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주 사소한 행복

by 이정연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다.


언제부턴가 투석 중에 편안히 잠들게 되었다. 몸속의 모든 피가 빠져나가서 기계를 통해 걸러져서 다시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의 무게만큼 내 몸은 잠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투석을 시작하고 나서 거의 매일 밤을 불면에 시달렸는데, 초기의 몇 년 동안은 투석 도중에도 잠들지 못했었다. 밖이라 불편해서. 뚫린 공간에서 오는 불안함으로. 네 시간 동안 온전히 깨어 쓸데없이 핸드폰을 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인터넷 기사를 보고, 티비앱으로 티비를 보기도 했다. 진짜 가끔 누워서 불편한 상태로 책을 읽기도 했으나, 바늘이 꽂혀있는 팔을 제외한 나머지 한 팔로 책 한 권을 쥐어 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어서 그야말로 아주 가끔만.


푹 잠들기 시작한 것은, 2-3년쯤 된 것으로 기억한다.

늘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다가, 혈압이나 다른 상태를 체크하러 오는 선생님에게 농담을 건네곤 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내 옆에 왔다가 한 번씩 웃고 갔다. 지금은 기억 언저리에도 없는 그 농담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때로 선생님들은 폭소를 하기도 했다.

그러던 내가 어느 날부터 자리에 눕고 니들링이 끝나면 대화는커녕 미동도 없으니 처음에는 걱정을, 나중에는 귀여운 원성을 들었다. 혈압체크할 때 잠깐씩 눈을 뜨면, 요즘 정연 씨가 계속 자고 있어서 얘기를 못하니까 섭섭하고 심심하다며 웃으셨다.

다시 졸음이 밀려와서 눈을 감았는데, 그런 얘기를 듣고선 마음이 몽글해진 채로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물론 그 말이 때론 잠에 취한 나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투석환자들은 예민하다.

나만해도 그렇지 않은 척했을 뿐, 사실 무척 예민해서 모두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 예민함을 의료진에게 발산하는 건 정말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쌍욕 하는 건 고소감이다.


투석환자들은 대체로 니들링하는 사람의 손부터 치료 시간대, 투석 기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예민하다.

투석을 시작하던 초기, 어떤 투석환자분의 블로그를 접한 적이 있다. 그분의 블로그 속에는 늘 거듭되는 니들링으로 팔을 푸르른 벌집으로 만들어 놓는 간호사 선생님에 대한 성토의 글이 가득했다. 나에게도 케미가 맞지 않는 간호사 선생님이 분명 있긴 했지만, 니들링이 잘못되어서 바늘을 몇 번이고 다시 찔러야 하는 그런 끔찍한 상황은 어쩌다 한 번 있는 특수한 일이다. 어쩌다 한 번 겪어도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기 때문에 그분의 글 속에 멍든 팔이 가슴 아팠다. 그리고 새삼 우리 병원 선생님들께 고마웠다.


주사 부위를 소독하고 니들링을 하면, 나는 대체로 참는다. 바늘 자체가 두렵거나 정말 아플 때 움찔거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선생님도 놀라고 미안해한다. 그때마다 내가 하는 말은 한결같다. "쌤. 바늘이 아프지 않길 바라면 그거는 도둑놈 심보예요."


나는 환자긴 하지만 양심 없는 도둑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농담으로, 나와 선생님과 바늘을 다독인다.


하지만 4월의 혈관 재개통술 이후, 나는 좀 까다롭게 굴고 있다. 수 선생님은 유난히도 내 혈관의 특성을 잘 알고 계셔서 아프지 않게 찔러 주신다. 그래서 스타트하려고 기계를 조작하는 선생님께 수 선생님을 불러 달라고 말한다.

바늘은 당연히 아픈 거라며? 말과 행동이 다르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오늘은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다.

정말 예민한 나는, 몸의 신호를 정말 잘 알아차린다.

