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서 II (271-342p)
“나는 그를 만나면 반가웠고, 헤어지면 그리워했으며, 생각이 나도 볼 수가 없으면 그의 책을 펼쳐 읽음으로써 그를 만나곤 하였다.”
이지가 ‘반사조’를 칭찬하고 그리워하며 하는 말입니다. 권 6 ‘시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은유적 표현들이 흥취를 돋웁니다.
이지가 讀書樂에 대해서 말합니다. “독서란 무엇인가? 나를 많이 만나는 기회, 오롯이 마음과 만나서 혼자 웃고 노래하네. / 마음의 휴식이 바로 책 사이에 있으니, 이 세계가 얼마나 좁고 책 속의 세계가 얼마나 넓던가.”
이지는 자신이 독서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이유를 몇 가지 들고 있습니다. 고희의 나이에도 눈이 밝아 촘촘한 행간을 읽을 수 있으며 잔글씨를 쓸 수 있는 손이 있고, 속인을 만나기 싫어하는 성격과 가족들에 대해 무딘 감정을 타고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제일은 ‘마음의 눈’이 있음입니다.
“천행으로 마음의 눈이 있어 책을 펴면 곧 인간이 보이곤 하였다. 또 그때마다 그 사람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대강은 볼 수가 있었다.”
우리도 마음의 눈을 뜨고 책을 읽어야 하겠습니다. 책을 읽으며 관통하는 맥을 읽어 그 경지가 뼛골을 찌르는 정도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정자현을 위로하며’ 쓴 시가에 장자 ‘소요유’ 편에서 접한 허유가 나오고 있어 반갑습니다. 앎의 즐거움입니다. 떠나간 지기 유동성을 그리워하며
“그대 이제 가면 다시 안 오겠지 / 강가 마을에 늙은 나만 버려졌구나 / 아직도 강남땅 기억이나 하시는지?” 하고 읊조립니다. 평전에서도 보았던 시구입니다. 다시 보니 반갑고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애절해 새삼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책 읽기에 몰입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잡념이 들고 멍해집니다. 일상에 대한 의심이 들어서일까요?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책을 읽고 있는 나의 행위가 못 미더워서일까요? ‘오직 할 뿐’이라는 화두를 다시금 되새겨봅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2006 10.12 당신의 도반 산비
* 분서 II (343-422p)
분서 읽기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끝장을 봐야겠죠! 시가를 읽으며 이지의 흥취를 더불어 느끼려 애써봅니다. 대부분 늙어감을 서러워하고, 친구를 그리워하고, 한 잔술을 목말라하는 내용들입니다.
“꽃망울 막 터지는 데 그대는 예전보다 늙었고
꽃구경하는 이도 심은 사람은 아니로구나”
“높다란 처마에 등불 내걸린 밤
넘치는 흥취로 술잔 빌 틈이 없구나.
옛 친구가 어제 도착했는데
천 리 먼 길에 봄바람까지 몰고 왔네.”
‘시가’ 편을 끝내고 ‘증보’ 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공부에 싫증이 나려고 하던 참에 이지의 글이 채찍이 됩니다. 배움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싫증 내지 않는다.’는 구호만 앞세우면 학문이 미처 익기도 전에 싫증이 절로 따라붙는다는 것입니다. 그리되면 학문을 즐길 수가 없다는군요.
이지가 공부에 싫증 내지 못했던 이유는 生死와 性命에 대한 갈망이 혹독한 굶주림이나 추위를 해결하는 단계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하는 바, 굶주린 사람이 배불리 먹기를 싫어할 수 없고, 추운 사람이 옷 두껍게 껴입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치입니다. 학문에 대해 원초적인 갈망과 갈증을 가져야만 싫증 내지 않고 공부에 매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그러합니까? 정말 진정한 공부란 생사를 걸고 하는 공부가 되어야 하나 봅니다.
추석 연휴 기간 번민이 많으셨던 모양입니다. 흔들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홀로 당당하게 걸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처음에 많이 토론했듯이 줏대를 가지고 홀로 서서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지가 그랬던 것처럼 주위의 어떠한 비방의 소리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면 반드시 마지막 날 승리의 미소를 짓게 될 것을 믿습니다.
2006 10.13 산비
* 분서 II (422-453p)
“만사에는 정해진 운명이 있음을 믿게 되었다. 하루라도 마음이 한가한 날이 있으면 그 하루만큼 이익을 본 것이다.” 몇 개의 편지들을 덧붙인 증보편을 끝으로 분서 읽기를 마쳤습니다.
요즘 들어 정신 집중이 잘 안됩니다. 오늘은 감기약을 먹어서인지 정신이 분산되고, 두뇌 회전이 되지 않아 더욱 애를 먹었습니다. 전에는 책을 읽으면 그대로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내용이 자동적으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행간의 의미를 발견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분서> 마지막 부분은 겨우겨우 읽기에만 급급하였습니다.
앨린슨의 장자도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꾸역꾸역 읽고 있습니다. 도대체 ‘상대주의’란 무엇을 말함입니까? 앨린슨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요? 앨린슨이 말하는 ‘비대칭 상대주의’는 또 무엇인가요? 정말 모르겠습니다. 혹 번역자의 능력 부재로 말이 꼬여있는 게 아닌 가 의심을 하게 됩니다. 사실은 제가 무지하기 때문이겠지만요. 프로네 님의 명쾌한 해설을 좀 부탁드립니다.
문제는 집중력입니다. 책을 읽을 때는 오로지 책에 집중해야 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오만 잡생각을 다 하고 있으니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겠습니까? 다이어트한다고 좀 부실하게 먹었더니 뇌에 포도당 공급이 부족해서 이러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분서>를 모두 마쳤습니다. 오늘 밤에는 이탁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그는 누구인지...
2006 10.16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