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받을 자신이 있다는 거야

그래서 네가 부러웠어

by 이정연


L군은 나보다 네댓 살 아래다. 정확히 나이를 알지 못하는, 인사 한 번을 나눈 적이 없는 같은 병원의 환자다. 참 재미있는 건 인사 한 번 나눈 적이 없어도, 나는 L군에 대해 생각 이상으로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은 지역 병원의 특성상, 투병 2-3년 차까지는 내가 병원에서 제일 어렸다. 또래라는 단어가 그곳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선생님들이 환자 중 누군가를 젊다고 표현하기에 내 또래인가 싶어 놀란 내가 그분의 나이를 물어보면, 대체로 50대 중후반.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환자가 여든에 가까우신 것 같다.

나는 그 상태가 매우 만족스러웠다. 나는 남에게 어리광을 피우거나 하는 유형의 인간은 절대 되지 못하지만, 제일 어리니까 무얼 하든 살짝 귀여워 보이는 효과는 있었다. L군은 그런 나의 위치를 처음으로 흔든 사람이었다.


어느 날, 병원에 어떤 아주머니가 상담을 하러 왔다. 그리고 그즈음의 나는 소머즈에 버금가는 청력을 지녔었기고, 간호사 데스크에서 가까운 침대를 쓰고 있어서 누운 상태로도 대충 무슨 상담인지가 다 파악되었다. 그리고 그날 투석 마무리를 해주러 온 당시의 수선생님이 나에게 정확하게 얘기를 해주었다. 나보다 어린 남자 환자인데, 지금 다니는 병원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곳으로 옮길 생각으로 어머니가 상담을 받고 갔단다.

'제기랄, 나보다 어리다니. 최연소 타이틀을 빼앗기게 생겼군.'


L군은 태어날 때부터 신장이 안 좋은 케이스였다. 유아기에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고, 중학생 때부터 신장이 제기능을 하지 못해서 혈액 투석을 받으면서 학교생활을 했다. 힘든 학창 시절이었다. 아프니까 자연 학교에서 배려받았고, 평범한 학창 시절을 즐기지 못했다. 병원 가는 시간이 길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힘들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이식 수술을 받고, 그는 대학생이 되었다. 혈액 투석기계와 분리되어 얼마나 즐거웠을까. 그래서 부어라 마셔라 하며 친구들과 어울렸다. 신장은 또 망가졌다. 그는 다시 인공신장실의 혈액 투석기에 연결되었다.


L군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이 너무 안쓰러웠다. 현재 L군이 다니는 병원은 그의 이식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왜 관리를 못해서 다시 투석받으러 왔냐고 한 마디씩 하는 통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그곳에서 구해내야만 했다.

수 선생님은 전학생을 반장에게 부탁하듯이, 내게 L군이 병원에 다니게 되면 잘 대해주라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지나치게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얘기를 듣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말 L군이 우리 병원으로 옮겨왔는데, 나와는 시간대가 맞지 않았다. 나는 이른 아침에 병원에 가고, L군은 내 치료가 3시간을 넘길 즈음 오는 것 같았다. L군은 선천적으로 신장이 안 좋았던 경우고, 나는 20대 중반부터 아팠으니 상황도 달랐다.

공통의 화제니 뭐니 아무것도 없거니와, 그 아이와 나는 병원에 목숨을 구하러 온 것이지 친구를 구하러 온 게 아니다. 게다가 어쩌다 마주쳤을 때 알았다. 그 아이와 나는 아예 다른 결을 타고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L군과 나는 단 한마디도 나눈 적 없을 뿐 아니라, 그 흔한 목례조차도 한 적이 없다.


내 침대 옆 자리의 D 아주머니는 L군을 잘 알고 있었다. L군이 전에 다녔던 그 병원에 D 아주머니도 함께 다녔었고, 그래서 그의 모든 역사를 잘 알고 있었다. D 아주머니는 L군에 대해 얘기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지나친 응석받이라고 하며 말을 덧붙였다. 좁디좁은 병원 침대에서 늘 L군의 어머니가 L군을 꼭 끌어안고 누워 있었단다. 투석하는 4시간 내내.

욕 들어먹을만하군, 속으로 생각했다. 한 편으로는 사랑받는 아이 같아서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마나 가슴 아팠으면 굵은 바늘 두 개를 꽂고 기계에 연결되어 있는 상태의 어린 아들을 끌어안고 그 좁은 침대에서 4시간을 함께 버텼을까 싶어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나는 부모가 아니지만,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는 있었다. 우습게도, 자식이 아프면 엄마는 늘 본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니까. 본인이 잘못 낳아준 탓이라고 여기니까. 나는 20대 중반에 발병했는데도, 엄마가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참 많이도 말했었다.

