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서 II (132-180p)
오늘 읽은 부분의 주 내용은 이지의 일생에 대한 자전적 기록인 <예약>과 이지가 읽고 평점을 단 몇 권의 책에 대한 것입니다.
해는 낮을 밝히지만 땅속까지 밝히지는 못하고, 달은 밤에 세상을 밝히지만 방안까지 밝히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와 달이 비추지 못하는 곳을 이어주는 존재가 바로 ‘등불’이라는 것입니다. 등불 같은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나비 꿈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반갑습니다. 산사에서 울리는 종소리와 북소리의 작용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울리기 전은 사방이 고요하여 아무 소리도 없고 온갖 생각이 모두 가라앉아 있지만, 일단 소리가 울렸다 하면 꿈속에 나비가 되었던 이는 다시 장주로 돌아간다. 이목이 새롭게 뒤바뀌며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죄다 달라지 게 되는 것이다.”
이지도 ‘모든 것이 죄다 달라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변신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내재적인 바뀜이 일어나는 거고 자기 변화가 일어는 것입니다.
이지는 자신은 책을 좋아하니 자신이 직접 교정하고 출판한 책들을 제사상의 우측에 놓아달라고 하명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더라도 중요한 책들은 함부로 빌려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고 있습니다. 이지의 책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는 ‘매담연’과의 사이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도 스승으로 섬기며, 어느 한쪽만 스승인 것이 아니라 피차간에 서로를 스승이라 불렀으니, 이 또한 기이한 일이로구나!”
비록 가르침을 청한 것은 담연이었지만 서로 스승의 예로 대하였다 하니 담연에 대한 이지의 태도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수시로 보고, 수시로 들으면서, 수시로 깨닫고 깨우칠 일이다. 잡스런 배움이 없고 잡스런 일도 없이 하루를 그냥 내버려두면 백날이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면 백날이 그렇게 흘러가고 그러다가 한 겁의 세월이 흘러버립니다. 하루를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비록 잡스러운 배움일지라도 수시로 보고 들으면서 익혀두어야 합니다.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깨우침에 이르게 됨을 믿습니다.
2006 10.10 당신의 문우 산비
* 분서 II (181-271p)
오늘은 조금 한가하여 진도를 많이 나갔습니다. 권 5 <讀史> 편이 주 내용입니다. 이지가 사서들을 읽으며 평을 달아놓은 글입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많은 인물과 고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위나라 무제가 두통으로 앓아누워 있다가 진림의 격문을 읽고서 벌떡 일어나 “이 문장이 내 병을 낫게 하는구나!” 하였답니다. 훌륭한 문장이란 병든 자를 일어서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나 봅니다.
‘반고’가 쓴 <한서>를 두고 이지가 비판하는 글이 매섭습니다. 무릇 역사를 편찬하는 일 정도는 할 수 있겠으나, 전기 뒤편에 논찬을 달고 입론을 하기에는 모자라는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입론을 하게 되면 경전과 사서, 편견을 잡다하게 끼워 넣어 허섭스레기가 되고 만다.” 합니다. 모름지기 논찬이란 전대미문의 독자적 견해를 갖추어야 하니, 한낱 보잘것없는 글재주만 지닌 자가 덤벼들 수 있는 바가 아니라고 일갈하고 있습니다.
이지 스스로 말하기를 “하늘이 어찌하여 나를 이처럼 불길한 존재로 태어나게 하셨을꼬!” 하며 자책합니다. 젊어서부터 늙어까지 상황에 근거하여 일의 판세를 따지곤 했는데, 한 사람도 의견이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지의 생각이 참으로 남다르고 독창적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세 번 성찰하고 행동한 계문자’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삼고’에 대한 해석이 구구합니다.
“두 번 생각도 못하는 판국에 어떻게 세 번씩이나 생각하란 말인가?”
“생각이 세 번째에 이르면 사심이 발동하여 도리어 미혹당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은 잘못된 것이라고 탁오는 비판합니다. 생각해도 어떤 결론에 합치되지 않으면 밤을 새워서 해가 뜰 때까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자들이 천 번 만 번 생각함으로써 ‘신사’라는 두 글자의 뜻을 깨우칠 수 있다면, 사색이란 바로 ‘성인에 이르는 길’이라 말할 수 있다 합니다.
오늘 ‘고전학교’에서는 많은 배움이 있으셨는지요? 허리가 조금 좋지 않아 오늘 마라톤 연습은 그냥 산보 정도로 끝내려고 합니다. 그럼.
2006 10.11 산비
천변이 온통 갈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갈색입니다. 푸르렀던 여름날의 자취는 이제 모두 사라졌습니다. 오직 갈색이 있을 뿐입니다. 코스모스도 예쁜 꽃잎이 다 떨어지고 갈색의 대만 남았습니다. 들판의 풀들도 모두 누렇게 변했습니다. 갈색이 세력을 키우며 그 점령 범위를 점점 확장해나갑니다. 그렇게 가을이 깊어갑니다.
갈색은 가을색입니다. 밝은 갈색부터 붉은 갈색, 누런 갈색, 거무튀튀한 갈색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추었습니다. 갈색은 우리 전통의 색입니다. 한민족의 한이 배어있는 색입니다. 가을의 정취가 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가을색, 갈색인가 봅니다.
이 아침,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옵니다. 삶은 그렇게 서럽고 슬픈 것인가요? 슬픔이 찾아오는 것은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습니다. 허나 슬픔에 눈물만 흘리고 있지는 않겠습니다. 슬픔을 지렛대 삼아 꿋꿋하게 주먹 쥐고 일어서겠습니다. 슬픔을 딛고 일어선 환희는 더욱 값진 것이니까요.
일본의 동화작가 고미 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마음이란 산란해지기 위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란해지지 않는 마음은 이미 마음이 아닙니다.”
마음 심(心) 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획들이 각각 떨어져 있는 데 이것은 즉, 마음이란 원래 산만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 말라는 것은 마음을 갖지 말라는 뜻이며, 깜짝 놀라고, 두근거리고, 용기 없이 우물쭈물하는 등의 인간적인 감정을 갖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때로는 심란해지고 산만해지는 것이 인간 본래의 마음입니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요. 어떻게 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그렇게 살아갑니다.
지금 하시는 일들에 짓눌리지 마시고, 차근차근 하나하나 마무리 지어 나가시면 반드시 좋은 결실을 보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럼.
2006 10.12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