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서 가장 비극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사랑을 모르는 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스물다섯의 나는, 아마 화려하지는 않아도 제법 예뻤을 것이다. 그냥 그 나이만이 가질 수 있는 싱그러움 만으로도 나는 분명 예뻤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싱그러움을 단 한 번 펼쳐보지도 못하고 나는 병에 의해 꺾여버렸다.
나는 일생을 감상적이었다.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잘 믿는 사람이었고, 나에게도 그런 기적과 같은 일이 반드시 일어나리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만날 기회도, 삶의 많은 즐거움들도 뒤로 밀어 두고, 꿈을 이루는 일과 생활을 꾸려가는 일에만 골몰했을 때에도 나는 사랑을 믿었다. 글쎄, 세상 어디엔가 나를 닮은 사람 하나쯤은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는 그에게 이해받고,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열심히 나의 길을 가다 보면, 그는 그 길고 긴 길의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환상이라면 환상일 그런 일.
그러나 스물다섯, 언제나처럼 비극은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희귀 난치병 ESRD. 나는 한 없이 깊은 수심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진심인 사람들만 내 곁에 남았다, 고 생각했다. 앞으로 새로이 누군가를 만나게 되더라도 아마 이런 성가신 나를 향해 넘치는 마음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 그는 온통 진심만을 가진 사람이겠지.(가벼운 마음으로 다가오기에, 이런 병을 가진 나는 누구에게든 성가신 존재이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꿈에 젖어 1년 여를 보냈다.
그리고 외롭고 고독하고 고통스러웠던 어느 밤,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건강하고 밝았던 스물다섯 이전에도 찾아오지 않았던 사랑이, 병들고 초라한 스물여섯에게 찾아올 리가 없다. 밤이 새도록 울었다. 스물일곱이 되어도, 스물여덟이 되어도 그 어떤 나이가 되어도 나는 왼손에 무엇도 낄 수 없는 운명이다.(투석을 하는 왼 팔에는 반지는 고사하고, 시계나 팔찌도 찰 수 없다.) 텅 빈 왼손을 보며, 나의 운명을 절절히 느꼈다.
왼손에 반지를 낄 수 없는 운명.
왼손에 반지를 끼고 살아가는 사람들, 혹은 반지를 끼게 될 사람들을 보며 나는 늘 그들을 부러워하고 축복했지만 때로는 그들의 행복이 송곳처럼 나를 찔렀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구석에 숨어서 혼자 울었다.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하느냐 안 하느냐, 선택의 문제인 사랑이 내게는 '안' 하는 것이 아닌 '못' 하는 것이었으므로.
나이는 병과 함께 차곡차곡 쌓였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모르는 누군가는 지나치다 내게 관심을 갖기도 했고, 때로 나를 좋아하기도 했다. 그 마음에 진심이 있었으리라고 믿어본 일은 단 한 번도 없다.
어쨌든 나는 여전히 운명이나 사랑과 같은 단어를 믿었지만, 내게는 절대로 없을 단어라고 냉소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꽤나 고무적인 성장이었다. 나는 나의 주제를 너무도 잘 알게 되었고, 사랑이나 운명 같은 간질간질한 단어에 더는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살아내는 것과 나를 책임지는 일뿐. 그렇게 씩씩하게 삶을 버텼다.
나를 책임지기 위해 했던 공부에서 한 번 미끄러졌다. 거의 닿았던 일의 마지막에 미끄러지고서 나는 방황을 시작했다.
살아가는 일은 점점 무료했고, 어느 순간부터 죽을 용기가 없어서 살아가는 것만 같았다. 삶을 버티던 나는 어디론가 증발해버렸다. 씩씩함을 되찾기 위해, 투병을 시작하던 때의 나를 되짚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글을 쓰던 어느 날, 직접 이야기 한 번 나눠보지 못한 누군가에게 편지를 받았다. 그는 너무도 담백한 언어로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스스로를 소개하고 나의 삶과 글에 응원을 건넸다. 그 편지를 읽는데 눈물이 후두두둑 하고 떨어졌다. 그는 그냥 지나치다 나에게 인사를 한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내게 좋은 친구가 한 사람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우리는 아주 신비롭게 가까워졌다. 그는 나와 닿을 여러 방법들을 찾아내었고, 결국 나에게 닿았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생경한 감정들을 마주했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져본 적은 있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인지는 진정 몰랐다. 나는 그에게 수없이 마음을 받으며 사랑이 무엇인지 드디어 알기 시작했다. 남에게 받을 줄 모르던 내가, 점점 받는 일에도 익숙해져 갔다.
그는 나에게 카메라를 쥐어 주었다. 그렇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고, 시계를 못 차는 왼팔 대신 오른팔에 빛나는 시계를 차게 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인정받았고, 그에게 사랑받으며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 투정을 부려도, 극단적으로 굴어도 그는 모두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와 나는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같은 나라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의미가 있는 반지를 오른손에 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삶에도 어떤 가능성이 피어오르는 느낌이었다. 나는 흡사 포르투갈인 인 듯, 생애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반지를 나눠꼈다. 그는 나의 우주가 되었다.
나는 절대 할 수 없다고 스스로 믿었던 많은 일들을 그와 함께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좀 더 성장해, 내가 혼자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일들을 이루어나갈 것이다. 버티던 10년을 넘어, 제대로 살아내어 결국 새로운 삶을 얻을 것이다.
그는 온갖 병을 달고 살아가던 내게 온 마음을 다했다. 그 마음을 모두 헤아리기에 나는 세상 경험이 부족했지만, 그는 세상의 평범한 기준을 넘어선 자신만의 방식으로 늘 나를 사랑했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하지만, 이제 계절이 바뀌면 우리를 규정하는 사실 한 두 가지가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의 본질은 변하지 않음을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이제야 확신한다. 앞으로의 내 인생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