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프다. 정말 정말 배가 너무 고프다. 어제(월요일)저녁 8시에 혼자 마지막 식사를 했으니, 12시간 이상 지속되는 공복 상태에 마음이 울적해지려고 한다.
금식 전 마지막 식사이므로 혼자 고기를 구워서, 야무지게 쌈까지 싸서 먹었다. 그런데 금식을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헛헛해져 빵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9시 넘어서 회식을 하고 돌아온 엄마 품에는 떡하니 커다란 빵 봉투가 들려있다. 헛헛한 마음을 채우라는 계시가 분명하다. 과일 생크림 빵을 꺼내어 뜯어먹어버렸다. 생크림이 참 느끼하고 고소하다. 행복의 맛. 금식을 앞둔 환자의 양심상 딱 덩어리의 반만 먹었다. 내가 마저 다 먹고 싶은 마음을 담아 나머지 반은 옆에 있는 동생 입에 쑤셔 넣어주었다.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반포동에 있는 가톨릭대 병원에 왔다.
예약은 오전 10시. 9시 반도 되지 않아 응급실 앞에 도착해서 문진표를 작성한다. 또 잡혔다. 겉 보기에 멀쩡한데 왜 응급실 앞에서 문진표를 작성하냐는 의심스러운 직원의 눈빛. "혈관 시술받으러 와서, 응급실 통해서 가야 해요." 아주 분명하고 또박또박한 말투로, 단호한 눈빛으로 그에게 말을 했다. 환자라는 걸 알고 나서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 혈압계까지 쫓아와서 측정 버튼을 눌러주고 응급실 입구로 들여보내 주었다. '그래, 그대도 놀랐겠지. 그러나 총각, 포장지만 멀쩡하다우. 속은 썩었어.'
접수를 하고, 응급실에서 쓸데없이 시간을 10분째 죽이고 있다. 시술을 받으러 왔으니 얼른 중재 클리닉으로 가고 싶은데 계속 대기만 하게 해서 답답하다. 기다리다가 간호사 데스크에 날 좀 풀어주지 않겠냐고 말을 한 참인데, 멀리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중재 신장학 클리닉 지영 쌤이다. 나를 데리러 오셨나 보다. 야호.
열흘 전쯤부터 왼쪽 팔이 퉁퉁 부었다. 팔뚝 안 쪽이 어디에 부딪히거나 스치지 않았는데도 지속적으로 아팠다. 악 소리가 날 것 같았으나 참고 주말을 보냈다. 그리고 새로운 주가 되어 병원에 갔더니 투석기를 돌리는데는 문제가 없었고, 아마 팔 안 쪽 어딘가의 혈관이 살짝 터진 것 같다고 했다. 지혈은 잘 되니까,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니 진통제를 먹으며 며칠 두고 보자고 해서 안심했다.
사나흘쯤 지나니까 붓기도 살짝 가라앉고, 통증도 덜해졌다. 만지면 아팠다. 또 거기서 이틀쯤 지나니 이제 만져도 통증이 없었다. 다른 투석 환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는 투석 초기부터 왼쪽 팔과 오른쪽 팔의 팔뚝 두께가 달랐다. 투석을 하는 왼쪽 팔이, 자유로운 오른쪽 팔보다 6cm가량 굵다. 늘 부어있는 팔에 익숙한 채로 살아가는 셈이다. 그러니 팔이 좀 부어도, 병원에서 괜찮다고 하면 그냥 믿어버린다.
월요일 아침, 원장님이 회진을 왔다. 왼쪽 팔 청진을 해보더니 혈관 소리가 시원찮단다. 예전의 수 선생님이 내 귀에 청진기를 꽂아서 동정맥루 소리를 들려준 적이 있는데, 이게 혈관에 이상이 생기면 피융-하고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그런 소리가 난다.(청진기가 없이 이 소리를 듣는 방법도 있는데, 잘 때 어린이 베개를 끌어안고 자면 된다. 어린이 베개를 끌어안고 볼을 살포시 대면 귀에 쇽쇽-하는 혈관 소리가 들린다. 한 때는 그게 내 자장가였다.) 아마 월요일 아침에 원장님 귀에도 피융-하고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나 보다.
"많이 부었었기 때문에 안 그래도 걱정이 됐는데, 혈관 소리가 안 좋네요. 대학병원에 가보는 게 낫겠어요."
우리 병원에서 일단 중재 클리닉 선생님한테 연락을 하니, 선생님이 나에게 직접 연락을 하셨다. 세부사항은 늘 우리끼리 정한다.
