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P시 보건소입니다.
이정연 선생님 맞으신가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8월 24일에 ****내과 방문하셨죠?
뒤에 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 내가 말을 가로챈다.
네, 병원에서 확진자가 나왔나요?
네 위험 접촉 대상자는 아니시고요.
위험 접촉 대상자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일단 우리 병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코로나 초기에 2-3주간 병원 외래를 아예 폐쇄했었다. 인공신장실에는 신장실 간호사 십여 명과 환자들, 보호자들만 드나든다. 내부에서는 그 누구도 마스크를 내리거나 벗지 않는다. 그런 시간이 벌써 반년이나 지나갔다. 그런데 연일 확진자가 늘어나는 것이 심상치 않다 싶더니 결국 우리 병원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보건소에서 얘기하는 '위험 접촉 대상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말장난으로 들렸다.
보건소 직원은 나의 모든 질문에 "저는 잘 모르겠고요.."라고 일관된 대답을 했다. 당신이 모르면 내가 아나요? 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올 뻔했지만 참았다. 그저 나의 모든 질문에 대해 최대한 알아보고 다시 전화를 좀 달라, 투석환자다 보니 걱정이 많이 된다. 바쁘시겠지만 부탁드린다고 공손하게 말했다.
그 길로 우리 병원에 전화를 넣었고, 외래 선생님이 전화를 받았다. 보건소 직원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내게 주며, "정연아, 걱정하지 마. 이따 다시 전화가 갈 거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라고 달래주었다. 보건소 직원인 젊은 여자는 그래도 약속대로 다시 전화를 걸어왔지만, 아까와 답변의 큰 차이는 없었다. 또 무언가 답해달라고 하면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가 없단다. 이럴 거면 대체 나한테 전화는 왜 한 거지?
"선생님, 일단 병원은 저희가 방역을 마친 상태고요. CCTV 확인 결과 선생님은 확진자와 직접 접촉이 없으셨기 때문에 위험 접촉 대상자로 분류되지 않으셔서 격리나 검사가 전혀 필요 없으신 상황입니다. 저희 역학조사관들이 판단한 거예요.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으셔도 되고요, 일상생활하시면 돼요. 다만, 7일까지 몸 상태를 보시고 혹시라도 이상이 있으시면 꼭 저희 보건소로 연락 주시고 검사받으시면 됩니다."
아, 혹시 아프면 검사를 받으면 되는 거구나? 검사받으면 끝나니?
코로나가 다시 유행할지도 모른다며, 원장님은 만일을 대비해 폐렴 주사를 맞자고 했었다. 신장실 전체 수요를 파악하고 주사제가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는데 자꾸 미뤄지고 있어서 불안하던 차, 결국 이런 일이 터졌다. 안 그래도 멀쩡하지 않은 몸, 코로나 감염된다고 크게 억울할 건 없어 보이겠지만 사실 이제는 억울하고 싶다. 게다가 가족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끼칠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면 머리가 하얘졌다.
가장 믿고 있는 사람에게 보건소 얘기를 했다. 우리 병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말을 전하며 얼마나 걱정할까 싶어서 너무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일어난 이런 중대한 일을 절대로 감출 수는 없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안심이 됐다. 나는 괜찮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자꾸 불안함이 올라오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별 것 아닌 일로 엄마에게 불 같이 화를 냈고, 보건소며 관련된 모든 기관들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그들이 못 들어서 정말 다행이다. 들었으면 아마 심장마비로 돌연사했을 테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원장님에게서 직접 연락이 왔다.
"정연님, 저예요. 일산에 사는 저희 직원이 교회 지인과 접촉해서 검사를 받았는데 확진 판정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를 비롯한 모든 직원들이 검사를 받았고 음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병원 운영은 그대로 하는데, 보건소에서 조건을 걸었어요. 환자들이 한 번에 몰리지 않게 시간을 나누고, 환자 간 병상 간 거리를 두고 투석 한 타임이 끝나면 30분씩 소독을 하는 것으로요. 내일 정연님은 10시 정도에 오시면 될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불편을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내일 뵙겠습니다."
목소리에 미안함이 묻어났다. 그리고 질문을 할 필요도 없이 궁금한 상황을 확실하게 전달해주시니 나는 중간중간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만 할 뿐이었다.
아침이 되어 눈을 떴다. 마음이 무거울 새가 없었다. 당장 챙겨서 나가지 않으면 병원과 약속한 시간에 늦어버리기 때문에. 겨우겨우 10시에 맞춰 병원에 도착했다. 신장실로 들어가려는데 입구가 막혀있다. 외래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외래 쪽으로 가보니 어르신들 열댓 분이 앉아 계셨다. 익숙한 얼굴도 있었지만, 평소에는 치료 시간대가 다른 분들 이어서 대부분이 낯선 얼굴이었다. 그래서 또 주목받았다.
옆에 휴원 안내가 있는데, 자꾸만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키가 크고 정이 많은 박 할머니가 "정연아~ 오랜만이야." 하고 불렀다.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퉁퉁하고 인상 좋은 웬 영감님이 나를 뚫어져라 보며 옆에 앉은 박 할머니에게 쟤는 뭐하는 애인가 묻는 거 같았다. 나는 젊은 나이에 투석받는 귀여운 애죠, 영감님. 크크크. 이미 소파며 의자며 자리가 가득 차서 나는 어정쩡하게 출입구의 혈압계 옆에 서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외래에서 신장실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B사 기계로 투석할 수 있는 창가 자리. 평소의 내 지정석이다.
