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성 없는 연대의 붕괴
길가메시와 엔키두의 짧은 반항의 기억 아래에는 더 오래된, 그리고 더 끈질긴 '피동성'의 뿌리가 도사리고 있다. 길가메시가 되찾으려 했던 주체성의 궤적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는 스스로 시스템의 노예가 되기를 자처한 인류의 원형, 에덴의 기록이 놓여 있다.
에덴의 금기를 깨뜨린 직후, 신 앞에 선 아담은 비겁하게 외쳤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길래 제가 먹었습니다." (창세기 3,12)
그 대답에는 ‘나’가 없었다. 말은 길었지만 그 문장 안에서 그는 끝내 주어가 되지 않았다.
신은 아담과 하와에게 각각 판결을 내렸다.
"내가 너의 임신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너는 괴로움 속에 자식들을 낳으리라.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를 다스리리라."
(창세기 3,16)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지면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생하며 땅에서 얻어먹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창세기 3,17-19 요약)
아담은 본래 신으로부터 주체적인 관리의 권한을 부여받은 존재였다.
세상의 질서를 정의하고 이름 붙이는 책임, 생명을 돌보는 권한은 그의 주체성에 의해 행사되었다.
그러나 그는 "신이 보낸 여자가 시켜서 먹었다"며 자신의 판단을 포기했고 그 결과, 땅은 더 이상 순응하지 않고 척박해졌다.
아담은 이제 땅을 달래지 않고는 얻어먹을 수 없는 현실에 떨어진 것이다.
신은 처음의 경고와 달리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대신 서로를 바라보게 했다. 갈망하되 다스리고, 다스리되 완전히 가질 수 없는 관계. 그들 사이에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만을 남겼다.
아담은 열심히 땅을 일구었으며 하와는 "카인'과 '아벨', 그리고 '셋'을 낳았다. 신의 벌에 대하여 불평할 힘도, 사유할 여력도 없는 피동자의 상태에서 성실히 형벌을 수행했다. 하와는 카인을 얻고 "내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사내아이를 얻었다"라고 말했다. 그 문장 안에는 스스로의 판단을 원인으로 세우지 않는 태도가 스며 있다. 아담과 마찬가지로 '나'가 없었다.
아담과 하와가 상실한 것은 도덕이 아니라 서로의 옆에 서는 '나'였다. 에덴에서 이름을 붙이던 손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주어진 일을 탈 없이 끝내는 노동뿐이었다. 질문을 할 자가 사라지자 신의 질문도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광야에 홀로 남겨졌다.
고립된 광야에서 태어난 다음 세대에게, 부모의 비겁한 순응은 유일한 생존 매뉴얼이 되었다. 주체적으로 이름을 붙이고 질서를 정의하던 에덴의 기억이 거세된 자리에는, 오직 시스템이 부과한 과업을 탈 없이 수행해야 한다는 강박만이 뿌리를 내렸다.
아담이 내던진 주체성의 잔해는 카인의 손에 들린 농기구가 되었다. 그는 그렇게 '사유 없는 성실'이라는 매뉴얼 속으로 조용히 매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