"정연씨, 화요일에 교수님이 종일 시술하시고 어시스트도 다 있어요. 그러니 그냥 내일 바로 만나죠! 예쁘게 하고 와요, 정연씨~"
데이트 약속을 잡는 것만 같다.
8년의 투병 생활 중, 가장 초기의 1년 반은 아무 일이 없었다. 그리고 중간에 2년 정도의 시간도 기적적으로 시술 한 번 없이 지나갔다. 나머지 5년 동안은 몇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갔던 중재 클리닉. K 교수님도, 시술 방 최고참 간호사 O 선생님도 이미 8년 넘게 만나오고 있는 사이. 그리고 중재 클리닉 모든 스케줄을 관리하는 지영 쌤과 무척 친해서, 사실 시술을 받으러 가는 게 아니라 놀러 가는 마음으로 가곤 한다. 그러나 팔에 구멍 내러 가는 일이 긴장되지 않는 건 절대 아니다.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일찍 누워서 잠을 청했는데도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두 시가 넘도록 뒤척였다.
응급실에서 받아 든 수술복을 가지고, 응급실을 가로질러 신장 중재 클리닉으로 간다. 여기서 제일 처음 카테터 관을 가슴에 박았더랬다. 투석 관련 시술이 모두 이루어지는 곳. 바깥보다 현저히 낮은 온도의 방으로 들어갔던 처음의 그 날은 정신없이 긴장됐었다.
팔에 구멍을 살짝 내서 혈관 조영제를 투여하니까, 수면 유도제도 필요하다. 언제나 보호자가 함께 했어야 했던 시술. 그랬던 걸 지난해 말부터 혼자 다니고 있다.
그 전에는 어찌어찌 엄마나 동생 중 한 사람이 따라가서 수발을 들어주었지만, 지난해 12월에 갑자기 잡힌 시술에는 그 누구도 따라 올 형편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 저 혼자 가면 안 되나요?" 입술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더니 가벼운 톤으로 선생님이 말한다. "정연씨니까, 혼자 오셔도 될 거 같아요!"
반드시 누군가가 함께 가 주어야만 했던, 그래서 스스로가 너무도 쓸모없게 느껴졌던 날들. 조영제를 투여해도, 수면유도제가 들어가도 한 시간 혹은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시술 후 나는 비교적 늘 또렷하게 깨어났었다. 물론 그렇지 않았던 때도 있지만. 혼자서 갈 수 있을 것 같았고, 12월에도 그리고 올해 4월에도 나는 혼자 그 모든 과정을 해냈다. 나는 스스로의 보호자가 되었고, 모든 과정을 이겨냈다. 물론 수술복 등에 붙은 끈은 선생님이 모두 묶어서 여며주었지만 나는 그 모든 순간 대체로 나의 훌륭한 보호자였다고 생각한다.
신장 중재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인공신장실 환자들이 쓰는 탈의실로 들어간다. 신장 중재 클리닉에 방문하는 환자들을 위한 사물함이 따로 있다. 익숙하게 사물함에 소지품을 넣어두고, 수술복 상의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중재 클리닉 몇 걸음 전에 있는 사무실에서 선생님과 담소도 나누고, 오른 손등에 바늘을 꽂는다. 이제 여기로 수면유도제가 들어가겠지. 아픈 바늘인데, 좋아하는 사람이 꽂아주면 안 아프다. 드라마에도 케미가 맞는 남녀 주인공이 있듯이, 간호사 선생님 중에도 나의 여자 주인공들이 몇 분 계신다. 지영쌤이 바늘을 찔러주시고, 우리는 끊임없이 담소를 나눈다.
바늘이 아프지 않았다. 여기로 수면유도제가 들어간다.
'우리 언제 밥 한 번 먹어요~'하는 식의 말을 사람들은 무척 많이 한다. 지영쌤과 나 사이에도 그런 말이 벌써 오간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심인지, 인사인지 나는 판별해낼 길이 없다. 진심이라고 믿고 싶지만, 인사일 수도 있고 인사라고 생각했으나 진심인 경우도 있겠지.
대체로 진심이라고 믿고 싶었으나 인사인 경우가 많았다, 내 경험상. 나는 사실 빈말을 하지 않는 편이어서, 진심이 아니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영쌤이 대번에 말한다. "나는 마음에 없는 말 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아, 저도요." 이러면 우리 사이에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어진다. 두려울 수밖에 없는 시술 앞에 나는 긴장이 풀렸다.
지난번에도 시술 동의서를 받았던 P 선생님이,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타나 떡 하니 앉아 있었다. 무거워 보이는 패드를 들고 낑낑대고 있다.
