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의 개들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나면, 시간은 비행기 엔진을 달았는지 빨리도 지나간다.
모처럼 만의 여행이 임박해 오자 타국의 경로를 익혀 둘 겸 구글 지도로 들어갔다.
스트리트뷰 화살표를 클릭해 숙소 주변과 음식점 구경을 미리 나섰는데, 도로 위를 지나가는 개 한 마리도 보였다.
원래 종이 작은 건지, 그 나라 사람들의 작은 체구를 닮은 것 같았다.
Google earth는 사람의 얼굴은 블러 처리하는데, 개의 얼굴은 그대로 두는구나.
견권이라는 단어를 잠시 생각하곤, 검지손가락으로 무심히 넘겼다.
산미구엘의 나라에 도착했다.
이국의 바람은 반팔 위 살갗을 타고 지나갔다. 소름 돋는 묘한 기분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럴 때일수록 집중. 빼곡히 써 온 여행족보를 구겨 쥐며 경로를 훑었다.
자그마한 필리피노는 능숙한 한국어로 말을 걸어오고, 그 틈새로 오토바이 소음에 귓속이 소란하다.
오차 없는 이동으로 숙소에 짐을 던져고, 소라가 엮어진 팔찌를 손목에 차고 필리핀 거리로 나가본다.
사방으로 이어지는 무단횡단에 익숙해질 때쯤이었다.
걷는 곳마다 거리의 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상점 앞, 택시 정류장, 대형 쇼핑몰 주변까지도 세부 시티의 거리에는 목줄 없는 개들이 있었다.
몇 발자국마다 또 다른 개들과 마주치는 일은 나의 계획에는 없던 것.
낯선 거리보다 더 당황스러웠다.
쇼핑몰 입구에는 배가 불룩하게 부풀어 있는 무거운 몸의 개와 그 곁을 지키는 웅크린 수컷이 있었다.
아마 가족일 거라 생각이 들었지만 다가가 손을 보탤 상황은 아니었다.
스콜을 피해 탄 시원한 그랩 택시의 유리창에 빗물이 흘렀다. 빗물 너머 젖어가던 개와 눈이 마주쳤다.
필리핀에서는 이 아이들을 아스칼이라 부른다고 한다.
‘Askal’은 필리핀어 ‘asong kalye’의 줄임말로, ‘거리의 개’라는 뜻이다.
특정 품종이 아니라 시고르자브종처럼 잡종이지만, 도시라는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은 강인한 아이들이라고 한다. 기후에 맞는 짧은 털, 작은 체구, 개체마다 모습은 달라도 우울한 눈빛만큼은 놀랍도록 비슷했다.
세부 시티도 이런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다. 건강한 개들을 잡아 중성화 수술과 예방접종을 한 뒤 다시 원래의 장소에 풀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무분별한 안락사를 막으면서 개체 수도 줄여나가는 방식이다.
아스칼은 ‘국민 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불쌍하고 더럽다는 시선이 있었던 자리에, 오랜 세월 사람 곁에서 살아온 동반자라는 말이 들어섰다.
우리나라도 비슷했다.
7, 80년대엔 개장수가 골목을 누비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동물병원과 펫샵이 들어섰다.
개는 반려견이 됐고, 길거리에 주인 없는 강아지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필리핀도 지금 그 길위에 있을 것이다. 아스칼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만으로도, 이미 시작은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