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잘 먹고, 잘 자고 있습니다.

by 이정연



7월 11일 일요일, 아주 불쾌한 상태로 입원했습니다.


입원할 짐을 싸 두고 저는 잠시 일을 보러 출근한 상태였고, 하도 입원대기 환자들이 많아서 입원이 불투명하다는 이야기에 미리 1인실까지 신청해두었었습니다.

팔자에 없는 1인실에 들어갈 줄 알고, 보호자인 엄마를 대동해서 입원할 준비를 마쳐둔 것입니다.


그런데 돌연 '간호간병 통합 병동'에 입원하라는 입원 원무팀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짐을 새로 꾸려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불쾌감이 스멀스멀. 아예 제 짐만 덜어 새 가방에 넣어야 했거든요.

동생이 역까지 태워다 주기로 했는데 역 앞 사거리에서 위험천만하게 내려버린 엄마 때문에 서로 길이 엇갈려 말다툼도 했습니다.

어차피 나 혼자 입원하는 거니까 파주서부터 혼자 가겠다고 강짜를 부렸습니다. 엄마도 화를 냈지만 돌아가지 않고 버티고 섰습니다.


원래 마음에 없는 소리를 잘합니다. 말은 그리 해놓고, 만약 진짜 엄마가 나를 두고 가버렸으면 마음이 엉망진창이 되었을 겁니다. 함께 전철을 타고 가면서 마음이 스르르 풀렸습니다.


그러나 병원에서 또 문제는 터졌습니다. 내가 있는 병동은 아예 방문, 면회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건을 전해주는 일조차도 할 수 없어서 로비에서 13병동 물품 보관이라고 얘기하고 0맡겨야 한답니다. 그러면 병동 간호사님이 내려가서 일괄적으로 가져와서 전달해준답니다. 요한 것이 있다고 따로 편의점에 사러 내려가는 일도 안된답니다.


병동에 보호자 출입 자체가 불가능한데, 엄마는 짐을 들여준다는 명목으로 기어코 따라 들어왔습니다. 텅 빈 방문자 대장에 처음으로 이름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나를 바라보네요. 9년 전에 입원했을 때는 엄마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 주었었는데, 이제 오롯이 혼자입니다. 나도 겁은 납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수밖에요. 이제 내 나이 어언... 서른 하고도... 하여간 이 늙은 딸이 혼자 입원한다고 저렇게 울먹거리면 내 얼굴이 뭐가 됩니까.




낯선 병실.

병동 입구 첫 번째 방에 배정되었습니다. 그 방에서도 가장 문간에 있는 첫 번째 침상입니다. 집에서도 문간방에 사는데, 이거 뭐... 문과 인연이 깊은가 봅니다.


앞으로 5박 6일간 나의 스윗 홈. 보기보다 넓고 쾌적합니다!

엄마를 보내고, 혼자 병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낯설지만 이제 곧 여기에 살림을 차리겠지요. 크크크.

일요일 내내 굶다가 입원을 한 지라, 무척 허기가 졌습니다.

특히 저는 병원밥을 좋아합니다. 대체 누가 나를 위해 끼니때마다 다른 찬으로, 4첩 반상을 올려준단 말입니까?



11일의 저녁입니다.
아니... 투석식인데 왜 보리가 섞여있지?

왜 위험천만한 버섯볶음이? 그런 의문은 길게 가지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생당근을 와작와작 씹어먹고, 찐 양배추도 저염 쌈장에 콕 찍어서 먹고, 매콤 돼지고기볶음도 맛이가 있네요. 칼륨이 높은 버섯볶음과 생오이만 빼놓고 싹싹 비웠습니다. 아, 물론 투석 환자답게 국은 양심껏 많이 남겨두었죠.


알고 봤더니 식사 신청이 늦어서 일반식이 나온 거였습니다. 아... 대실망. 왠지 간이 삼삼하니 맛있더라니... 이제 곧 투석식을 마주하면 제 낯빛은 변하겠죠?



12일 아침식사. 첫 투석식입니다.

