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성벽 1

정의가 단두대가 될 때

by 떨뇌지

연대는 언제 구조가 되는가: 사유의 외주화


우리는 홀로 존재할 수 없기에 끊임없이 '우리'를 갈망한다. 그러나 주체적 판단이 유보된 개인들이 결속할 때, 그 '우리'는 해방이 아니라 또 다른 감시망으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왜 이 과정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이 자연스러움의 비밀은 시스템이 사유의 비용을 대신 지불해 주는 방식에 있다. 시스템은 사유가 일으키는 내적 혼란스러움을 매뉴얼에 이양하여 개인을 포섭한다. 그 안에서 '연대감'은 질문을 중단하게 만드는 가장 효율적인 안전장치가 된다. 동일한 언어를 반복하며 확인하는 소속감, 타인을 규정함으로써 얻는 안도감. 우리는 이를 연대라고 부르지만, 그 실상은 사유를 외주 준 이들의 '집단적 방기'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이데올로기는 주체적 판단을 대체하는 배급된 매뉴얼이 된다.


길가메시와 엔키두가 신의 설계에 균열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날것의 결핍들이 맞물린 주체적 반항이었기 때문이다. 사상이 개인의 결핍에 응답하는 도구일 때 그것은 해방의 에너지가 되지만,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성벽이 되는 순간 그것은 타자를 검증하고 배제하는 '식별 장치'로 변질된다.


프랑스혁명: 인권의 요람에서 단두대의 광기로


프랑스혁명은 인간이 신과 왕의 질서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판단의 주체로 선포한 찬란한 사건이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구호는 초기 시민들에게 사유의 산물이었으나, 혁명이 지속되며 이 구호들은 점차 판별의 '지표'로 정제되었다. 누가 혁명적 인간인가를 가늠하는 기준은 개인의 내적 판단이 아닌 공적 '덕성(Virtue)'이라는 지표로 재배치되었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시작된 지점은 바로 이 '도덕적 나르시시즘'이 사유를 대체했을 때였다. 사상은 더 이상 질문의 도구가 아니라 타인을 처단하는 단두대의 칼날이 되었다.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허용되는 말은 줄어들었다. 개인은 사유하기보다 자신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생존 게임'에 내던져졌다.


단두대 앞의 군중은 스스로를 가해자로 인식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혁명이라는 시스템의 매뉴얼'을 성실히 집행하는 밀그램 실험의 피실험자들과 같았다. 처형은 절차의 일부였고, 책임은 구조 속으로 휘발되었다. 인권의 이름으로 세워진 단두대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이 평범한 개인들이었다는 사실은, 판단이 거세된 연대가 도달하는 필연적인 비극을 보여준다.


소속이라는 이름의 죄수복


프랑스혁명에서 공포정치가 시작된 지점은 '옳음'이 '사람'을 대체했을 때였다. 혁명은 더 이상 주체 탄생의 장이 아니라, 성실한 이행자들이 작동시키는 또 다른 '체제'가 되었다. 사상은 질문의 도구가 아니라 판별의 기준으로 기능했고, 연대는 서로를 지키는 연결이 아니라 서로를 감시하는 구조로 변질되었다. 혁명이 변질된 것은 그들의 이상이 거짓이어서가 아니라, 그 이상이 판단을 대체하는 기준으로 고정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리’라는 성벽 안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순간, 연대는 외부를 향한 환대가 아니라 내부를 결속하기 위한 검문소가 된다. 프랑스혁명의 광장은 사유를 멈춘 자들이 서로의 '혁명성'을 증명하기 위해 타인의 목을 내던졌던 거대한 감옥으로 변했다.


그곳에서 연대는 거창한 사상의 공유가 아니라, 오직 단두대의 칼날을 기준으로 '성벽 안에 머물 주체'와 '성벽 밖으로 내던져질 타자'를 명확히 가르는 냉혹한 선별 작업이었다. 성벽이 높을수록 개인은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요구하는 규격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거세하게 된다. 단두대는 사라졌지만, 사유를 멈춘 연대가 쌓아 올린 성벽은 형태와 이름만 바꾼 채 지금도 우리 각자의 주체성을 단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