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서
송구영신으로 오랜만에 미용실을 찾았다. 머리도 다듬고 앞머리도 내려 변화를 주면 새해엔 좀 더 근사한 내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어젯밤 급히 예약하여 오늘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빛나고 있는 새하얀 로비엔 재즈풍의 캐럴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Walking In A Winter Wonderland’와
‘It’s Beginning To Look a Lot Like Christmas.‘ 같은 익숙한 곡들.
어떤 편곡으로 들어도 이 겨울에는 다 잘 어울리는 배경음악이다.
스웨이드 재질의 푹신한 대기석에 앉아 허밍을 하며 순서를 기다렸다. 찬송가도 아닌 캐럴은 언제부터 이렇게 우리 일상에 녹아들었을까.
캐럴(Carol)의 유래는 프랑스어 ‘카롤‘(Carole)’에서 왔다고 한다. 본래 야외에서 기쁨을 표현하며 부르던 노래였지만, 오늘날에는 성탄절 음악으로 익숙하다.
그러니 내가 정한 캐럴 즉, ‘봄 캐럴(ex. 벚꽃엔딩 – 장범준)’, ‘여름 캐럴(ex. 해변의 여인- COOL)’, ‘가을 캐럴(ex.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 김동규)’ 등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벚꽃이 흩날릴 때 듣는 노래나 해변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도 그 계절만의 캐럴이니까.
곧 내 이름이 불렸고, 핸드폰은 거울 앞 탁자에 반납했다. 늘 어색한 커트보에 둘러싸이고 손발이 묶이자 캐럴은 더 크게 들려왔다. 이제는 머릿속으로만 따라 부른다.
사실 크리스마스는 그저께였다.
올해도 이제 정말 며칠 남지 않았다. 문득 캐럴은 언제까지 불러도 괜찮을까?
12월 한정 시즌송이라면 31일까지 유예기간이다. 하지만 캐럴은 나에게 '수능 금지곡' 같은 존재다. 한 번 들으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한 달 전 트리를 설치한 이후로 캐럴은 내 머릿속에서 멈추지 않고 있으니.
그새 마무리가 된 머리 스타일은 대충 마음에 들었다. 미용사는 오늘 어디 가느냐고 묻더니 결제를 도와준다고 했다. “고객님, 안녕히 가세요!”
매번 익숙해지지 않는 극존칭 인사에 반사적으로 끄덕이고, 눈을 못 두는 어색함을 벗어나려 서둘러 문을 나섰다. 차에 올라 시동을 켜자 아까 듣던 캐럴이 나를 반겨준다.
‘Rockin Around The Christmas Tree‘
볼륨을 두 단 높이자, 어깨가 리듬에 꼼지락대고 미용실에서 얌전하게 참아왔던 흥에도 시동이 걸렸다.
결국, 한풀이 열창으로 운전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신호 대기 중 옆 차 운전자가 나를 보는 듯 했다. 노랫소리가 차창 밖으로 흘러나갔을까 순간 자세도 볼륨도 낮췄지만 늦은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어쩌면 저 사람도 나와 같은 캐롤을 듣고 있어 나를 이해해 줄 것 같다.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캐럴은 지나가는 계절과 다가오는 새해를 이어주는 선율같아 당분간 이 멜로디들을 놓아주지 못하겠다.
아직 눈이 펑펑 내리지 않았고 세상이 하얗게 변하지 않았으니. 1월과 2월의 캐럴도 결코 철 지난 멜로디가 아닐 것이다. 트리도 캐럴도, 어쩌면 그때가 더 어울릴지 모른다.
계절이 바뀌어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면, 그 또한 괜찮다. 금지곡이 아니니까 자유롭게 부르다가 절로 멈출 때까지 즐겨야지.
그러니 유쾌하게 캐럴을 부르며, 설렘과 기대 속에서 기분 좋은 새해를 맞이하겠다.
[가요 캐럴] 한시간 듣기 살포시 내밀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