쌀밥에 심심한 미역국, 붉은빛이 살짝 나는 생선, 살만 있어서 먹기가 좋았습니다. 나물은 익숙한 맛이 났는데... 솔직히 뭔지 모르겠습니다. 소불고기도 보기에만 저렇지 간이 전혀 안 되어 있습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생선을 싫어하는 제 입맛에 생선이 제일로 맛있습니다. 특히 요 놈이 입원 중 먹었던 생선 중 제일 맛있네요.

취향에 맞지 않는 망고 젤리까지 모두 먹었습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체중을 쟀고, 6시 30분에 피를 여덟 통이나 뽑혔고, 7시에 한산한 폐기능 검사실에 가서 폐기능 검사도 했거든요. 그래서 배가 매우 고팠습니다. 이 식사를 하고나서는 또 투석치료와 여러 검사 때문에 식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한 끼를 건너뛰어서 무척 기대했었는데, 12일의 저녁은 정말 퍽퍽함 그 자체였습니다.

병원 투석식에서는 절대 육류와 생선이 빠지지 않고(물론 적정량이라 쓰고 소량이라 읽습니다), 부족한 열량을 보충해줄 디저트도 빠지지 않습니다.

통조림 과일은 환자에게 부적합해 보이지만, 열처리 등을 거쳤기 때문에 과일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칼륨이 많이 빠져나간 상태라서 투석 환자들이 즐기기에는 생과일보다 훨씬 좋습니다. (칼륨 함량이 높은 과일이나 채소는 고칼륨혈증을 유발하고, 지속되면 심장마비로 인한 사망에 이르기도 합니다. 고칼륨혈증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한 투석환자를 알고 있습니다.)


저는 생선이나 나물 이름을 도통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쌀밥에 심심한 버섯 뭇국, 유채나물(?), 생선구이와 소고기 사태 수육, 후르츠 칵테일이 담긴 한 상입니다. 너무 퍽퍽해서 간장을 살짝 찍어서 눈물을 삼키며 밥 한 공기를 다 비웠습니다. 오늘 저녁부터 또 금식이거든요.

마지막 식사니까 먹어두어야지요, 암요.


그래도 작은 디저트 종지에 체리가 있어서, 와 역시 난 운이 좋아! 하고 웃으며 마지막에 숟가락으로 퍼먹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수면 위 대장 내시경을 위해, 저는 12일 밤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장 정결제 2리터를 마셨습니다. 그렇게 화장실도 몇 번 다녀오고, 고독과 고통에 휩싸인 채 수면에 들었다가, 찌를 곳이 없다는 이유로 발목 혈관에서까지 채혈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새벽 여섯 시 반에... 세상에... 이렇게 억울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13일 아침부터 치과, 정신과 진료를 보고, 심뇌혈관센터의 홀터실에 들러 기계를 부착하고 병동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또 남아 있는 장 정결제 2리터를 마저 마셨습니다. 겨우 오후 1시가 되어서야 다 마시고, 가스배출약을 하나 짜 먹고 물 500미리를 한 통 다 마신 후 침대차에 실려 내시경을 하러 갔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수면이어서, 아무런 기억이 없고 회복실에서 눈을 뜬 것만 기억납니다. 어딘가 아프지도 않았고, 내시경이 몸 곳곳을 훑고 지나갔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24시간 만에 다시 식사를 받아 들었습니다.


내시경 하느라 고생했다고 일반식... 을 주신 것은 아니고 식사 신청이 늦어서 그냥 일반식이 나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아욱 된장국에 잡채와 닭볶음탕, 미나리 맛이 나는 나물에 오이소박이와 흑미밥입니다.

짭쪼롭한 오이소박이를 먹으니 기력이 좀 회복되는 느낌입니다.

국에서 아욱은 거의 다 건져 먹고, 국물을 제외하고 또 싹싹 비웠습니다. 제 입맛에는 병원식이 딱인가 봅니다.


보호자 없는 병동. 해야 할 검사도 많고, 내가 나를 돌봐야 하니까 밥이라도 악착같이 먹자는 마음으로 이렇게 식사를 열심히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졸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