8년 전, 내가 이 병원에 다닌 지 얼마 안 되어 내 옆 침대에 나타났던 나비넥타이를 맨 멜빵바지 임 할아버지였다. 지금은 나비넥타이를 하지 않으시지만, 여전히 귀엽게 멜빵바지를 입고 다니신다. 나는 10시 팀이었는데 할아버지는 새벽 5시부터 투석하는 팀이셨나 보다. 오랜만이라고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뒤이어 나타난 얼굴. 까맣고 동그란 안경을 쓴 키가 작고 까무잡잡한 유 아저씨. 내가 너무 건강해 보여서 처음 봤을 때 나를 간호사로 오인하고 이것저것 질문을 했던 분이었다. 내가 환자라고 말하니 기겁을 하시고, 이후로는 나를 볼 때마다 가까이 다가와서 꼭 먼저 인사를 하곤 하신다. 그분이 아마 새벽반의 마지막 환자였나 보다. 보건소 역학조사관이 와서 이것저것 지적질을 하는 데다, 간호사가 세 사람뿐이어서 시간이 엄청 지체됐다며 투석 잘 받고 가라고 손을 흔들며 사라지신다.
우리 병원의 미친개쯤 되는 김 할아버지가 외래 문을 열고 나타났다. 나하고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알 수 없는 기운에 이끌리듯 번호표를 직접 뽑아 건네고 여기서 기다리시면 된다고 안내를 했다. 내 침대 머리와 맞붙은 줄의 환자인데, 늘 내 머리 위에서 욕을 쏟아내서 별로 좋아하지 않던 영감님이다. 머리칼이 곤두설만큼 뾰족한 욕을 하는데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키가 크고 멀끔한 할아버지였다. 다들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고 있는데, 딱 20분 기다렸다고 또 병원을 향해 쌍욕을 날리셨지만 말이다. 겉보기에는 멀쩡하다. 욕쟁이에 분노조절 장애라고는 얼굴에 쓰여있지 않다.(크큭)
오랜만에 심 아저씨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쪽 의자가 비었다고 부르셔서 살짝 떨어진 상태로 오늘의 사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옆에는 키가 크고 안경을 낀 임 아저씨가 앉아 계셨는데, 내 침대와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음에도 인사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오늘은 심 아저씨와 나의 대화를 옆에서 가만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시는 걸 보고, 이제 다음부터는 인사를 해야지 생각했다.
보건소에서는 확진자에 대해 쉬쉬했지만, 병원에 와서 다른 분들과 얘기하다 보니 결국 누구인지 대충 드러났다. 평소 나와 친한 K 선생님이었다. 지난주 금요일만 해도 내 니들링과 피니시를 해주었고,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대폭소를 하는 그런 밝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24일에는 내 침상이 있는 쪽으로는 거의 오지 않았고, 내가 병원에 올 수 있었던 이유도 K 선생님과의 접촉이 없었기 때문이었겠지만 나는 2시간이나 기다려서 신장실로 들어가자마자 차트부터 확인했다. 월요일, 수요일 각각의 담당 간호사 이름을 본다. 이런 내가 이기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니까.
오늘의 자리. 내가 좋아하지 않는 F사의 투석기다. 쳇.
평소의 내 자리가 아닌 낯선 침대에서,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타회사의 투석 기계가 돌아가는 것을 보며 기분이 이상했다. 생각보다 모두들 평소 같았고, 덕분에 나는 평소보다 더 재밌는 농담 실력을 뽐낼 수 있었다.
단 세 명의 간호사만이 근무할 수 있는 조건에서, 외래 선생님 두 사람과 원장님도 투입되어 기계 조작을 하고 투석이 끝난 붉은 셀 라인을 거둬들였다. 모두들 침상 한 칸씩을 띄우고 치료를 받았고, 전체적으로 모두 침착했다. 물론 같은 공간에서 확진자가 나왔으니 불안에 떠는 사람도 분명 있었고, 그런 사람에게는 차분한 설명이 건네졌다.
마스크가 답답했다. 그러나 버스에서도 전철에서도 병원에서도 마스크는 강제되었고, 나는 집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종일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뉴스가 코로나로 시끄러울 때도, 잠잠해졌을 때에도 내 주변 그 누구도 확진을 받지 않았다. 건너 건너의 누군가가 확진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바도 없었다. 그러나 결국 나에게도 이런 일은 일어났다. 처음에는 무서웠다. 그러나 외래에서 진료 대기를 하면서 마주한 얼굴들 때문에, 동창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코로나 동창회. 코로나는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게도 하였고, 어려운 상황에도 사람들이 얼마나 침착할 수 있는지 알게 했다. 누구도 K 선생님 탓을 하지 않았고, 선생님의 동료들도 부직포로 된 방호복과 고글을 쓰고 땀을 흘리지만 미소를 잃지 않았다.
쉽게 물러갈 놈은 아니지만, 그래도 겁먹지 않고 버티다 보면 또 확진자는 줄어들겠지. 그리고 K 선생님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올테고. 모든 게 끝날 날은 반드시 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