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좀 어떠신지요? 벌써 시월이네요. 마지막 분기의 시작입니다. 왠지 금방 겨울이 오고, 세밑이 되어 2006년이 곧 끝나버릴 것 같은 기분입니다.
사람의 심리는 마치 양팔 저울과 같아서 두 가지 생각이 오르락내리락 평형을 맞추기 어려울 때 어느 한쪽이든 아주 조금이라도 많아지기만 하면 저울은 그쪽으로 쏠려버린다고 합니다. 우리 실제 생활에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늘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지만 그것을 결정짓도록 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이유 하나 때문이거나, 작은 마음의 끌림일 경우가 많습니다.
‘역경’이 과연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입니다. 그 옛날 주의 문왕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길래 그렇게도 심오한 책을 엮을 수 있었을까요? 공자도 나중엔 ‘역경’에 천착했었다지요. 이지도 어려서부터 경서중의 으뜸이라고 하는 ‘역경’을 연구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경서에 대해서는 읽어나가면서 해석을 달고 평점을 달았던 이지도 역경에 대해서만은 감히 뜻을 쉽게 펼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나이 칠십이 다 돼서야 비로소 다시 공부에 들어갑니다. 지기인 초횡과 방시화, 마봉양과 모여서 매일 밤늦게까지 역경을 읽고 괘를 논합니다. 그렇게 해서 2년여를 연구하고 토론하여 새로운 심득을 얻을 때마다 기록한 것이 바로 <역인>이라는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이들이 모여서 공부할 때 얼마나 재미있었을까요? 신나게 토론하고 핏대를 올리고 하였겠지요. 흉중에 맺힌 것을 확 풀어놓는 통쾌함이 있었을 테지요. 역시 깊은 공부는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도반이 있어야 함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나의 도반은 질문을 해도 묵묵부답이니...
2006 10.2 산비
* 분서 II (72-100p)
오늘은 지치고 힘든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틈틈이 짬을 내어 ‘용맹정진’하는 마음으로 책을 몇 쪽 읽어냈습니다.
“곧이 곧대로의 방식으로 원한을 갚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밉살스러워 내칠 만하다면 그를 미워하고 내치는 방식으로 갚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사랑스러워 곁에 둘 만하다면 그를 사랑하고 곁에 두는 방식으로 보답한다.”
“만약 ‘원수를 덕으로 갚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고의요 위선이니, 성인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가르침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가식이고 위선이라는 것입니다. 미움은 미움으로, 사랑은 사랑으로 곧이곧대로 대응하는 것이 군자이며, 이지도 스스로 그렇게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 들으면 너무 냉혹한 태도인 것 같기도 하고, 좀 더 차원 높게 받아들인다면 그것이야말로 정의롭고 합리적인 대응 방식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프로네 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다만 이지가 늘어놓는 약간의 변명은 “그 사람에 대해서 미세한 곳까지 확실히 살피지 않았으면 감히 미움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며, “만약 그가 눈에 들어 더 이상의 의심이 없어진다면 내 마음은 죽을 때까지도 변하지 않는다.” 함입니다.
평전도 이제 거의 다 읽어갑니다. ‘제8장 마성에서 쫓겨나다’에 들어섰습니다. 이지의 생애가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이지가 어떻게 될까? 스릴이 있습니다. 목숨이 점점 위태로워집니다. 조마조마합니다. 긴장감이 더해 갑니다. 오늘, 내일 마저 읽고 평전은 끝내려고 합니다.
2006 10.2 산비
연휴 다음의 월요일이라 무척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잠도 부족한 상태이지만 괴로울 정도는 아닙니다. 오전엔 밀린 신문을 주마간산 격으로 훑어보고, 오후에 틈을 내어 분서를 조금 읽었습니다.
오늘 읽은 부분은 주로 불교 경전에 대한 이야기들과 여성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관음문’이 주 내용입니다. 불교에 대한 용어라든지 개념들을 조금씩 배워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삶은 리듬이고 흐름입니다.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면 막힘이 있고 와류가 발생합니다. 추석 연휴가 변수가 되어 조금 흐트러짐이 있었습니다. 삶의 리듬을 빨리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프로네 님도 예의 명랑성과 발랄한 에너지를 어서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편안한 휴식의 밤 되십시오.
2006 10.9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