”

날아오르고자 함은 ‘목적의식’입니다. 전에도 한번 말씀드렸던 내용입니다. 진리는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열려있지만 대개는 그것을 찾으려는 열심이 없고, 열심은 가지면서도 의혹과 우유부단 때문에 난관에 부딪혀 쉽게 포기해버린다고 했지요.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 스스로에게 ‘우리는 왜 사는 것이며, 삶이란 무엇인지’ 철학적 의문을 갖는 것은 우리가 철이 드는 순간부터 우리에게 번민이 찾아오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그저 먹고 마시고 자면 그뿐이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러한 인간들에게도 필연적으로 번민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이 근본적인 괴로움과 고독과 번민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왜 이런 것이 생기는 것인지,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우리는 부단히 묻고 고민하게니다. 그것이 구도의 길이요, 그것이 바로 깨달음에 이르고자 함이요, 자유로워지고자 함이요, 날아오르고자 함입니다.


오늘은 한가하여 책을 좀 많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점점 힌두의 사상, 크리슈나의 가르침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오늘은 제4장 후반부터 제5장 까지를 읽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제4장을 읽으면서 ‘내버림’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서 콱 박혔었는데, 제5장에서 아예 ‘내버림의 요가’ ‘산야사 요가’ 로 따로 다뤄지고 있어 놀란 마음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오늘 특별히 가슴을 때린 문구들입니다.

“마음을 속으로 당기어 그 밑바닥에까지 이르게 하지 않고는 힘이 날 수 없다. / 이 모든 것이 행위(정신적 신체적 영적 활동)에서 나온 것을 알지어다. 이것을 아는 자는 해탈하리라. / 연잎이 물에 젖지 않는 것은 젖지 않는 성질을 제 속에 길러내어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누가 거기 무슨 칠을 해주어서가 아니다. / 무엇을 조금 알면 독단적이 되고, 조금 더 알면 묻게 되고, 또 조금 더 알면 기도하게 된다.”


요가도 아무나 함부로 할 것이 아니라 준비 훈련을 통과한 사람, 자기 훈련의 기초를 완전히 닦은 사람이라야 요가 기술을 연마할 자격이 있다고 하네요. 좋은 저녁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2006 1.11 산비



하늘에서 무언가 내리고 있습니다. 싸락눈인지. 비인지... 아무튼 기분이 참 좋습니다. 하늘에서 은총이 단비처럼 내려와 나를 감싸 안는 느낌입니다.


오늘은 제6장 ‘진정한 요가’ 편을 중간까지 읽었습니다. 행동의 요가, 내버림의 요가가 신의식의 상태에서 어떻게 합일되어 하나가 되는지 가르쳐줍니다. 거기에 이르는 요가의 기술과 명상의 자세에 대해 말해줍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마음을 모아 명상의 세계에 실제로 한번 빠져 들고 싶은 마음입니다.


책을 읽다가 ‘묵티’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밑에 언급된 단어들의 의미를 잘 음미하며 책을 읽어 보세요.


산야시 / 산칼파 / 무니(muni) / 하다 요가 / 늘(satatam) / 니챠 사마디 /지반 묵티(jivan-mukti)/ 브라마차랴 /


“요가가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우주가 바로 요가 도장이다. 만물이 요기다. 이 병든 문명, 망할 인간에게 약이 있다면 단 한마디 “잠잠하라!” 뿐이다. “


함석헌 님의 일갈입니다. 아주 단호히 꾸짖습니다. “잠잠하라” 어설프게 알고 설치는 인간들에게 내뱉는 성찰의 소리입니다. 쥐뿔도 모르면서 까부는 인간들에게 던지는 채찍의 소리입니다. 바로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아무것도 가지지 마라. / 잊자는 노력은 미워함과 저주함에 뿌리를 박고 있는데... 잊으려고 하는 일이 잊고자 하는 물건을 기억하게 만든다.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잊는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요.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생각나는 것은 무슨 조화인. 나를 잊으라 하는데, 나를 내버리라 하는데, 나를 내려놓으라 하는데, 그것이 왜 그렇게 두려운지요.


2006 1.12 산비



하루 종일 우중충하게 흐려있는 하늘을 흐뭇한 마음으로 즐겼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계속 남아있는 흐림의 여운을 만끽하였습니다. 이런 날이 오히려 정신이 잘 모아지고, 마음도 고요해지고 책이 잘 읽힙니다.


오늘은 제6장 ‘진정한 요가’를 끝까지 마저 읽었습니다. 한 줄 한 줄 읽으며 참 뜻을 파악해 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어떤 추리 소설을 읽을 때보다도 더 흥미진진합니다. 마치 탐정이 단서를 잡아 범인을 추리해나가는 것처럼 머리를 굴려가며 책을 읽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곁들여 있는 예화나 고전들이 시의적절하여 탄성을 지르게 합니다.