"어라, 선생님. 지난번에는 종이에다가 사인받으셨잖아요?"
"아, 이거 바뀐 지 얼마 안 됐어요. 접속이 안돼서... 나 이 기계 너무 싫어요."
의사 선생님들 중에 의외로 2G 이용자가 많다며 지영쌤이 웃으며 말했다. 옆에 복막투석실까지 가서 패드를 바꿔오고서야 P 선생님은 시술 동의서 프로그램에 접속할 수 있었다. 터치펜으로 하는 싸인은 정말 이상한 줄 긋기 밖에 되지 않는다. 감도가 엉망이다. 사인을 하고, 교수실에 계신 교수님과 통화가 되었다.
나는 이제 당당하게 내 발로 걸어서 시술실로 들어간다.
시술실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무대에 오른다. 무대에 올라서 똑바로 눕는다. 누우면 유능한 스텝들이 단장을 해주신다. 일단 낮은 시술실 온도를 견딜 수 있도록 분홍색 이불을 잘 덮어주시고, 다리도 묶어주신다. 내가 무대를 이탈하지 않도록. 그리고 수술복 뒤에 끈을 끌러서 왼팔을 어여쁘게 까 주신다. 왼팔을 잘 받치고 있어 줄 비장의 무기, 나무판자도 덧대어 준다. 머리는 잔머리가 삐져나오지 않도록, 모자를 씌워주신다. 그러고 있으면 지휘자 등장. 교수님은 늘 음악을 틀고 나한테 구멍을 내시는데, 음악적 취향이 대체적으로 잘 맞는 편이다. 근데 전에는 Maroon5 음악을 들으시더니, 오늘은 이상하게 한국어로 된 가사가 나온다. 그 사이 취향이 바뀌셨나. 내가 아는 한은 늘 팝송이셨는데. 누워있는 입장에서는 가사가 모호하게 들리는 팝송이 편하다. 물론 한국어 가사라고 들리는 건 아니지만.
평소에는 늘 무대 오른편에 있는 시계도 보고, 조영제가 투여되는 광경을 모니터링하며 내 혈관의 어느 지점이 좁아졌나를 본다. 그 모든 걸 볼 수 있게끔 중재실 시술 담당 O 선생님은 늘 수술보로 덮인 내 얼굴을 적절히 까 주신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다. 교수님이 들어오신 순간부터 음악이 잘 들리지 않는다. 이상하게 나른한 느낌이 든다. 교수님이 증상을 물어보신다. 열흘 전부터 있었던 증상에 대해 또렷하게 말하려고 하는데 혀가 꼬이는 느낌이다. 교수님이 나를 보고 싱긋 눈웃음을 크게 짓는다. 지금까지 중에 가장 환하게 웃는다. 나도 교수님을 따라서 반달눈을 만들었다. 그러더니 오른 손등 위로 엄청나게 차가운 것이 쭈욱 하고 밀려 들어온다. 오늘은 니들을 뭘 쓰시는지(커다란 꼬챙이 같은 걸로 혈관을 쑤신다. 당사자라 직접 그 광경을 보지 못했지만.), 벌룬(스테인리스로 된 벌룬을 넣어서 혈관에 펌핑질을 해서 좁아진 혈관을 확장시킴)을 집어넣으셨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마까지를 덮고 있던 푸른 수술보도 걷어지지 않았다. 비몽사몽 간에 갑자기 시술이 끝났다고 했다. 분명 내 발로 무대에서 내려왔는데, 회복실까지 어떻게 갔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오늘 좀 무섭다. 이런 사진을 찍은 기억이 없다. 회복실 커튼인 것만은 알겠는데. 시술실 안에서 쌍욕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는 늘 예쁜 말을 써야지.
회복실에서도 내내 지영쌤이 옆에 있어주었다.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많이 했다. 뽀로로 얘기도 했던 거 같은데, 지금에 와서 떠올리려고 하니 모든 게 흐릿하다. 꿈결 같다. 시술 방에서의 기억이 뚝 끊어져서, 오늘은 저 아무 말도 안 했죠? 엄청 조용했죠? 라고 눈을 반짝이며 물었는데, O 선생님은 그러신다. 오늘도 정연씨는 말이 많았는데? 아, 나는 또 수면 유도제 이후에 뭐라고 지껄였단 말인가. 오늘 유난히 많이 아파해서 수면유도제가 평소 이상으로 많이 들어갔다고 하셨다.
아아, 늘 생각한다. 시술 방에 들어갈 때 누군가 나에게 재갈을 물려주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정신이 있으나, 없으나 말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