푹 자고 있다가 투석 도중에 깨어나서 하품을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위험하다. 대개 그런 때는 저혈압이거나 저혈압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오늘 잠에서 깨어 연신 하품을 하다가 선생님을 호출했다. 혈압을 체크하시더니 정연이 끝내자, 하신다. 이런 예민함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투석이 끝나고 체중을 재면서 나는 살이 쪘음을 인정한다. 물론 과도하게 수분을 제거한 탓도 있겠지만, 이제 인정하고 건체중(모든 잉여 수분을 제거했을 때의 체중을 건 체중이라고 한다. 투석환자의 일상에 지표가 되는 숫자다.)을 올려야할 것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도 쓰러질 것 같았고 감기약을 받으러 약국에 들어갔다 나오는 중에도, 약국에서 정류장까지 3-400미터 되는 거리 동안 나는 눈 앞이 깜깜해졌다가, 또 눈 앞이 하얘지는 경험을 했다. 보통 깜깜하거나 하얗거나 둘 중 하나만 하는데.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오늘따라 마을버스도 느렸고, 나는 몇 걸음 못 가 주저앉기 일쑤였다. 평소에 버스와 내 걸음을 모두 합해 15분이면 도달하는 플랫폼까지 30분이 넘게 걸렸다. 역 건너편에서 정차하는 버스에서 역사 내부의 플랫폼까지만 17분이 걸린 대장정이었다. 마을버스와 나는 천생연분일지도 모른다. 같은 때에 함께 고장 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힘들 때는 자양강장제가 필요한 법. 눈 앞이 깜깜하고 하얘서 미처 사지 못한 박카스를 역에 도착해서 사려했다. 그런데 깜깜한 역사 내 편의점. 아이고. 주저앉았다가 가려던 방향을 꺾어 자판기에서 레쓰비 한 캔을 뽑았다.

미리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천 원. 박카스든 레쓰비든 결국 팔백 원이어서 그 별 것 아닌 숫자에 웃었다. 고작 같은 가격이라는 사실만으로 인생에 오차가 없는 기분이 들었다.


집 쪽으로 가는 전철의 도착을 알리는 경쾌한 안내 방송. 시원한 커피 한 캔의 마지막 남은 몇 모금을 모조리 털어 넣고 이번엔 열 걸음 이상 걸어서 쓰레기를 버리고 전철에 오른다.

한산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켜지는, 에어컨 바람으로 쾌적한 열차 안이 기분 좋다. 앉아서 글을 쓰는 동안 17분이 금세 지나갔다. 시원한 바람에 점차 회복되는 걸 느끼면서.


종착역인 동네 역에 내렸다. 우리 동네 전철역은 이게 문제다. 나이 든 어르신들이 많은 동네인데, 심지어 어르신들보다 내장기관이 더 늙어버린 나 같은 사람도 살고 있는 이 동네에 엘리베이터가 하나밖에 없다. 거기까지 갈 힘이 없다. 저기 저 할아버지도, 나도.

음? 그런데 어느새 회복된 나는 길고 긴 계단을 성큼성큼 오른다. 마지막 몇 계단을 남겨두었을 때 잠깐 다리에 힘이 빠졌으나 힘차게 무사히 올랐다. 잠깐 울컥했다. 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힘찬 걸음이 나를 벅차오르게 만들었다. 이 작은 일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마침 집 앞까지 가는 버스도 나와 비슷한 때에 역 앞에 도착할 예정.


나는 또 힘차게 4층에서 1층까지 걸어 내려왔다. 내가 좋아하는 갈색 슬링백의 따닥 거리는 굽소리를 최대한 조심하며. 건널목을 건너고 한숨 돌리니 이내 버스가 도착한다. 그렇게 비틀거리던 내가 노약자석을 비우고 몇 걸음 더 가서 자리에 앉을 만큼 회복되었다. 택시비를 아꼈다. 정말 좋다.


버스에서 내려서 또 힘차게 걷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겉옷을 벗어두고 소파에 누워, 귀가하는 한 시간 동안의 기록을 마무리하는 이 시간이 너무도 행복하다.


나는, 글을 쓰지 않는 동안 마음껏 부정적이 되었던 나를 버리고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의 긍정적인 면을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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