여러 가지 요가를 꾸준히 점진적으로 닦음으로 베다를 뛰어넘어 신의식의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감으로써 최고의 요기로 거듭날 것을 가르쳐줍니다. 한 가지 의문은 266쪽에 욕망을 버리라고 하면서 또 ‘욕망의 뒤에 있는 뜻’은 절대적인 것이므로 감히 우리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지 아리송합니다. 프로네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2006 1.13 산비


- 잠든 척하고 있는 사람 -


류시화 님의 책 <지구별 여행자>를 읽으면서 출근하였습니다. 프로네 님이 밑줄 그어놓으신 문구들을 마음속에 되새기며 읽었습니다. 지난번에 보내주신 ‘다음이란 없다’는 취지의 글도 눈에 띄고, <바가바드 기타>에 대한 내용도 있더군요. “사람은 이가 없이 태어나서, 이가 다 빠지면 죽는다.” 는 사두의 어록을 보고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잠든 사람은 깨우기 쉽지만, 잠든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가 없는 법이다.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그는 계속해서 잠든 척하고 있기 때문에 깨울 수가 없다.”


깊은 울림을 주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잠든 척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내면의 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좀 더 진실해져야 함을 깨닫습니다. 류시화 님의 말처럼 사막과 바람과 진리가 들려주는 귓속말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태백산을 다녀왔습니다. 태백산 그곳에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바람을 타고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영혼을 깨워 일으켜 세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웅혼한 바람의 웅웅 거리는 소리가 마치 신의 목소리인 듯 느껴졌습니다. 신비로운 체험이었습니다.


의 삶은 결코 일회적인 것이 아니며, 이생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가 전생에서 영혼끼리 약속을 했기에 만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인연입니다. 간절히 염원하면 다음 생에 다시 만나질 사람들입니다.

당신과 나의 인연도 다음 생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요?


2006 1.16 산비



“좌절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원숭이가 골프공을 떨어뜨린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여행을 계속하시오.”


우리네 삶이란 계획을 아무리 철저히 세워보아도 늘 예기치 못한 사건들로 인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그것을 불평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함을 배웁니다.


오전 내내 어제의 산행을 정리한 답사기를 작성하였고, 오후에는 프로네 님이 전해준 <지구별 여행자>를 계속 읽었습니다.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잔잔한 사건들을 통해 뭔가 하나라도 배우려 애쓰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 사건들을 재미있는 필체로 풀어내는 작가의 필력도 높이 살만 합니다. 어린 모기가 무는 연습을 한다거나, 쥐가 자신의 방을 먼저 점검하고 나왔다고 하는 표현들이 참 재미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킥킥거리게 합니다. 그러나 조금 후 그 안에서 삶과 행복에 대한 진솔한 진리 한 구절을 발견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맛봅니다.


“기도와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시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불평을 한다고 해서 무엇을 얻을 수가 있겠소? 당신이 할 일은 그것으로부터 뭔가를 배우는 일이오.”


드 시타람 여인숙의 주인인 ‘시타람’씨의 설법입니다. 시골에 묻혀 허름한 여인숙을 꾸려가고 있지만 그의 정신세계의 깊이가 범상치 않습니다. 인도 사람은 대개가 다 그러한지...


“어제 죽은 것처럼 오늘을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라”
“고통이란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

살아가면서 새겨들어야 할 문구들이 책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책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이런 류의 책을 정말 좋아합니다. 책을 권해주신 프로네 님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읽겠습니다.


밤이 깊어갑니다. 어제의 밤과 오늘의 밤은 또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매일매일 도시의 밤을 살다가 어쩌다 한번 산속에서 자고 오는 삶보다, 매일매일 산속에서 밤을 보내고 어쩌다 한번 도시에 나와 보는 삶을 동경합니다. 내 마음의 소리입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2006 1.16 산비



小崗 민관식 박사를 아십니까? 국회부의장과 문교부 장관을 지내고 대한 체육회장을 7년간 역임했던 그는 ‘한국 스포츠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며 정치, 스포츠, 남북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어제 88세의 나이로 타계하셨다는 소식입니다. 그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일주일에 한 차례씩 테니스 코트를 찾았으며, 매일 수영과 걷기를 빼놓지 않은 ‘영원한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죽기 전날에도 테니스를 쳤다고 하더군요.
강건한 육체에서 건전한 정신이 잉태합니다. 우리도 팔십 넘어서까지 수영하고 달릴 수 있을 체력을 지금부터 기르도록 합시다.


오후에는 <바가바드 기타> 제 7장 ‘즈나나 비즈나나 요가’ 편을 읽었습니다.


<바가바드 기타>라는 경전이 한 사람에 의하여 쓰여진 것이 아니고, 성경처럼 여러 사람의 글이 모아져서 하나의 경전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체계적으로, 단계적으로 논지를 펼쳐나가고 있어 신기한 생각이 듭니다. 후세의 누군가가 짜깁기하여 일관되게 편집을 하였기 때문일까요?


즈나나(영적 지식, 지혜)만으로는 안되고, 비즈나나(개별적인 지식)까지 갖추어야 참 진리를 터득하고 최고의 자아(parameshvara)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완전에 이르고자 하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 중에서도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발견한 자 중에서도 그 본 대로 움직이며 사는 자는 거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보다 더 치열하게 진리를 추구합시다. 하나의 배움을 얻었으면 그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행동하려는 노력을 기울입시다. 그렇게 점진적으로 하나씩 애써나가면 언젠가는 완전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요? 비록 완전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완전에 가까워질 수는 있으리라 봅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존재 목적입니다.

우리는 함석헌 님의 해설처럼 ‘얼떨이(꼴 없는 꼴)’가 되어서는 안 되고 ‘길날이(옛 비롯을 아는 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2006 1.17 밤의 길목에서,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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