물론 우리 엄마는 회사 가느라 바빠서 병원에 와서 좁은 침대에 같이 누운 적은 없지만, 실은 병원에 찾아온 일 자체가 거의 없지만 L군의 어머니나 우리 엄마나 늘 가슴이 뭔가에 찔린 상태로들 살아가겠지.

작은 키에 까무잡잡한 L군은 늘 표정이 어둡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짜증이 한껏 담겨있다. 그리고 본인의 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수분을 가뿐히 채워오는 대범함을 지녔다. 어쨌든 건체중에 도달하는 것이 최대 목표인 투석환자에게 그렇게 불손한 태도는 있어서는 안 된다. 지속적으로 그런 상태가 유지되면 잉여 수분 때문에 폐에 물이 찰 수도 있고,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기에 앞서 일단 투석하는 동안 저혈압 상태가 되어버린다.



나도 그 언젠가 투석 중에 엄청난 저혈압 상태가 된 적이 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사지가 후들거린다. 정신이 혼미하고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수축기인지 이완기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50이라고 누군가 외치던 숫자만은 또렷하다. 그런 상태가 되면 기계는 빨간 불을 빛내며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댄다. (어찌 보면 기특한) 기계가 날카롭게 울어대면 누구라도 나를 구하러 온다.


혈압이 높으면 주사제를 투여해서 혈압을 낮추면 되지만, 낮은 혈압에는 빠르게 적용시킬 약물이 없다. 딱히 혈압이 떨어질만한 일은 없었다. 사실 왜 혈압이 떨어졌었나 정확히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꽤 오래된 일이다. 다만 정상 혈압이 되기까지 엄청 많은 시간이 걸렸고, 고 선생님(나의 첫 번째 수 간호사 선생님)은 내 혈압이 정상 범주에 들 때까지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어쨌든 L군은 늘 그런 위험에 직면할 것을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4시간인 투석시간을 5시간으로 늘려서 투석을 해달라거나 몸에 무리가 될 정도의 수분을 빼내 달라고 떼를 썼다. 오늘 건체중에 도달하지 못하면, 내일모레 또 고생하게 될 것이 뻔하니까. 잉여 수분 때문에 그 사이에 몇 끼니를 걸러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오늘 당장 쓰러지더라도 자신은 건체중에 도달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통에 늘 수 선생님과 싸워댔다. 그런 일이 무수히 반복되다가, 어느 날은 원장님까지 출동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말이 통하지 않는 L군의 고집에 원장님은 결국 소리까지 빽 질렀다.


나는 우기지 못한다. 무언가 요구하지 못한다. 그나마 내가 우길 수 있고, 무언가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은 대체로 가족뿐이다. 절대로 착해서가 아니다. 단지 내 마음이 불편해서.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이 두려워서. 소심한 성격 탓에 누군가와 마찰을 빚으면 며칠이고 그 일이 생각난다. 말실수라도 하면 아주 오래 곱씹고, 시간이 많이 지난 어느 밤에 불현듯 혼자 그 일을 떠올리며 이불을 발로 차거나, 도리질을 하기도 한다.

물론 지금은 어른이 되어 그렇게 자책하거나 돌이켜 생각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여전히 나는 무섭다.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는 일이 무섭고 두렵다.


나는 L군이 소리를 지를 때마다, 그에게 수 선생님이나 원장님이 소리를 지를 때마다 생각했다. 저 아이가 부럽다. 나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을 저 아이는 하는구나.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이 안중에 없는 거라는 생각보다는, 본인의 가족에게 무한히 사랑받은 아이답게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일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응석을 부려도, 지금의 수 선생님은 예전 병원에서부터 자신을 봐 왔던 간호사 선생님이니까, 저에게 애정이 있다고 믿는 거지. 사랑받을 자신이 있는 거다.


요즘은 L군이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 치료 내내 푹 잠들었다가 깨어서 체중계 쪽으로 가다 보면 꼭 L군의 침대를 지나게 되는데, 여전히 저혈압을 방지하기 위해서 침대 다리께를 무척 높게 올려놓은 모습을 보곤 한다. 어쩌면 여전히 L군은 잉여 수분계의 대부로, 대범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소리를 지르고, 떼를 쓰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위로 쳐 들려있는 L군 다리의 높이만큼 우리 병의 무게는 한 없이 무겁다. 나는 그 무거운 병을 지니고도 멀쩡해 보인다. 그 무게를 대체로 잊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나에게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